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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주마가 아닌 사람이야! 나만의 고유한 것을 가져야 해!!!

지난 봄, 윤여정배우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 중 아래 내용에 마음이 가닿았다. ‘나는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 자기 역할을 했고 운이 좋아 상을 받았을 뿐이다’라는 말이 반가왔다. 17년간 몸담았던 서울문화재단의 슬로건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말고 저마다 고유한 자신만의 문화를 가꿔나가자는 ‘문화가 꿈, 문화 가꿈’이라 더욱 동질감을 느꼈다.

동시에 우리나라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의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의재 허백련 화백의 일대기를 다룬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란 책은 건축가인 조성룡 선생이 의재 허백련 선생을 기리는 미술관을 광주 무등산 자락에 지으며 책으로 집을 짓듯이편찬한 책이다.


의재 허백련은 시(詩)·서(書)·화(畵)는 하나라는 입장을 지켜온 문인화의 대가였는데 또 다른 삶의 여정에서는 광복 이후 혼란기에 농업학교를 세워 기술입국을 꾀했고, 차 문화를 보급했다고 한다. 인간관계 또한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등 우익은 물론 사회주의자인 지운 김철수와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폭넓게 교우했다고 한다.           

 나 또한 경쟁을 즐기지 않는다. 내가 경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어릴 적부터 늘 경계에 살면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세상을 눈치로 알아챈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재벌들이 사는 동네인 장충동 옆 광희동, 정치인들이 사는 상도동 옆 봉천동, 한국의 초대형 아파트가 있는 워커힐 옆 구리시. 사는 곳마다 경계이다 보니 부모님은 외동딸이라고 사립초등학교에 보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를 경험했고 내 안에서도 경계가 생겼다. 겉으로는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던 분리감 혹은 박탈감을 견뎌내기 어려웠든지, 혹은 거부했든지 나는 일찌감치 경쟁해야 하는 강박과 경쟁을 즐기는 체질, 매사에 이기고자 하는 목표의식 등 경쟁에 대한 모든 것을 아예 지워 버린듯하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나다운 나, 그리고 남에게 보여지는 나. 이런 경계들 속에서 나는 언제부턴지 나와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이겨 먹겠다고 경쟁하려 들지도 말고, 반대로 잘 보이겠다고 종속되지도 말고, 나는 나대로, 그저 나다움을 지키며 나만의 삶을 살아 가보자~라고 타협한 것 같다.

그렇게 내 삶의 태도를 스스로 달래기 위해 어리석을 우(愚)란 한자를 수놓아 젊은 시절 내내 매고 다니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영리하게 살아가는 경쟁파들과 나는 다르다는 식의 거리 두기를 하며 나다움의 정체성을 오래오래 지키고자 했다.      

 세상은 흐르고 변하여 기술의 평준화가 이뤄진 요즘은 경쟁으로 승부나는 세상이 아니라

아예 경쟁조차 없는 새로운 영역,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하는 세상이 왔다.



마침, 배우 윤여정은 경쟁사회 속에서 정상의 자리를 일컫는 ‘최고’(最高)에 관심이 없으며 본인은 되려 세상에 없던 단어와 가치인 ‘최중’(最中)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많은 부분에서 자기다움을 포기하며 무엇이 최고인지 합의된 기준도 없이 남을 짓밟거나 억누르며 최고를 향해 무조건적으로 달리기보다는 ‘최중’(最中)이라는 균형을 지키며 자기답게 자기만의 삶을 오롯이 살아낸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경쟁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창작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자 책무이다.

우리나라에서 예술가에게 공적 재원을 지원하고 다른 분야의 노동자에게는 없는 예술인고용복지법을 적용하는 이유는 경쟁사회의 구성원으로 내남없이 찌들어 살고있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다움,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창작의 힘으로 발견하게 해주고, 표현하게 하라는 엄중한 뜻이 있는게 아닐까?   


  

올해 경험한 새로운 사례를 소개해 본다. 제인 오스틴 원작의 연극 ‘오만과 편견’이다. 지난해 가을 YES24 3관 무대에 올린 후 코로나로 공연을 못하다가 고양어울림누리 기획공연으로 잠시 다시 올려졌는데 단 두 명의 배우가 소설 속 주요 21명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드레스의 앞섶을 추켜 올리면 백작의 승마바지 입은 모양이 드러나며 다른 역할로 분신하고, 뒷모습에서 앞모습으로 돌아서면 성별이 달라지기도 하고, 손수건 소품 하나로 어머니와 딸의 디테일이 전달되기도 했다. 일인다역의 작품은 많았지만 이 백년 전 고전 명작을 현대미술 설치물같은 원셋트를 배경으로 한 2인극은 처음 보는 새로운 연극이었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기존의 작품만들기가 아닌 전혀 다른 접근의 작품이었다. 고전이라는 보편성과 2인극의 단촐함, 21역에 집중하는 연기력의 탁월함으로 달컴퍼니의 ‘오만과 편견’은 다른 작품과 경쟁할 필요없이 고전 명작 ‘오만과 편견’2인극이라는 독보적인 존재로 빛났다.



예술 뿐 아니라 요즘 유행하고 있는 주식투자에 있어서도 경쟁은 한물갔고 이제는 기업마다 경제적 해자를 갖춘 곳을 찾아야 한다고 웨렌 버핏을 비롯 투자가들은 강조한다.

‘해자’란 말 그대로 중세시대 성벽 앞에 도랑을 파놓아 적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요즘 식으로 해석해보면 ‘경제적 해자’란 다른 기업이 흉내 내거나 넘보기 어려운 고유한 기술, 자기만의 세계, 특징을 칭한다. 그 중 가장 흉내내기 어렵고 모방하기 힘든 경제적 해자는 그 기업의 비전이고 철학인 경우가 많지않나 싶다.     

과연 나 또한 대체불가한 기획적 해자가 있는가?

예술가들 또한 대체불가한 예술적 해자가 있는가 ?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듯이 내 삶이나 예술작업은 나만의 고유한 해자를 갖춰야 할 일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 작품 외적인 것에 자신을 소비하거나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최중의 품위를 지키며, 동등하게 !     


*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디자인하우스 발간 심세중의 책 제목에서 따옴(의재 허백련의 말)

* 위의 글은 2021  월간 춤지 내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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