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의 기사에 따르면 2019년 웹소설의 경제규모가 약 5000억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2018년의 조사를 담은 기사에서 4000억원을 돌파를 다뤘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 규모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출판 시장의 규모 축소화라는 위기를 목도하는 시점에서, 또 다른 활자 텍스트인 웹소설의 괄목할 성장에 어떠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웹소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조금 난감하기도 한 모양이다. 2017년 9월에 있었던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웹소설을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불러온 인터넷의 돌연변이"라고 표현했으며, 같은 자리에 있던 서하주 교수 역시 "(웹소설을) 문학적 현상 안에서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 말하기도 했다.(각주 : 육준수 기자(2017), 《이승우 소설가 "인터넷의 돌연변이, 웹소설" 우려스러워.....》, 뉴스페이퍼)
웹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매우 복잡한 관점을 보인다. 어떤이는 웹소설을 장르소설의 하나의 분파라고 보는가 하면, 어떤이는 '순수소설'과 '장르소설'에 구분되는 또 다른 분류라고도 주장한다. 대부분의 경우 웹소설이 로맨스, 판타지, 무협, 현대극이라는 큰 장르 카테고리로 분류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나, 현대 한국 장르 문학이 주류로 다루는 SF, 호러, 스릴러, 추리극과 범주적으로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장르 문학 씬이 형성된 1990년대를 살펴보면, 한국의 장르 문학은 근원적으로 온라인을 연재 플랫폼으로써 진행되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선정우는 《오쓰카 에이지 -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에서 "1980년대나 1990년대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이나 문화가 없다 보니 직접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만화 분야를 예로 들자면 순정만화 잡지 창간이나 동인지 문화 형성 애니메이션 잡지의 탄생, PC와 인터넷 문화의 발전 등이죠."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대한민국에 장르 문학 씬을 포함한 서브 컬처 필드가 생성된 시기와 연유를 정확히 짚어낸다. 물론 이전에도 문윤성, 김내성 등의 창작 SF 작가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문화적 개념의 씬으로 형성된 것은 그러한 '부재'를 채우려 했던 80~90년대의 에너지가 중점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대소설연구》 74호에 실린 《한국장르판타지의 개념과 장르관습》에서 구본혁은 한국의 '장르판타지'가 1993~95년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로 대표되는 PC 통신 VT 서비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마찬가지로 허민석 역시 그의 논문 《1990년대 비남성 작가 SF 소설의 젠더 정치적 의미 – 송경아와 듀나(DJUNA)를 중심으로》를 통해 한국의 SF 역시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과소동)이나 PC SERVE의 '멋진 신세계'등 동호회들의 활동에서 그 촉발적 에너지가 발생했음을 말한다. 이것들은 한국의 장르 문학이 80~90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PC 통신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촉발적으로 생성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특히 이 두 글을 통해 한국 장르 문학 씬의 생성 시기에 판타지와 SF라는 두 장르가 주요히 작동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현재 판타지 소설을 주요 콘텐츠로 품고 있는 웹소설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된다. 다만 이 둘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으로 현재 (출판물로써의)'장르 소설'과 (모바일 콘텐츠로써의) '웹소설'로 나뉘게 되어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재미있는 관점이 있다. 세계문학비교연구 2018년 가을호에서 노희준은 자신의 에세이 《플랫폼 기반 웹 소설의 장르성 연구》를 통해 "장르와 매체 사이에 쌍방향적 선택이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말하며, "기존의 장르소설(인터넷소설을 포함하여)이 ‘종이책’과 ‘플랫폼’중 자신에게 더 잘 맞는 매체와 결합한 결과"라고 정리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일정량의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장르는 출판 매체에 머무르고, "간헐적, 교차적, 개방적"(짧게 여러번 소비할 수 있고, 다수의 플랫폼을 건너다니며 소비할 수 있으며, 개별의 이야기만 소비해도 유효하다는 점)에 걸맞는 장르는 모바일이라는 환경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웹소설이 출판된 활자로써의 수용을 전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원적으로 '다른 매체'로 규정하는 관점과 달리, 노희준은 성격에 맞는 매개과 관계를 맺은 뒤, 그에 걸맞는 형상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관점에 가깝다. 이에 동의한다면 웹소설은 모바일 시대에 걸맞게 수정된 장르 문학의 자손이라고 봐도 충분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현재의 웹소설을 규정할 때에 그것이 몸담고 있는 플랫폼의 형태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몇 가지 장르의 문학들이 모바일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바꾼 것'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상품적 형태를 인지한 플랫폼들에 의해 '간택받은' 것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플랫폼 콘텐츠의 폭발적 확산에는 그 수용 양태(언제나 손에 쥐고 있다는 점)와 동시에 결재 방식의 간소화 역시 큰 요인으로 작동한 것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수용자는 소비의 간소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판매자는 유통과 판매를 동시에 하는 주체적인 시장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또한, 김준현은 '웹소설'이 출판 소설과 구분되는 특징으로써 '~물'이라는 기호를 거론한다. 그는 현재 웹소설씬에서 사용되는 '~물'이라는 구분이 "소설의 하위장르를 지칭하는 장르 개념"임과 동시에 "새로운 (유사) 장르를 지칭할 때 쓰이는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고 정리하는데, 작품의 소재나 특정 전개를 포함하는 '모티프(화소)'로써의 군집을 명명하기 위한 작은 개념의 지칭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재벌물, 갑질물,사이다물’이 한꺼번에 이 작품의 장르적 특성을 설명하는 라벨처럼 쓰일 수"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장르와 구분된다 말한다. 김예니 역시 자신의 논문 《웹소설의 미감과 장르교섭 양상》 에서 김준현의 글을 인용하며 웹소설이 이러한 '~물'을 통해 "블록을 쌓듯 놀이처럼 각 모티프들의 서로 다른 결합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직조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물'이라는, 다수의 해시태그를 부착한 웹소설은 시장에서의 선택을 요하는 마케팅적 성질과 연결된다. 그러한 목적으로 장르는 모티프로써 파편화되며, 웹소설의 컨템포러리를 형성한다. 웹소설은 개개의 작품이 '어떻게 다를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큰개념 안에 묶일 것인가'가를 더 중요한 문제로써 가진다. 물론 장르의 소비라는 것은 일정량의 컨벤션에 대한 기대의 결과이지만, 개별의 장르 문학들이 그 안에서 얼마만큼의 차이를 가질 것인가를 항상 고려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역시 웹소설이 가진 상업적 성질의 결과처럼 느껴진다.
비록 SF, 호러, 스릴러, 추리극은 웹소설이라는 시장에 '간택받지' 못했지만, 이것을 남겨진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한다. 이것은 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분류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이며 폭발하는 도서 대여점의 한 켠을 까맣게 도배한 판타지 소설들로부터 이미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서울 SF아카이브의 대표인 한상준이 2018년 《한겨례》에 <한국에서는 왜 SF문학이 인기가 없었을까?>라는 글을 기고할 정도의 아픈 시기를 거쳤지만, 2019년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10만부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내고, SF가 '한국 문학의 미래'로 거론되는 시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2020년 발간된 <지금, 만화> 9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