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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어렵다. (4/5)

(4) 시험영어에서 트라우마를 배웠다.

지난 글에서는 영어를 교재로만 보아온 영향을 이야기했었지요. 틀린 말 하나도 없는 너무 '잘난' 내용만 보다 보니 영어가 더 어려워진다는 내용이었어요.


자, 이쯤 되면 시험영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다들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시험영어의 단점과 악영향과 폐단은 이미 많은 교육업체들이 마케팅 소재로 써먹었거든요.

(영어교육 마케팅 이야기는 다음 에 할 거예요.)


대략 "실제 영어 실력과 상관없는 문제풀이만 배웠다"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맞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한번 짚어봐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독자분이 어느 시대에 학교를 다니셨느냐에 따라 차이가 조금은 있겠지만, 잘 아시다시피 공부와 수업의 목적이 시험 고득점인 경우가 많아요. 그 시험이란 예전이나 지금이나 4지선다형, 또는 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가 주된 유형이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시험은 한 문제 틀리느냐, 두 문제 틀리느냐가 중요한 시험이 많아요. 얼마나 많이 맞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안 틀리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교육 자체가 문제 해결 능력보다는 어떻게 생각하면 틀리는지, 즉 '오답 찾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아요. "시험에서 이렇게 생각하면 틀려요!"라는 이야기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여기서 3번 찍어."라는 이야기도요. 이것을 전달하면서 주로 쓰이는 메시지는 "너네 이거 모르지?"라는 질문이지요.


사실 5지선다형 문제 대부분이 그래요. 선택항목 5개 중에서 3개는 그냥 오답, 1개는 그럴싸한 함정 오답, 나머지 1개가 정답이지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수험생은 확실한 헛소리 3개를 빠르게 거르고, 그럴싸한 오답에서 숨겨진 오류를 찾아 소거한 후 남은 1개를 정답으로 선택하는 법을 최소 12년간 훈련받습니다. 시험공부란 결국 이 소거법을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소거법은 '무엇이 틀린 지'를 많이 알고 있어야 잘할 수 있지요.


더군다나 평가의 변별력을 위해 잘 쓰이지 않는 온갖 '변두리 문법' 문제도 물어봅니다. 예를 들면 insist, suggest 등의 의견을 나타내는 동사 뒤의 that절에는 should를 생략하고 원형을 쓴다던지, '왕래발착' 동사는 현재형을 쓸 때 미래의 일을 나타낸다던지 같은 것들 말이지요. 왜 그런지 이해도 안 되는 아주 드문 경우의 문법 규칙들과 '이렇게 하면 틀린다'를 달달 외우는 거예요.



이런 제도 하에서 수험생들은 공부와 시험을 통해 '틀리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합니다. '틀리지 않기'를 열심히 배워서 시험을 쳤는데, 그 문제를 또 틀려요. 틀리면 아쉽죠. 똑같은 문제들인데 수험자의 마음에는 맞춘 문제보다 틀린 문제의 중량이 상대적으로 훨씬 커요. 20개 문제 중에 3개 틀리면 맞춘 17개보다 틀린 3개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문제집 풀이, 쪽지시험, 모의고사, 중간, 기말고사, 그리고 대망의 수능을 통해 우리는 반복적으로 틀리는 경험을 하고, 그 결과를 등급, 성적, 석차, 합격과 불합격으로 받아 들게 되죠.



실력이란 건 경험의 총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맞춘 문제가 더 많더라도 마음속에는 틀렸던 기억, 잘못했던 기억이 더 많기 때문에 내가 내 실력을 판단할 때 '많이 틀린다'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스며든 '많이 틀린다'는 생각은 마치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사춘기 청소년들이 보는 거울과 같은 작용을 해요. 내 멋진 미소나 날렵한 턱선은 안 보이고 내 외모의 못난 점만 보이는 거예요. 눈이 너무 작고, 피부가 안 좋고, 오늘따라 머리 스타일도 이상하고, 표정은 왜 또 저렇게 찌질한지. 이 거울이 마음속에 생기면 실제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단점들 - 실제 남들 눈에는 단점이 아닐지라도 - 이 항상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이야기할 때, 식사를 할 때도 내 못생긴 얼굴이 계속 신경 쓰이지요.


(이미지 출처: pikrepo)


우리가 영어로 말을 하려 할 때 "윽..." 하고 머리가 하얘지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내가 가진 영어로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수많은 오답 가능성들이 생각납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배운 문법이나 단어뿐 아니라, 지금까지 어디선가 보고 들었던 '발음 이렇게 하면 틀려요'나 원어민과 이야기할 때 말하면 안 되는 콩글리시 표현들 등이 순식간에 나를 감싸죠.


누군가 "뭐했어?"라고 단순히 물어봤을 뿐인데, "I ate lunch."라고 대답하려다가, eat의 과거가 ate은 맞는지, 'eat lunch'는 콩글리시 표현이고 'had lunch'라고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여기서 내가 L 발음은 제대로 하는 건지 등 수많은 생각들이 먼저 드니 머리가 뜨거워집니다. 이런 생각이라도 나면 다행인데,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처리해 내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공포에 휩싸여요. 동물은 공포를 느끼면 얼어붙지요. 대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무엇을 하며 안되는지', 또는 '아 뭔가 하면 틀릴 텐데'의 폭포가 쏟아집니다. 이 현상은 나이가 많을수록, 즉 옛날식 주입식 교육을 받으신 분들일수록 심합니다. 그리고, 공부 더 많이 하신 분들, 공부 더 잘하신 분들일수록 심해요. 더 많이 틀려 봤고, 오답도 더 많이 아시니까요.



영어를 가르치면서 만나본 수많은 분들에게서 같은 모습을 보았어요. TV광고에 머리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등 다들 웃어넘기는 척 하지만 사실 이것은 심각한 트라우마예요. 강제로 출석한 학교에서 오랜 시간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습한 틀리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윽..." 하다가 실패한 대화가 반복될수록 더욱더 깊어지는 트라우마.


영어 대화에 몇 번 실패한 후 외국인이 말 걸까 봐 도망가는 사람, 외국 유학 중에 몇 번 민망하거나 부끄러운 상황을 겪은 후 위장장애 생겨 유학 포기하고 귀국한 사람, 꼭 가고 싶은 기업 n차 면접이 영어면접이라 무서워하다가 서러워서 집에서 혼자 울었다는 사람, 모두 직접 목격한 실제 경험담입니다. 이쯤 되면 PTSD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참 안타까워요. 영어 사대주의도 안타깝고, '잘난' 교재 영어의 폐단도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잘못한 것 하나도 없이 공부 열심히 한 만큼 더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니까요. 괴로워서 실패하고, 실패가 쌓여서 더 괴로워하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그럼 이 사태를 누가 만들어 낸 것인지 한번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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