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친구가 자살했다. 18살 따뜻한,봄에.

마음의 병이 깊어지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by 이제 봄

18살 때, 한 친구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착한 성품으로 인기가 좋았다. 게다가 그림도 노래도 체육도 곧잘 했다. 공부도 상위권이었다. 나는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다. 눈이 크고 서글서글했으며 늘 웃는 표정이었다. 모두에게 친절했고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을 모두가 느끼는 모양인지 그 친구 주위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친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아이들 대신에, 항상 혼자였던, 소위 말하는 외톨이였던 아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했다. 사회성 떨어지는 그 외톨이 아이는 아이들이 일부러 따돌리던 게 아니라, 같이 있으면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어, 사람이 잘 붙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 둘의 관계는 온전히 그 친구의 자비로 맺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 둘이 긴밀해 보였다기보다는, 그저 뭔가 한쪽이 한쪽에게 베푸는 시혜적인 느낌이었달까. 나는 어쨌든 그 친구의 측근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절친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진짜 마음을 나누는 사이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을 말하자면 친구는 누구와도 '정말' 친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누구와도 '정말' 친하는 법을 몰라, 그렇게 가버렸나 싶기도 했다.


우리는 3학년을 건너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진학했음에도 달에 한 번은 만나는 인연이 되었다. 그것은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포함한 다른 친구 몇몇을 묶어 모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필두로 우리는 한두 달에 한번 모여 고등학교 생활의 팍팍함을 나누고 하루정도 가볍게 바람을 쏘이면서 마음을 환기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에 오르고 얼마 안 되었었던 5월, 햇살도 화창한 토요일에, 시험도 잘 치르고 나온 그날에 , 한가로이 TV를 보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자살이었다.


나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머리가 울리고 온 세상이 갑자기 진공이었다. 그 길로 모임의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고 우리는 모여 지금 알게 된 이 믿기지 않은 사실이 진실일까 아닐까 점쳐보았다. 하릴없이 그 아이의 집 앞을 서성이다 아무런 소득 없이 귀가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그 친구를 무덤 앞 사진으로 마주 할 수 있었다. 그날 그를 아는 친구들과 모여 생애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취했다.


일주일을 도시락을 거의 그대로 남겼다. 나는 늘 어머니의 수고를 생각해 빈 도시락을 집에 가져가던 아이였다. 혼란스러웠다. 추상적 개념이었던 죽음이 어른도 아닌 친구에게 들이닥쳤다니, 정확히 말하자면 들이닥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

우리가 알아챌 수는 없었던 건가. 사는 것이 무엇이고 죽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죽을 거라면 왜 사는 건가. 갑자기 사람이 사라진다면 어떡해야 하는 건가. 가버리면 남은 사람은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나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데. 왜 살고 있는가, 자살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나는 외롭지만 왜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 내가 바보인가, 그 친구가 현명한 건가, 어차피 괴로운데 나도 죽을 수는 없나, 그렇지만 어떻게 죽는다는 말인가, 친구는 무엇이 고통스러웠나, 나는 그 죽음에 책임이 없는가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친구는 우리도 필요없었던 건가. 그 대목에서 버림받은 느낌도 들었다.


친구는 오랫동안 조금씩 약국에서 수면제를 사 모았고 그러다가 집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창문과 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많은 양의 약을 한꺼번에 먹었다고 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두었고 응급실에 데려가 위세척을 했지만 그렇게 갔다고 들었다.

친구가 죽기 일주일 전에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었다.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라 집전화를 어머니가 받았고 그저 통화가 어렵다고 했었다. 통화는 그때뿐 아니라 늘 어려웠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때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그가 계획한 일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부질없는 여러 가지 가정을 쉴세 없이 했다. 우리의 모임은 더 이상 유지 될 수 없었다. 모임은 해체되었고, 학교 내 친구가 없던 나는, 기댈 유일한 언덕이 없어졌다. 그것 또한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도시락을 그대로 가져오던 어느 날 어머니는

요새 밥을 거의 남겨 온다며 그 아이는 왜 하필 고등학교 때 갑자기 죽어가지고 내 딸의 공부를 방해하는지 모르겠다고 신경질을 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지난하게 나를 괴롭혔던 흉골 압통이 시작되었다. 그 통증은 심장을 조이는 것도, 위가 막힌 것 같은 압박감도. 쓰라림도 아닌 뭔가 흉골 자체에서 올라오는 둔탁한, 막대기 같은 것이 안에서 누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물리적인 상처로 생기는 통증과 달랐고,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그 흉통이 친구의 자살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한두 번 어머니에게 가슴이 불편하다고 말해봤지만 ' 왜 그런다냐'라는 무심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아플 때마다 일기를 썼고, 창문 밖으로 뜬구름을 보았다. 친구를 생각했고, 그가 가 있을 세상을 생각했고, 그저 지금 이 시간이 어느 순간 불이 꺼지듯이 꺼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꺼지지 않을 지도 모르니 기계같이 공부도 했다. 그리고 때로 혼자 울었다.


훗날 그 통증이 da costa syndrome 과 유사하다는 것을 의과대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뜻밖에 내과 시간에 배웠고, 흉통이 있을 때 고려해보아야할 수많은 기타 진단 안에 들어가 있었다. 진료를 본적은 없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교과서에 나올만큼 설명 가능한 병명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것에 이름 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매일 아침 이 통증이 오늘도 있을 것 인가 말 것인가 긴장하며 잠에서 깼고 늘 역시나 통증은 살아있었다. 그렇게 2년을 견뎠다. 그리고 수능을 치렀다.


통증은 대학을 가면서 환경이 바뀌자 거짓말 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