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 토니 마이어스 / 박정수 / 앨피
나는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빨간 만년필을 옆에 놓아둔다. 내용 중에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거나, 가끔 오탈자를 발견하는 상황이 되면 밑줄을 죽죽 긋거나 표시를 한다. 빈 여백에 간단한 메모를 하기도 한다.
몇 달 전, ‘로쟈의 인문학 서재’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이 빨간 만년필을 사용하게 만든 내용은 [책머리에]라는 제목의 앞 부분이었다.
8 페이지 중간쯤에 “...... 철학에 대한 진지한 잡담과 지젝 읽기, 그리고...”라는 부분이었다. 지금 들춰보니 “지젝 읽기”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 옆에 “오타?”라고 적어두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마도 ‘지적 읽기’, 즉 지적인 책 읽기의 오타일 거라고 예상을 했었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그것이 ‘지적 읽기’가 아니라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혼자 보고 있음에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잉크로 쓴 것만 아니라면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싶은 심정...
그래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라는 책을 읽고 쓴 서평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었다.
‘도대체 지젝이 뭐하는 사람이야?’
지인 한 분이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를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얼마 전, 책을 몇 권 주문하러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필요한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 후, 찜 목록을 훑어보다가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내가 미워한다!’라는 생각을 하며 함께 주문을 했다.
이 책은 토니 마이어스라는 사람이 지젝이라는 인물과 그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사상에 대해 풀어쓴 책이다.
이런 류의 책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덕분인지 한 번 읽고 나도 도통 책의 내용이 정리되지 않았다. 앞서도 적었듯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버릇을 갖고 있는 나는 이 책에서도 몇 군데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내가 밑줄을 그은 부분은 주로 이해가 잘 안 되거나 평소 막연하게 의문을 갖고 있던 부분에 대한 내용이었다.
리뷰를 쓸 생각으로 책을 다시 펼쳤다. 밑줄 그은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빠르게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뭐랄까...
이 사람, 지젝이라는 양반의 머릿속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고민을 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밑줄 그은 부분을 모두 타이핑하고 보니 한글 문서로 열 장이 넘었다.
별로 분량이 많지도 않은 책인데 이 정도라니, 내가 사상, 철학 분야에 문외한인 게 사실이라는 것만 확인한 기분이다.
이 책은 지젝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상당히 많은 주제를 언급한다.
정치학, 정신분석학, 이데올로기, 주체, 포스트모던, 성, 페미니즘, 인종주의까지...
사실 아직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내가 어떤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정리가 잘 안 된다.
다만 내용 중에서 기억나는 몇 가지 공감 가는 부분은 있다.
옮긴이의 글 부분에서 점쟁이, 무당으로 대변하는 선택에 따른 책임감, 그것을 대신하는 데에 따르는 당사자의 책임회피성에 대한 부분에서 우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도 기억에 남고, 신에 대한 언급, 인종주의, 특히 과격할 정도로 행동하는 집단에 대한 분석도 기억에 남는다.
요즘 내가 주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해서이다. 남들은 사춘기 때에나 한다는 그런 고민을 마흔을 넘겨 중반에 이르러서야 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죽는데, 무엇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그 모든 것들의 마지막은 결국 죽음인데 그런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열정을 갖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왜 그런 사람들에게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존경을 표하는가?
이 책,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는 나의 이런 고민에 해답을 마련해주지는 못했다.
글쎄... 조금은 힌트를 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좀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고...
이번에는 아예 지젝이 직접 쓴 책을 몇 권 읽어봐야 하나?
밑줄 그은 문장들
8P
어차피 선택은 자신이 한다. 그럼에도 그 선택이 마치 타자에 의해 이루어진 양 가장함으로써 자기에게 지워진 결과의 불확정성과 책임의 부담을 덜어내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편리한 방법인가 꿈에서도 되돌아오는 부담스러운 ‘주체’를 대신 떠맡아주는 점쟁이들에게 그만한 복채는 결코 아깝지 않다. 주체(자유)에서의 도피를 도와주는 것이 탈근대적 무속의 역할이다.
- 어쩌면 ‘자유’ 니 ‘인권’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심지어 공부 열심히 하고 나서 원하는 대학을 선택할 때조차 점쟁이와 목사, 스님에게 빌어달라고 부탁하는 걸 보면 결국 우리는 자유나 인권이 아니라 안전함을 원하는 것 아닐까 싶다. 뭐랄까? 극단적인 불안감 결벽증 환자?
