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한 번의 치료를 4년간이나 했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다른 선생님을 찾는 것은 꽤 망설임이 드는 일이었다.
마치 새 보호자를 찾는 일 같달까.
내 마음은 마치 물에 담긴 화장지 같이 여려서
조그만 자극에도 금세 흐물거리듯이 찢어져버릴 것이었다.
그것이 어떤 기대를 갖고 찾아간 치료자에 받는 상처라면
과연 쉬이 회복될 수 있을까...... 두려웠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일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 6개월이 흘렀다.
그간에 호흡곤란과 사지 무력감, 어지러움, 가슴 통증을
오롯이 혼자서 앓아내었다.
혼자서 앓아 내는 일은
내게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 한창 연락을 자주 하던 친구가 어떤 문제로 정신분석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폭행을 당하고 정서지지기반을 제공받지 못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였다.
친구는 지금 자신을 치료해 주시는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추천해 주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예약했다.
선생님은 15분 정도의 만남으로 내 마음을 온전히 얻었다. 그러나 스케줄이 다 차 있어 더 이상의 진료는 어려웠고 병원을 여덟곳 가량 추천해 주셨다. 리스트의 모든 병원에 전화를 넣어 대기를 걸었다. 바로 한 타임 진료만이라도 가능한 병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어떤 면에서는 위로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1달쯤 후에 한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병원으로 가는 길,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또 이 치료를 해야 되는 상황이 왔구나. 치료가되기는 할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 선생님은 약하고 예민한 부분을 말해도 다치지 않게 할 사람일까. 이기적이고 말이 많고 가볍기만 한 동기가 당직이 편하다는 이유로 정신과를 선택하여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혹시 그런 사람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병원은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풀향기가 은은한 곳이었다.
내 키보다 큰 화분들이 많아 흡사 풀숲에 온 느낌도 들었다. 의도된 것 같았다.
상담 치료를 위주로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대기 의자도 몇 개 없었다. 마주칠 사람이 많지는 않겠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대기실 한쪽 구석에는 책이 진열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내가 예약한 선생님께서 쓴 책도 있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여기저기를 보고 있노라니
문이 열리고 들어오세요 라는 말이 들렸다.
치료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선생님의 책상은 있었지만 그걸 사이에 두고 앉는 방식은 아니었다
소파 같은 곳에 앉으라 안내를 받았고 그 맞은편에 선생님도 앉으셨다. 가운이 아닌 사복을 입고 계셨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에 왔다기보다는 어떤 조언자를 만나러 온 느낌이었다.
넓은 치료실 한쪽 벽면 가득히 책장이 차지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책과, 선생님의 성과를 알 수 있는 영어로 된 증명서와, 외국저명인사로 보이는 사람과 찍은 사진 같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창문 한쪽으로 드라마에서나 봤던 카우치도 눈에 띄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내가 치료받았던 과거와 지금 현재 처한 어려움등에 대해서도 늘어놓았다. 가족관계와 어머니. 아버지의 성향, 어렸을 때의 에피소드, 의사가 된 경위 같은 것들도 두서없이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가 언급한 가까운 사람들의 성향을 몇 마디 말을 근거로 해석해 주셨다. 놀랍게도 그 근거가 합리적이었고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 또한 논리적이었으며 해석도 맞아 보였다. 50분이 짧았다. 가슴에 커다란 통풍구가 생겨서 치료실을 나오자 심장부터 뱃속까지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내 가슴이 이러한 시원함을 느낄수 있었는지 새삼스러웠다.
병원을 나와 지하철로 가는 길의 내리막을 터벅터벅 걸으며
인생의 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구나 했다.
한두달로 끝날 치료가 아닌것 같았다.
아, 내가 또 몇 년의 대장정을 시작했구나.
그리고 이것이 나를 많이 성장시키겠구나.
여전히 나는 아픈 사람이구나.
그렇게 치료는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