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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건 목소리뿐*

당신들의 목소리가 넘쳐나는 신개념 탄핵 집회 참여기

by 정연주

키세스 시위**가 있기 전 한남동 일신빌딩 앞 집회에 들린 적이 있다. 약수역에서 신년회가 있어, 잠깐 들러볼 요량이었다. 나는 한강진역 대신 버티고개역을 택했는데, 나처럼 버티고개에서 이동하는 집회 참여자들이 꽤 있었다. 목적지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었다. 집회 현장에 도착해서는 주변에 머물며 30분가량 무대 위 시민들의 발언을 들었다.


소문대로 듣기가 좋았다. 특히 집회 발언 특유의 억양이 없어 새로웠다. (물론 억양을 따라하는 시도들은 있었다 ^^;;) 당위나 대의보다는 각자의 삶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 우선시되는 것도 좋았다.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보기도 하니까. 궁금해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시민의 발언에는 더 열심히 듣게 되었다. 그는 곧 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내향형이든, 외향형이든, 퀴어, 활동가, 아티스트, 때로는 2찍이라는 사람들까지 각자의 정체성과 성향은 달랐지만, 우리는 한 편이 되어 광장에 있었다.


어떤 공감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같은 구석을 발견하면 무엇이든 이해하려고 애쓰고, 괜히 관심이 갔다. 마치 예매한 좌석처럼 찬 바닥에 나란히 앉아 무대 위 이야기를 듣고 있는 또 다른 시민들을 보면 감동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이 자리가 아니라면 서로 무관했을 타인을 통해 내가 속한 앎의 경계도 조금씩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태령 시위 후에 전국농민회 후원이 급격히 증가하고, 시위와 함께 전태일병원 건립 모금액 등이 늘어난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목소리를 나누는 것이 치유인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내가 왜 이 일을 겪었을까 잠시나마 이해 비슷한 것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 안에서 혼자일 때조차 혼자가 아닐 수 있다. 혼자일 때조차 함께 있게 된다. 만나서 말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떠올려보면 우리가 광장에 모이게 된 것도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화가 난다” “믿기지 않는다” “분노한다” “어이없다”는 감정, “국회로 와달라” “긴급하다” “지켜내자”는 외침을 12월 3일 엑스(트위터)에서 실시간 트렌드로 목격했다. 나는 불안에 떨며 보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 목소리에 화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 후 한 달 동안 시민들의 발언, 집회 현장의 분위기와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으며 눈물을 줄줄 흘려야 했다. 작게는 하트(좋아요)를 누르거나 리트윗(퍼가기)을 하고, 선뜻 모금이나 후원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중국 소설가인 위화의 산문집 제목대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말을 실감한 한 달이었다.


물론 그 한 달 동안 비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이 모든 것의 결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주 비관했고, 환멸을 느꼈고,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작은 목소리, 작은 진실이 반짝이며 나를 건져 올렸다. 자주 상상했고, 자꾸 희망했다. 내가 좋아하는 황인찬 시인의 ‘흐리고 한 빛 아래 우리는 잠시‘라는 시(문학동네시인선 194 황인찬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중에서) 전문은 이렇다.


조명 없는 밤길은 발이 안 보여서 무섭지 않아?

우리가 진짜 발 없이 걷고 있는 거면 어떡해


그게 무슨 농담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너는 어둠 속에서 말했지


집에 돌아가는 길은 멀다

가로등은 드문드문 흐리고 흰 빛


이거 봐, 발이 있긴 하네


흐린 빛 아래서 발을 내밀며 너는 말했고

나는 그냥 웃었어


집은 아주 멀고, 우리는 그 밤을 끝없이 걸었지

분명히 존재하는 두 발로 말이야


발밑에 펼쳐진

바닥 없는 어둠을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12월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광장에 서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던 듯싶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아 무섭지 않냐고, 두렵지 않냐고. 하지만 사람들은 드문드문 서로를 알아보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 안도하기도 했고. 비록 그 끝에 ‘바닥 없는 어둠’이 있을지라도 잠시나마 함께 걷는 것을 회피하지 않았다. 고작 한 번의 집회에 참여했을 뿐이지만 나도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지 몰라,
하지만 문화를 바꿨지,
나, 너, 우리의 마음도.


아쉬움을 뒤로 한채 신년회 장소로 가는 길, 한남동에서 목격한 광경들 덕분에 집회장으로 향하는 타인들을 잠시나마 다정한 눈빛으로 보게 되었다. 그중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꽂은 청년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조금 더더더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신년회에 온 친구들에게 내 목소리로 빨리 가서 말해줘야지, 이런 마음.


*시인 위스턴 휴 오든(W. H. Auden)의 시 제목 “All I Have Is a Voice(우리가 가진 건 목소리뿐)”에서 가져왔다.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한남동 키세스 시위대는 우주전사”라는 글을 올렸다. 맞다, 이 우주전사들에게 미래를 빚졌다. (관련 기사​)

폭설을 맞으며 보온용 은색 담요를 쓴 채 밤샘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c)정혜경 진보당 의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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