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동 학대의 피해자였다.

크니까 안때리니 좋네

by 이제 봄

어머니는 자녀들을 때렸다.

본격적으로 카우치를 쓰는 분석치료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그 아픈 사실을 대면했다.

나는 폭행당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는 것은

오래된 친구 이름을 잊는다거나 볼펜을 어디 두었는지 잊는다는 종류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의식이 생존을 위해 지운 것이었다.


카우치를 쓴 지 며칠 되지 않았던 어떤 날에,

7살 된 아이를 샤워시키면서 아이의 반복된 짜증과 투정을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샤워기로 아이의 어깨를 때렸다.

순식 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는 큰소리로 반응하며 울었다.

그리고 아이는 아빠, 할머니, 큰아빠, 태권도 관장님, oo 이모, 유치원 선생님

자신이 아는 모든 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이를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나는 당황했다.

아이의 반응보다는, 나 자신에게였다.

내가 샤워기를 휘두르던 그 순간, 잠시 나는 내가 아닌 느낌이었다.

잠시 다른 인격이 튀어나온 것 같았고,

한두 대 때리고 싶은 것이 아니고 흠씬 패주고 싶은 욕구가 튀어 올랐었다.

그것은 평소에 아이가 나를 힘들게 했을 때 일어나는 짜증과는 결이 달랐다.

나는 울부짖는 아이를 앞에 두고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내가 뭘 한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잠들기 전 나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네가 아무리 짜증을 부렸어도 엄마가 참지 못하고 너를 때린 것은 대단히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짜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손등에 사인 복사 코팅까지 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아이는 금세 환하게 웃으며

나를 용서해 주었다.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그런 느낌은 잠시 과거로 휙 다녀온 것으로 보인다고,

잠시 내가 아닌 다른 느낌은 어렸을 적 외부로부터 온 자극이 살아났을 가능성이 있겠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맞고 자랐다는 말인데 정말 그랬을까? 정말? 내가 맞았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내 느낌이 이상한 거 아닐까? 그저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닐까?

모두들 육아하다 보면 그런 순간 한 번쯤은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을 내 과거의 상처로 연결 짓는 것은 섣부른 가정 아닐까?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폭언, 방치를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거기까지도 이제야 겨우 그래, 그랬나 보다 싶은데,

이제 폭력이라고? 치료실을 나오는데 어지러웠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아침 산책을 하다가

그때 샤워기로 때릴 때 참 느낌이 이상했어.

평생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어.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더니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한 걸음도 더 걸을 수가 없어서 길가에 주저앉아 나오지도 않은 신물을 뱉어내려고 한참을 욱욱 거렸다.


그러고 난 후에, 잊을만하면 이따금 씩 기억의 파편들이 의식을 넘어 튀어 올라왔다.

욕실에서 발가벗은 채로 빨간 바가지로 어머니에게 맞는 장면,

어머니가 줄넘기를 오빠의 등을 겨냥해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장면,

그리고 교과서 참고서를 동생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던 장면.

그런 장면들이 소리도 맥락도 없이, 음소거로, 파편화되어,

길을 가다가, 지하철에서 서있다가, 갑자기 의식 안으로 각각 튀어 올라왔다.

비명소리 나 우는 소리는 장면에 입혀지지 않은 채

따로따로 귓가에서 한 번씩 웅웅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중학교 시절 언젠가 이제 안 때려서 참 좋다. 크니까 안 때리는구나, 내가 이제 더 이상 잘못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크니까 존중해서 안 때리는 건가,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 기억만큼은 실로 선명했다.

이것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크니까 안 때렸다는 말은 크기 전에는 많이 맞았다는 말이 되는 거지요” 하셨다.


그리고 이제껏 선생님과 나눠본바

고양이를 발로 차는 잔인성을 가진 어머니는,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고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죄책감을 보이지 않으며

참을성이 없고 감정기복이 심한 어머니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그대로 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고 덧붙이셨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 세션을 마치고는 계속해서 울렁거렸고 호흡이 가빴으며 전신에 마비감을 느꼈다.

진료를 보다가도 잠시 끊고 화장실에 들어가 가끔씩 쉬어야 했다.

직원들에게 내보이지 않고 싶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으려니 더 힘들었다.

이 모든 것 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사실도 어렵지만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효자손을 무기라며 적을 무찌른다고 내게 휘두르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효자손을 휘두르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날 저녁 나는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약을 두 배를 먹어야 했고

겨우 잠든 꿈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 그만해 제발.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아이와 장난을 치다 서로 팔을 잡아당겼는데

또 어지러워졌다.

이번엔 어머니가 내 팔을 질질 잡아끌며

너는 좀 맞아야 해.라고 했던 장면이었다.


한 번도 마주 하지 못했던

기억인지 상상인지 무엇인지 모를 이런 장면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밤을 설쳤다.

20대 어느 날에 느꼈던 칼끝이 다시 발아래 놓이는 것도 같고

속이 뒤집어지고 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폭행 속에서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어졌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내 어린 시절을 직면하는 일은

각오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나는 아동 학대의 피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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