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에서의 유령성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다만 질문은 단순히 ‘유령 캐릭터가 있느냐’로 한정해 묻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과연 ‘유령성’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가령, 「홈 스위트 홈」의 악령 ‘벨’과 「파피 플레이 타임」의 괴물 ‘허기우기’는 구분되는가? 이들이 각기 다른 개념의 존재로 인식되는가? 두 존재는 큰 틀에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둘 모두 플레이어 캐릭터를 인식하고, 추적하며, 접촉하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말하자면 비디오 게임에서의 유령은 대체로 물리적 존재인 괴물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가장 오래된 유령, 「팩맨」의 네 유령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바꿔말하면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그 탄생부터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물리적 오브젝트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질문은 크게 우회해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은 괴물과 구분될 수 있는가? 또는 비디오게임은 유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비디오게임에서의 유령성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유령이란 물질과 비물질의 중간 지점, 접촉과 접촉 불가능성의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유령이란 물질적corporeal이면서도 비실체적incorporeal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벽을 투과하고 공중을 날아다니지만, 때때로 물건을 건드리고 소리를 발생시킨다. 유령이란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물성을 초월한다.
앞서 말했듯 비디오게임의 유령이란 이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순적 개체들이다. 이 유령들은 언제나 플레이어 캐릭터를 향해 돌진하고, 그들과의 접촉을 위해 활동한다. 그들은 엄밀히 실존한다. 카메라로 악령을 퇴치하는 「령~제로~」 시리즈의 가장 대표적인 전략은 ‘공격당하기 전에 쓰러뜨린다’이다. 여기서 악령의 공격이란 접촉의 메커니즘을 전제한다. 플레이어는 그들이 ‘접촉해오기 전’에 촬영이라는 비실체적 공격으로 쓰러뜨려야 한다. 이는 전적으로 아이러니다. 여기서 물질성을 초월하는 존재는 악령이 아니라 (물질인) 카메라다. 「F.E.A.R.」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동일하다. 플레이어는 알마가 생성해낸 유령Ghost들을 총을 쏴 제거할 수 있다. 여기서도 차라리,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총이 유령보다 훨씬 초월적이다.
비디오게임의 메커니즘은 (히트박스로 규정되는) 충돌을 전제한다. 결국 이 내부에서 물질성을 완전히 초월한다는 것은 게임적 구조를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있어 그런 조건은 전적으로 ‘글리치’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벽이라는 구조를 뚫고 들어오는 것은 유령적이라기보다는 ‘벽뚫는 버그’를 연상시키며 따라서 불공정의 감각을 초래한다. 비디오게임에서의 물질성의 초월은 그 한계지점의 돌파가 아니다. 오히려 물리적 위력의 일방적인 우위성에서 온다.
「화이트 데이」의 공포의 핵심은 일방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수위에게서 나타난다. 오히려 물리적 한계지점을 뛰어넘는, 구조와 무관하게 천천히 접근해오는 머리 귀신은, 그 시청각적 특성을 통해 아찔함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머리 귀신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못하기에 그다지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못한다. 차라리 그들이 공포스러운 것은 접촉을 통해 수위라는 물리적 주체를 불러들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머리 귀신조차 아찔한 감각과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접촉이라는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따라서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전적으로 현존presence한다. 있는듯 하지만 없거나 또는 없는듯 하지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 존재를 가진다는 의미다. 이를 정확히 보여주는 게임이 바로 「파스모포비아」다. 이 게임은 다양한 방법론과 조건들로 어떠한 유령이 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말하자면 이 게임의 목적은 유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물론 유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편 명백히 오브젝트로써 그 공간에 ‘존재한다’. 게다가 이 게임의 팬덤은 유령이 가진 감각 패턴을 밝혀냈는데, 재미있게도 그 가시범위는 물체에 의해 일정량 차단될 수 있다. 심지어는 유령의 종류에 따라 이동속도나 가속도 여부까지 부여되어 있다. 이 게임에서 유령은 투명invisible하지만 비실체적incorporeal이지는 않다. 앞서 설명한대로 이 유령이 초월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철저히 일방적인 실체라는 정도일 것이다.
한편 유스티나 야닉Justyna Janik은 2019년의 에세이 《Ghosts of the Present Past: Spectrality in the Video Game Object》에서 비디오게임의 유령에 달리 접근한다. 야닉이 끌어들이는 것은 데리다의 유령론hauntology이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존재론ontology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 유령론을 도입한다. 그의 정리에 있어 유령은 가시적이면서 비가시적인 존재, 과거의 존재이면서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그리고 미래까지 예시하는 존재다.
야닉은 특히 유령의 몰시간성anachronie을 중심으로 유령론의 적용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차용한다면, 비디오게임에는 오히려 유령을 탄생시킬만큼의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야닉은 이렇게 적는다. ‘게임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는 거의 동시에 제작되는 것 같다. It seems that the game world’s past, present, and future are produced almost simultaneously(...)’ 즉 「F.E.A.R.」의 악령 캐릭터 알마는 유령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과거는 어디까지나 게임 외적으로 설정되어진 과거에 불과하다. 알마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뛰어들고 마주친 그 순간에 형성된 현재 시제의 존재임이 분명하다. 물론 야닉은 이러한 시간 형성의 동시성을 유령론의 몰시간성과 어느정도 동일시한다. 하지만 선형적 시간의 인과개념이 없다는 것은 압축할만한 시간의 원본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알마가 몰시간성의 존재인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과거조차 없는 존재다.
이것은 비디오게임의 유령 일반에서 반복되는 성질이다. 이 유령들에게 부여된 ‘유령이 된 배경’이라는 사건들은 (야닉이 규정한) 게임 세계 내부의 사건이 아니라 오직 허구적으로 구성된 이유에 불과하다. 결국 플레이어는 과거에 대한 증언, (「바이오쇼크」 등에서 볼 수 있는) 환영, 기록, 때로는 명백히 시각적인 컷씬 등을 통해 그들이 허구적 과거로부터 온 존재임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마주치는 그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함과 동시에 발생한 현재의 존재다. 만약 플레이어가 과거를 지시하는 허구적 기록들과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영 현재라는 시간에 묶일 수 밖에 없다.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게임 제너레이션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