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개원 6개월,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by 이제 봄

마흔 중반이 넘어가려 하던 날에 나는 드디어 개원을 했다.

충동적이진 않았다. 5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자리를 보러 다녔다.

다니면서도 늘 자신감이 없었다.

언젠가 내가 할 것 같은 일이고 하고 싶어서 대비하고 있었지만,

과연, 내가, 정말, 혼자서, 환자를 책임질 수 있을까 미지수였다.

그것은 그때까지도 나를 좀먹고 있었던 증상 때문이었다.

20대를 나를 갉아먹었던 기능장애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순간순간 정신이 하늘로 휘발되었다가 돌아왔다.

어떤 날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훑어버릴 것 같은 머리의 날카로움에

다 나았나 희망을 갖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순간순간 영혼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들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이 지워졌다.

잠시 애쓰면 기억이 돌아오긴 했으나, 그로 인해 위축된 마음은 잘 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빈도수가 줄어들면서 , 자신감이 내게 스며들었다 빠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내가 어떻게 보일지 늘 긴장하고 있었다.

이런 나를 알게 되면 누구라도 무시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은 어쩐지 알고 있었다. 20년이 넘게 붙들고 있기만 하는 이 믿음은 막연하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인생의 변곡점을 도달하여 방향을 튼 느낌이 들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나는 그저 이곳이면 충분하겠다는 느낌이 드는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고

내 병원을 만들었다. 그즈음해서는 환경변화가 오히려 내 인생을 단단하게 버티어 주리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자신감이 서서히 물이 들어 차오르기 시작하는 느낌도 들었다.


오픈해서 정신없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그래도 내가 만든 병원 시스템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이었고, 사람이 많았고, 별일 없이 하루를 마감하던 퇴근길이었다.

갑자기 숨이 차오르더니 헐떡이지 않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흡사 전력질주 한 것 같았다. 공황장애 인가 싶었지만 죽을 거 같은 느낌은 없었다. 그 숨을 꾹 참노라니 어지럽더니 사지에 힘이 빠졌다. 손잡이를 꾹 부여잡고 그 시기를 넘겼더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피곤했나, 싶었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로 그 증상은 점점 빈번해졌다. 어떤 날은 잠을 자다가도, 어떤 날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앞에 두고도, 어떤 날은 화장실에서 숨을 헐떡거렸다. 앞에 사람이 있을 때는 가족일지라도 힘을 주어 참았다. 이상하지만 참아야지 하면 참아졌다. 그렇지만 호흡곤란과 사지마비 느낌은 시작된다 싶으면 꼭 느끼고 지나가야 소강되곤 했다. 마치 가위에 눌리기 직전 온몸의 소름을 느끼지 않으려 버티다 느껴야 지나가는 것과 비슷했다. 문 선생님과 함께 상담치료를 할 때 먹었던 약을 알아서 내가 처방해 먹어봐도 소용없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증상은 점점 하루 종일 내 시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병원 건물 내의 사건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가 겹치자 불안은 극에 달했다. 무작정 약의 용량을 늘렸다. 내가 아는 최대치였다. 그러고도 나아지지 않자, 문 선생님께 전화해 용량을 더 늘려도 되느냐고 문의를 드렸다. 선생님은 더 이상은 안된다고 하셨다. 나는 막막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


그땐 미처 몰랐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환자를 앞에 두고 졸기도 한두 번 했었고, 그 일로 인터넷 댓글에 원장이 존다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는 늘 엎드려 지냈다. 직원들이 원장의 건강상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전 중 졸다 잘 달리던 옆 차선을 넘어가 사고를 내기도 했다. 당시 그것이 나는 약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한 개원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피곤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증상이 느끼고 6달이 지나던 어느 날 기어코 그것이 찾아왔다. 18살, 죽은 친구를 소화하지 못해 나를 괴롭혔던 바로 그 통증이었다.


막연히 정신적인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통증은 너무도 확정적이었다. 내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문 선생님은 병원, 집과 멀어서 이제는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다시 다른 선생님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내 두 번째 정신과 치료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