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절반 정도를 혼밥 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혼자 먹는 밥은 물론 영화, 쇼핑, 운동, 이사까지도 웬만한 일은 혼자서 잘(?) 한다.
어떤 것들은 혼자 하는 게 더 편하고 쾌적한 것들도 많지만, 혼자가 지속되는 건 여전히 두렵고 무섭다.
혼자인 시간이 지속되면 ‘외로움’, ‘고립’ 같은 감정들이 빠르게 마음 곳곳을 잠식해 꽈리를 틀고 앉는다.
그런 기분이 계속되면 고독사로 최후를 마지한 어느 뉴스 기사가 내 엔딩이 되거나
오래전 본 영화에 등장한 사랑이나 함께 같은 것을 갈구하고 집착하지만,
결국엔 파국을 맞이하는 위험한 캐릭터들의 결말이 내 엔딩이 될 것 같은
필요 없는 걱정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누군가는 혼자일 때가 진정한 나를 위한 시간이고, 휴식이며,
자아성찰에 시간이라 말하지만 그런 말들은 그저 질소 가득한 과자포장 같기만 하다.
홀로인 시간이 넘쳐날 때는 TV 모든 채널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하고, 앉아서 책을 보다,
누워도 보지만, 혼자인 시간은 한참이나 남아있다. 시간을 메우기 위해
달리기도 하고 청소도 해보지만 침묵의 시간은 노력과 달리 쉽게 종료되지 않고 계속된다.
그나마 오던 마케팅 문자나 알람 따위도 오지 않는 단절 이벤트가 계속되면
내 주변에 있는 많은 것들과 대화를 해보기도 하지만 영화 속 낭만은 일도 찾아보기 어렵다.
착한 일을 하지 않아 산타클로스가 벌이라도 준 것인가도 생각해 보지만
이 정도면 전생에 많은 사람들에게 말로 아프게 큰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기분이 든다.
죄목은 책장에 숙제처럼 들어앉아 있는 백 년의 고독으로
우주 속에 혼자만 덩그러니 입 막고 100년 정도를 떠도는 형벌이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있어야 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돌아올 곳이 없는 여행은
갈 곳 없는 헤매는 그저 방황이자, 낙오일 뿐이다.
혼자만이 시간이 아름다운 건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인데
회사도 다니는 하루에 두 개 이상의 역할은 거뜬하게 해내는 24시간이 모자란
혼자 먹는 조용한 점심이 제일 좋다는 내 옆에 동료일 것이다.
요즘 들어 혼자만의 시간이 더 무서워진 건 겨울에 있었던 일들 때문이다.
매일 볼 수밖에 없는 뉴스도 그렇지만 출퇴근 길이 종로였고 주말마다 개인적인 일로
종로일대를 다녀야 했는데 악다구니를 쓰며 노래도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들을 보면
그 소리가 ‘나 외로워.’ ‘나 좀 봐줘.’ ‘내 이야기 좀 들어봐.’라고 들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외로움, 두려움을 핑계로 종교를 찾았던 적이 있어 그런지 더욱 그들에게 동요됐다.
의심 없는 확신으로 가득한 그들을 볼 때마다 며칠이고 혼자인 나에게,
입 한번 떼고 있지 못한 나를 찾아 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면
나 역시 확신에 가득한 눈으로 그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노래할 것만 같았다.
혼자 사는 사람은 엄마가 해주 것, 아빠가 했던 것, 그리고 그들이 내게 주었던
용기, 따뜻함, 위로, 다정함, 안정감, 즐거움과 같은 많은 것들도 혼자서 만들어 가야 한다.
부모님이 내게 준 것들 중 따뜻하게 지낼 곳, 맛있는 음식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럭저럭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몰랐던
알고 보니 너무 중요한 그것들은 쉽게 대체되지 않았다.
그건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그래서 사람만이 유일하다고 말하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또래 친구들 세 명이 함께 일기를 쓰고 있다. 위대한 철학자에 일기를 봤는데
그의 일기에 질투도, 뒷담화도 있어서 한층 더 쉽게 일기를 쓰게 된 것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써 내려가는 일기를 ‘일기’라고 할 순 없지만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일도 없고, SNS 모습처럼 더하거나, 과장되거나, 의식하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솔직함과 위로, 격려와 따뜻함들이 촘촘하게 오가서 온기 가득한 공간이 된다.
가상공간에 위로가 오프라인 공간에 무서움과 공포를 문밖으로 나가게 하는 기적에 시간이다.
별것 아닌 소소한 만두를 만드는 일상 이야기, 고민, 괴로움 질투도 떡볶이도 만두도 있는
한 팔 거리에 있는 그 공간은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는 보이지 않아 더 위로가 되는 공간이 된다.
광화문에서 보게 되는 그분들에게 4명 이하와 일기 쓰기를 추천해야 하나 싶을 만큼
소소한 과자부스러기 정도의 소리만 나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광화문으로 가지 않는 기댈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