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생후 한 달이 되기 전부터 만 3세까지 우린 제주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제주에서 살았다고 하면 매일 바다나 산과 오름, 숲을 가까이하며 살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조금 달랐다.
만 3세 이전의 너에게 제주의 거센 바람, 낯선 모래의 감촉, 끈적이는 바닷물의 느낌은 즐거움보다는 두려움이었고, 나는 그런 너에게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사명감에 불타 매일 제주에 있는 모든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체험관 및 관광지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으나 너는 힘겨워했고 나도 즐기지 못했던 시간들.
세월이 지나 어느덧 9살이 된 너. 그때와 다르게 너의 방학은 꼭 이러려던 건 아니었지만 별다른 계획도, 특강도, 체험도 없다. 그저 제때 일어나고 자고 조금 더 건강하고 여유로운 식사를 하고 띄엄띄엄 방과 후 수업을 가고 집안일을 돕고…… 그 외엔 잉여로운 너의 곁에서 함께 놀다가 각자 놀다가 때론 뒹굴뒹굴 보내는 너도 즐기고 나도 행복한 시간들.
“나 이번 방학에 뭐 했다!”
할만한 일들은 없지만 원래 방학은 재충전의 시간이 아니겠느냐. 우리의 잉여로운 시간을 그 무엇으로 채우지 않아도 꽤 즐겁고 나름 의미 있고 제법 빛나는 9살의 방학이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