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내 마음이 흐릿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겠을 때, 나는 감정일기를 쓴다.
감정일기는 나에게 오랜 습관처럼 나에게 익숙하고, 그저 일상처럼 해오던 일이었지만, 요즘은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비교적 평온한 날들이 많아지면서, 감정일기를 쓸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감정일기 대신 감사일기가 내 일기장에 채워지는 날이 많아지는, 그런 변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조금 더 차분하게 맞이하는 게 내심 좋기도 했다.
하지만
주말 이틀 동안, 평소와 다르게 나는 무심코 간식을 집어먹고 있었다. 단 것들이 하나 둘 내 입으로 들어갔고 계속 무언가를 찾으며 먹을 것을 입에 넣고 있었다.
‘어, 오늘 좀 이상한데?’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느낌을 무시하고 계속 먹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속이 불편해졌다. 더부룩함이 밀려와 결국 약을 먹고, 남편에게 매실차를 부탁했다.
신체적인 체증도 있었겠지만, 무시했던 감정이 마음까지 체하게 만든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일기장은 언제나 그런 마음의 짐들이 하나 둘 짐을 푸는 곳이었다. 감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그것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고 부풀어 오르다 결국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게 악순환이 되면
평범한 일상도 점점 현실 지옥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일기 속에서 내 감정을 조심히 풀다 보면, 마치 대나무 숲 속에서 크게 숨을 들이쉬듯,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글로 풀어지는 동안, 나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가끔은 생각보다 더 깊게 얽힌 감정들을 만나기도 하고, 예상보다 더 어려운 마음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글로 마주하고 나면, 내 마음의 짐은 조금씩 조금씩 덜어진다.
어제도 그랬다.
시간을 들여 일기를 쓰다 보니 최근의 고민과 걱정들이 주렁주렁 이어지며 나왔다. 친정 가족들의 언쟁, 친구의 수술 소식, 그리고 최근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내면의 시선들, 미래의 불안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적어가며 내 마음을 드러내주고 있었다. 머리로는 찾을 수 없었던 답들이 서서히 글로 명료해졌다.
결국, 내가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 않아 이것저것 먹었고,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 했던 이유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나 가치에 맞춰 살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화내고, 짜증 내는 건 쉽다. 그걸 안 한 이유는 누구 때문이 아니라, 동요되고 싶지 않았던 내 선택이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글로 적어가며 나와 내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그토록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웠던 감정과 고통의 짐들이 순간 바람이 되어 멀리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정말 허무하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일기를 쓰고 나면,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며 손바닥만한 일기장에 고마움이 올라온다.
감정을 써 내려간 그 시간이, 비로소 내 안에 쌓였던 무거운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일기는 나에게 작은 치료법 같기도 하고, 내 마음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산소통 같기도 하다.
이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서 글로 마음을 만나, 나는 나를 더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내 마음을 받아들이며, 때로는 용서하고 또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내일은 어떤 마음들이 일기장에 적힐까?
그게 어떤 마음이든 늘 그렇듯 무거웠던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 자신을 더 온전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또 그렇게 나를 발견하며 살아가겠지.
일기는 어느새 그렇게 조용히 내 삶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