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형편 때문에 일찍 철이 들어버렸지만
동생만은 조금 더 늦게 어른의 세계를 알았으면 했던
K-장녀 고수리 작가의 글을 읽다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동생이 다니던 선교원 재롱잔치 날,
엄마 손을 잡고 발레 공연을 하는 동생을
응원하러 갔던 여덟 살의 나.
화려한 화장에 귀걸이를 한 아이들 사이에서
축 처진 치마를 입은 내 동생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주머니에 아껴 두었던 100원이 떠올랐고
걸어서 20분쯤 걸릴 문구점까지 달려가
액세서리 뽑기 기계 앞에 섰다.
“제발 우리 동생 귀에도
귀걸이를 걸어 줄 수 있게 해 주세요.
다른 거 말고 꼭 귀걸이요.
착하게 살게요.”
기회는 단 한 번.
드르륵, 떼구르르.
간절한 기도가 통했을까.
아직도 기억나는
초승달 모양의 푸른 귀걸이를 들고
부푼 마음으로 단숨에 동생에게 달려갔다.
공연 내내
내 눈에는
동생이 움직일 때마다
달랑달랑 흔들리던
초승달 귀걸이만 보였고
그날만은
100원짜리 장난감 귀걸이가
내게는 진주였고 다이아몬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