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감. 고립감.
9 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공허감이었다. 뭘 해도 허무하고, 뿌연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대부분 혼자 지냈다. 고동학교를 입학했을때,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나 또한 다가가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어린 마음에 부려본 고집이었지만, 사실은 상처받기 싫어 잔뜩 웅크린 고양이의 하악질이었다. 나중에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이미 그때는 무리무리 친한 그룹이 생겨 끼어들기 어려웠다.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거나 창밖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그야말로 뜬구름을 잡으며 시간을 죽였다.
아이들은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그것이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내가 전에는 어떻게 웃었더라. 눈웃음이 특징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았었는데 언젠가부터 웃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었다. 반 친구들은 당시 인기 있던 HOT 나 젝스키스 핑클 같은 아이돌의 사진을 모으고 공유하며 한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것들이 참 부질없고 쓸데없는 짓처럼 보였다. 입시를 압둔 아이들이 시간낭비 하는 모습으로 생각되어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특별하며 철들었다고 자기 위안을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쉬는시간이면 아이들은 큰소리로 친구를 부르며 매점으로 우당당탕 달려갔다. 무슨 열의로 몸에도 좋지 않는 과자 부스러기를 먹으러 저리 바삐 달려 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축제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들떠서 신이 나 있었다. 무슨 옷을 입을지 누구를 초대할지 어떤 노래를 할지. 축제를 진행하며 아이들이 한꺼번에 내는 함성같은 것은 은 지구 반대편의 뉴스 처럼 나와 상관없는 일 같았다.
대부분은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기도 썼다. 말도 붙여보고 다가가 보기도 했다. 재미가 없지만 축제 봉사활동을 참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닫힌 내 마음을 여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이미 그들은 내가 공부에만 매진하는 재미없는 모범생이었다.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면 이 기분을 벗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방해하는 친구가 없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이지 단짝 한 명이라도 필요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예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 짧은 편지를 써서 가져오는 친구도 있었고, 매점 가자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과 마음을 교류하는 느낌이 젼혀 들지 않았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지금 표현하자면 고립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높고 두텁고 투명한 벽이 내 마음을 단단히 방어하고 있었기로, 상처에는 안전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내 기분부전증은 이미 고등학교 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