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나의 고통이 당신들의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by 이제 봄

가끔 생각한다.

만약 20대 초입에 누군가가

"너는 지금 기분장애가 이미 시작되었고 그 뿌리는 어린 시절에 있으며 그래서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 "라고 한마디 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수월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 없이 20대를 버텼고, 어느 순간부터 견딜 수 없는 늪에 빠진 듯한 느낌 이 들어 결국 정신과를 찾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 문제가 무엇인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문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떤 결함을 가진 사람인지 정확히 몰랐다. 다만 늘 칼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칼끝에서 버티며 생을 이어갈 의미는 더 이상 없었기에, 나는 별일 없이도 그저 죽어야 할 것 같았고 그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 한마디, 대가 없는 호의 같은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 내게 내원하는 환자들도 여러 가지 산부인과적 문제로 나를 찾지만 종국에는 정신적 고통이 바닥에 깔려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들이 내뿜는 신호 같은 것이 잘 읽힌다. 특히 우울하거나 불안한 내면을 가진 환자들은 결국 내가 걸어온 길 어딘가쯤에 서있는 것이 보이고 적극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편이다.


뜻밖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의사인 나조차 그랬다.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모든 지식이 있었음에도, 나는 30대가 넘도록 내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임을 몰랐다. 인사이트가 반이라는 말은 진실이었고, 너무도 오랜시간 고통받은 뒤에야 그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치료 전의 나와 치료 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다시 태어났다고 말해도 될 만큼의 큰 변화였다.


우리의 언어는 마음을 비추는 창이고, 대화는 마음을 다듬는 도구이며, 마음이 바로 흐르기 시작하면 몸도 비로소 편안해진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이제 부터 올릴 글은 내가 걸어온 길을 기록하는 작업이자, 중년이 되도록 나를 가두고 있던 유리벽을 완전히 지워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고통 속에 살면서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갇혀 있는 또 다른 누군가 있다면 그들에게 작은 숨구멍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머릿속의 단상을 날것 그대로 전하기 위해 그때 그때의 단상을 시간의 순서는 무시하고 올릴 계획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통해 “아, 나도 나아질 수 있겠구나”라는 감각을 얻는다면,

몇십 년을 고통 속에서 말라가던 내 시간들이 그 의미를 찾게 될 것 같다.

나는 먼지가 아니었고, 잠시만 날았던 존재도 아니었고,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라진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금가루가 되어 다시 빛을 내기 위해, 어느 곳에서는 숨을 고르고 있었던 것뿐인 것으로.

부디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있다면, 이 글이 그 고통 한방울 이라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