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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Jun 05. 2017

큐레이션 - 마이클 바스카

큐레이션 과감히 덜어내는 힘 
마이클 바스카 (지은이) | 최윤영 (옮긴이) | 예문아카이브 | 2016-11-17 |원제 Curation: the power of selection in a world of excess)


신간도서 리뷰어를 모집한다는 글을 읽고 신청을 했고, 2주 전 이 책이 집으로 도착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이런 류의 책은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까?
단순한 에세이나 수필집은 당연히 아니고처세술이라고 볼 수도 없고자기계발서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언제부턴가 꽤 자주 듣는 용어 중의 하나인 큐레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 핵심은 이 부분인 것 같다.


<로마 정치에서부터 뉴욕 소변기까지라는 소제목을 가진 106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큐레이션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이 단어는 사용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그 의미 역시 한층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큐레이션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 점점 그 범위를 확장해간다는 이야기다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작가는 108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다른 많은 영어 단어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역사를 가진 채 계속해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한다단어가 의미 변화 없이 정체돼 있는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이다따라서 큐레이션의 의미 역시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화의 과정을 거치리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드농의 루브르 박물관뒤샹의 <>, 버너스 리의 웹 등 큐레이션이 놓인 맥락이 변화하면서 그 단어의 의미 역시 그에 맞게 대응과 확장을 거듭했다.”


사람은 무엇에든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을 갖는다.
내가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배운 전각이라는 분야만 해도 그렇다작은 돌덩어리에 글자를 새긴다그리고는 그걸 전각이라고 부른다돌에 새긴 글,그림을 전각이라는 범주에 넣음으로써 차가운 돌과 그 위에 새긴 무늬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어디 그 뿐이랴?
인간의 삶에서 의미라는 단어를 빼면 사실 남는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사람을 다른 생명체와 구분하는 잣대로 언어를 꼽기도 하지만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의미부여하기가 아닐까?
이 책의 94페이지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마르셀 뒤샹의 <>이라는 작품이라고 알려진 남자 소변기가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남자 소변기를 마르셀 뒤샹이라는 사람의 서명을 넣고 작품이라고 부르고 나니 그 흔하디 흔한 소변기는 졸지에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작품으로 탈바꿈했다심지어 그 소변기는 철거예정이던 건물 화장실에서 떼어낸 거라던가?
더욱이 지금은 원작은 사라지고 복제품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솔직히 복제품과 진품의 차이가 여기에서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의미부여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을 꼼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미술관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직업으로 생각한다아직은 이런 인식이 압도적이다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는 큐레이터의 의미를 사회 전반으로 확대한다의미를 부여하고 정리하고 단순화하는 모든 작업을 큐레이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심지어 슈퍼마켓에서 물품을 정리하는 일부터 기업체에서 신상품을 개발하는 과정까지 큐레이션의 범주에 넣어 소개한다.


이 책에서도 간혹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 큐레이션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큐레이션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쯤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조금 과격하게 반대하는 기분으로 말하자면 적반하장이고좋게 보자면 원래 있던 것에 훨씬 더 긍정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니 금상첨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작가는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갖는 확장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두툼한 큐레이션에 관한 책을 집필했을 것이다.


읽는 내내 그럴듯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좀 심한데?“라는 생각이 번갈아 들었다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보자면 집 정리를 하고 책장에 놓인 책을 재배치하는 것도 큐레이션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큐레이션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무한 확장되고 많은 산업분야에서 이 용어를 채택한다면 아마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바스카는큐레이션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한 선도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법 그럴듯한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겠지만...


이 책이 번역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는 이야기는 이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 대해 긍정을 하거나 부정할 생각은 없다다만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큐레이션이라는 용어의 사용범위가 얼마나 확장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생각이다.


57P
실상 우리 모두는 과잉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다.
- 문명화 된 현대사회에서도 빈곤의 문제는 심각하다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빈곤 문제는 절대적 의미에서의 빈곤은 분명 아니다상대적 빈곤이다.


106P
큐레이션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이 단어는 사용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그 의미 역시 한층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 이건 어쩌면 이 책의 작가가 원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그렇지 않다면 작가가 이 책을 쓸 이유는 없을테니...


121P
큐레이션은 곧 선별작업이다또한 배치정제단순화맥락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건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른다그동안 누군가 내게 큐레이터가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으면 대충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전시장 꾸미는 사람 아냐?”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그럴듯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141P
광범위한 선택 범위는 우리를 압도해 버린다올바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쉽사리 짐으로 느껴지곤 한다선택의 순간에 갈등하고 망설이는 것은 물론이다선택의 종류가 너무 많으면 결국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진다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 마지막 문장,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누군가 무엇이든 선택을 해야만 돌아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일 것이다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면 사회 곳곳에서 활기차게 돌아가겠지만요즘 우리나라처럼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딱 한군데로 쏠린다면 그 눈길 밖으로 밀려난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선택하지 않고 따라서 선택받지 못하는 고통...


153P
영국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은 수많은 소장품을 대상으로 큐레이션 작업을 진행한 덕분에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거듭났다이에 대해 19세기 영국 수학자 오거스터스 드 모건(Augustus de Morg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 박물관을 생각해보자이곳에 있는 유물은 단지 박물관에 전시돼 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인가원하면 요청하면 된다하지만 뭔가를 원하려면 반드시 그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그렇지 않고서는 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 우리말에 아는 게 힘이다라는 표현이 있다무조건 맞는 말이다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무언가를 새로 배우려면 그 계통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의미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모르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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