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동면하던 곰처럼 웅크려 있던 몸이
봄기운에 먼저 반응한다.
거실에 놓인 소파와 식탁,
그리고 남편이 직접 만든 거실장만 남기고
집안의 물건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비워진 공간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에도 볕이 들 무렵,
퇴근한 남편의 첫마디가 거실을 울린다.
“와! 왜 이렇게 깨끗해?”
하지만 비움의 희열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제오늘 연달아 도착한 택배 상자들이
거실 한복판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디스크로 한 달 넘게 고생하면서도,
남편은 새벽까지 물건을 풀고 조립한다.
20년 넘게 함께 살았지만,
내가 비우는 속도는
그가 사들이는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지 못한다.
여느 때처럼 잔소리 양념을 쳐보지만,
아이처럼 웃는 남편의 미소를 보면
적당히 지켜보는 수밖에.
둘 다 사들이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아,참!
이 집에는 낙서 한 장도 못 버리는 꼬마가 살았지?’
엄마는 비우고,
아빠는 채우고,
아이는 간직하는
기묘한 삼박자가 모여
간질간질
우리 집의 봄이 움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