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책으로 마이오렌지 임팩트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이명희CIO가 번역한 ‘임팩트 네트워크’를 읽었다. 연결, 협업, 그리고 시스템 변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혼자서 풀 수 없는 문제를 여럿이 협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체인지 메이커들의 네트워크 활용서 성격을 지녔다. 나와 네트워크는 뗄래야 뗄 수가 없다. 21년 전 서울문화재단에 입사했을 당시, 문화 네트워크1팀장이라는 보직을 처음으로 맡았다. 나를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은 네트워크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곤 했다.
당시 문화 네트워크란 무엇이고 그 부서에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문화재단은 다양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언론 및 공공분야 이해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는 1팀에서, 기부자 및 펀드레이징 관련 네크워크는 2팀이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실무를 했었다.
책에서는 네트워크를 사람이나 사물을 연결하는 관계의 그물망으로 정의한다. 특히 사회와 환경 이슈를 해결하고자 하는 네트워크를 ‘임팩트 네트워크’라 칭하고 전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조직화의 방법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일하고 임팩트 네트워크를 가꾸는 방법을 전한다. 그 가운데 네트워크 리더십을 설명하는 관점에서 ‘둘 중 하나’ 대신에 ‘둘 다 그리고’로 생각하면서 삶의 이중성을 수용하는 태도에 공감이 갔다.
삶의 모든 측면은 겉보기엔 상반되어 보이지만 서로 모자란 것을 채워주는 힘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져 있음을 감안할 때 매사에 양극단 사이의 긴장 속에서 ‘둘 중 하나라는 선택’이 아니라 ‘둘 다 그리고’ 식의 사고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새해 들어 본 첫 영화 ‘서브스턴스(Substanace)’(감독 코랄라 파르자)를 살펴보자.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젊은 시절,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했다.
그나마 그 일마저도 50살이 되는 생일날, 프로듀서 하비로 부터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충격으로 귀가하던 중, 길가 광고판에 붙여진 자신의 포스터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다가 교통사고까지 당한 엘리자베스는 병원에서 ‘서브스턴스’라는 정체불명의 약물을 권유받는다.
그 약물을 처치하면 일주일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다른 일주일은 젊고 아름답게 다시 태어난 수(마거릿 퀄리)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각자의 삶을 일주일 간격으로 정확하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면 된다.
목소리로 나오는 서브스턴스는 엘리자베스와 수가 다른 사람이 아니며 같은 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또 다른 자신인 젊고 아름다운 수와 늙어버린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수를 질투하고 시기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동안 어느새 손가락이 짓무르고 발가락이 뒤틀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온몸이 울퉁불퉁해지면서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영화는 충격적이다. 특히 엔딩에서 엘리자베스는 ‘나에요 (It’s me)‘라면서 영화 속 사람들은 물론 영화 밖 극장 객석의 관객에까지 피칠갑을 하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항상 더 나은 나,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집, 더 나은 관계, 지금보다 더 나은, 더 나은을 향해 끝도 없이 확장되는 욕망에 대한 경고 같다, 온전하게 잠재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삶이 아닌,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드러난 면에만 기대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피세례라고나 할까?
만약, 젊고 아름다운 수로 살 것인가? 나이 먹어가는 엘리자베스로 살 것인가 ‘둘 중 하나’를 결정하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수와 엘리자베스, 그리도 또 다른 나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고민했다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이 아닌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을지 되돌아본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새해를 위해 다짐을 한다.
오늘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연봉을 위해, 더 나은 승진을 위해, 더 나은, 더 더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더 나은’이란 구호에 스스로 속지 말아야겠다 란 생각이 든다.
‘더 나은’의 기준이 어제의 내 자신이 아니라 남들과의 비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만들어진 수많은 스타들의 별은 놋쇠 소재로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히 녹슬어가고 시멘트 바닥은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그 위로 지나다니니 오물도 묻고 비도 맞고 햇빛에 바래며 변하고 만다. 인간 삶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엘리자베스보다 높은 연배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나는 영화처럼 더 나은 나를 위해 욕심을 내거나 무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탈하게, 남들이나 사회 속에서 무해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하다고 여길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둘 중 하나를 강요한다. 관계에서도 좋으냐 싫으냐, 나쁘냐를 나누고 비싼 거 싼 거, 예쁜 거 미운 거, 늙고 젊고, 아름답고 추하고, 성과 평가 고가가 높고 낮고, 지원사업에서 선정되고 떨어지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부지런하고 게으르고, 똑똑하고 어리석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경제적으로 잘살고 못살고, 옳고 그르고, 이기는 자가 있으면 지는 자가 있고 찬성과 반대 등등등
그러나 네트워크적 접근방식은 둘 중 하나로 나누고 편 가르고 벽을 쌓는 것이 아니다. 경계를 넘어 연결을 만들고 함께 일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상호연결성을 경험하며 상호의존적인 협력구조를 만들어 간다.
책 속에서 말하길 사람들은 양극성에 직면했을 때 뇌는 대상을 단순화하여 둘을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양극단 사이의 동적 긴장은 해소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네트워크 생애 주기 내내 인지되고 통합되며 관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적 긴장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생명력이 없고 배움도 진화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적 긴장이 아니라 동적 긴장이 중요하다. 정적 긴장이란 행동없는 긴장 상태로 스트레스만 쌓이지만 동적 긴장이란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와 갈등 속에서 얼마나 어려운 선택과 판단을 해나가야 할까? 관행적으로 둘 중 하나를 손쉽게, 혹은 기계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보다 좀 골치 아프고 불안불안하고 번거롭더라도 ‘둘 다 그리고’라는 네트워크적 사고의 길을 나의 길로 삼아본다.
*데이비드 에플리히먼 지음 이명희 번역의 ‘임팩트 네트워크’ 연결 협업 그리고 시스템 변화 (사랑의 나눔총서 11)103p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관련 내용도 일부 옮겼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