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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President Not Found.

브라우저를 닫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것.

by non finito

404404 President Not Found. President Not Found


"404 President Not Found."

웹페이지 연결이 안 될 때 브라우저에 뜨는 404 에러를 패러디한 이 기막힌 짧은 한줄이 눈에 들어온 건 4월 4일을 12시간 앞둔 시각이었다. 계엄을 선포하고 내란을 일으킨 자가 파면되느냐, 아니면 복귀하여 보통의 상식으로 지켜온 공동체가 붕괴되느냐를 가르는 결정의 시간을 앞둔 전야였다. 그날이 언제일지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애타게 기다려온 민주시민들에게 그 밤은, 광장에 모였던 때의 절실함만큼 결연한 밤이 되었을 터였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선고문을 읽는 20분간 이 나라는 숨죽인 듯 고요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러나 하나의 마음으로 귀를 열고 한 사람의 입을 주목하던 그 순간,

오전 11시 22분. "피청구인 …………을 파면한다."


이 당연한 말을 듣기까지 마음이 다 타버렸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의사당 앞과 전국 각지에서 일순간 퍼졌던 함성이, 해를 지나고 계절을 건너 광화문으로 다시 이어진 듯했다.


헌재 선고 이틀 전 저녁, 일을 마치고 잠시라도 들러 기를 모으겠다는 마음으로 광장을 다시 찾았다. 며칠 전과는 달리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 모인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도 보였다. 날이 따뜻해져서였을까? 아니, 아마도 D-2, 희망 때문이었으리라.


4월 4일 선고 당일은 추운 겨울 동안 연대했던 이름 모를 모두와 함께 결과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집에 남았다. 혼자 집에서 그 순간을 맞이하는 편을 택했다. 왠지 모를 허망함이랄까,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한 곳에 집중됐던 에너지가 갈 길을 잃는 듯했던 걸까. 결과를 듣고 난 후 가슴에 구멍이 날 것만 같은 예감이 나를 홀로 집에 머물게 했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파면된 자는 반성은커녕 관저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가든파티를 했다. 그가 임명한 자들은 헌재에서 살아 돌아와 여전히 관료직을 꿰차고 그들만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권한대행자는 약 50일 후면 선출될 누군가의 권한을 넘보며 칼을 휘두르고 있다. 파면이라는 결정은 그들에게 단 하나의 제동장치도 되지 못했다.


404 에러처럼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아니, 곳곳에 남아 있었다. 결국 내란은 형태만 바꾸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URL은 바뀌었지만, 브라우저는 여전히 캐시된 과거를 로딩하고 있었다.

광장에서의 뜨거웠던 연대, 함께함의 기억은 생생한데 이와 대비되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눈 뜨고 지켜보자니 속이 갑갑하다. 우리는 광장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지만 정작 일상 구석구석에는 코드 깊숙이 숨겨진 악성 스크립트처럼 여전히 작동 중인 그들의 시스템과 내란 세력의 뿌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게 퍼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 봄이 오고 있었다. 어제의 파면이 세상을 바꿨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제자리였다. 지금껏 이 공동체가 어떻게든 유지되어온 것이 오히려 기적처럼 느껴졌다. 마치 끝이라는 말은 관념일 뿐,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끝이 아니라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내란의 흔적을 지우고 모든 것을 정상화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더 선명해졌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적어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봄이 오는 와중에도 세상은 여전히 폭력적이다.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나는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쓴다.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파면 이후의 공허함 속에서도 그 다음을 상상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광장에서의 뜨거운 연대가 내란 세력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404 에러 페이지를 보고 단순히 실망하고 브라우저를 닫는 대신, 문제의 근원을 찾아 수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파면 선고 하나로 끝나지 않는, 헌정 질서를 뒤흔든 집단의 집요한 저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리는 언론 환경 속에서도 진실을 가려보고자 하는 의식과 의지다. 무너짐 직전의 이 난국을 이끌 지도자를 제대로 선별할 수 있는 눈을 갖기를 바란다.


한 인물을 악마로 만들기위한 집요한 프레임,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 이제는 그 진실과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12.3 계엄일을 기준으로 판단해도 좋다. 그날 이후 5개월 동안,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정확히 알기위해 부디 게으르지 않기를.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길 희망한다.

“대체 왜?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도배된 기사 헤드라인은 정말 진실인가?

“프레임 뒤편에서 그가 실천해 온 것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땠는가?”


봄은, 선택에서 비롯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 우리의 의식과 연대.


이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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