24P
부정 어법은 ‘어떤 것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바로 그것을 말하는 장치’다.
- 음... “앞으로 저는 닭과 댓통령, 그 상관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뭐 이런 거?
47P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 혹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다수에 대한 야비한 억압과 지배를 통해 소수가 광대한 부를 축적하도록 허용하는 불평등으로 인해 분열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 칼 마르크스가 이렇게 주장했다고 한다. 물론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의 불합리함을 해결하기 위해 공산주의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건 현명하지 않겠지만, 이 지적은 사실이다. 병신년 새해 벽두에 바라보는 대한민국을 보더라도...
103P
우리는 이웃과 함께 살기 위해 마치 역겨운 냄새를 맡지 않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꼴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 평화를 위해(설령 그것이 가장된 것일지라도), 안녕과 질서와 행복을 위해 우리는 애써 비극을 외면한다. 마치 비극은 없었던 것처럼,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진실을 목도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런 비겁한 사회가, 비겁한 우리가 세월호의 비극을 낳고,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예, 나도 알아요. 하지만 그 닭도 그걸 알까요?”
- 어? 이거 언급하지 않기로 했는데? 뭐, 내가 언급한 게 아니고 책에 등장하는 문장이니까...
112P
최초의 법은 정확히 이 ‘폭력’을 통해 제 자신을 법으로 정립시킨다.
-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더 큰 폭력을 용인하는 아이러니
129
우리는 이데올로기 속 주체들에게 그들이 속고 있다고 말해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맞다. 우리는 속고 있지 않다. 다만 누군가에게 문책을 당했을 때, “어? 전 몰랐습니다. 저는 속았습니다. 저는 피해자입니다.”라고 말할 구멍을 만들 뿐...
131P
달리 말해, 화폐는 부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10달러를 갖고 있고 나는 5달러를 갖고 있다면, 당신이 나보다 부자이다. 하지만 화폐 자체는 실제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상품가치의 간접적 표현으로, 상품화된 인간 노동의 관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 언젠가 돈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 있다. (뭐, 거창하게 심각한 고민을 했다거나 진지한 사색을 했다고 말할 건 아니라고 본다.) 결국 돈은 상징일 뿐이다. 거추장스럽게 쌀과 천과 땅을 갖고 있지 않아도 언제든 필요한 것들과 교환할 수 있는 상징. 상징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만, 그 상징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그 화폐를 사용하는 집단의 상호 신뢰성이 높다는 말이다. 심지어 화폐의 사용 주체인 인간보다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게 자본주의 고, 그게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결국 천박한 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가 된다. 헬조선...
145P
즉, 이데올로기는 의미가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 대한민국은 바로 이데올로기의 싸움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 아닐까? 지금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쪽빠리와 빨갱이의 대결...
188P
2001년 다국적군이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시작한 직후,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 George W. Bush (1946~ )는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전역에 한 참전 군인의 딸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주었다. 그 편지에서 소녀는 아빠가 싸우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빠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썼다. 부시는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애국주의라고 말한다.
지젝은 이를 두고 약간의 사고 실험을 해보자고 한다. 똑같은 편지를 아프가니스탄의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가 썼다면? 우리(서구인)는 그런 행동을 냉소적이고 교활한 근본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비난하지 않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소녀의 편지를 애국주의의 산물로 보느냐 조작의 결과로 보느냐의 차이가 우리 인식에 작용하는 잉여 지식이다.
- 군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태극기 앞에서 “충성”을 외치며 경례를 하면? 애국 군인이 된다. 인민군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북한기 앞에서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분명 그를 비웃거나 적개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게 현실이지.
242P
그래서 미군 교도관들에게 디지털카메라나 비디오 촬영 기능이 있는 휴대폰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킨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행위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가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음으로, 미군 당국의 즉각적인 반응은 화들짝 놀라는 최소한의 수준이었다. 자기 병사들은 전쟁 포로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제네바 협정 내용을 충분하게 교육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치 포로를 모욕하고 고문하지 않도록 교육받았어야 했다는 듯이.
- 사실 다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고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게 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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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써둔 리뷰를 꺼내어 읽어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그게 현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