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잠수함의 떠나고 싶은 북리뷰
편성준, 윤혜자 부부작가의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 노랑잠수함의 떠나고 싶은 북리뷰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 꽉 조인 나사를 풀러 제주로 떠난 공처가 남편의 자발적 고독 살이 | 냥이 문고 5
편성준, 윤혜자 (지은이)
행성 B(행성비)
2021-11-29
“쓸모없음”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자기 계발, 호기심, 심심해서...
그 모든 이유를 이 책에 대입해봤다.
딱히 어울릴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그냥 읽으면 되는 책이다.
한 달 동안의 멋진 야영 체험담도 아니고, 제주에서 도를 닦는 이야기도 아니며, 아내에게서 독립하겠다는 투쟁을 불태우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심지어 제목마저 내용과 맞지 않는다!
제목은 남편이 아내에게 한 달만 나갔다 온다고 선포 내지는 의견을 구하는 문장이지만, 내용을 보니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게 “제주에 아는 분의 집이 비어 있으니 거기 가서 한 달만 살다와!”라고 명령 내지는 지시하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이런 명령을 내려주시는 아내님이 있다면 그 남자는 행복한 거겠지만 말이다.
음식을 먹을 때 너무 맵고 짠, 자극적인 건 좋지 않다고 한다. 심심한 맛을 내는 음식을 먹게 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음... 건강한 맛인 걸?”
뭐든 너무 과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심심하기만 한 음식을 먹는 건 별로 재미없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이 돋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그냥 제주에서 하루하루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기록한 책이다. 심지어 같은 날의 아내의 일기도 함께 기록했다.
남편은 제주에서 놀면서 글을 쓰고, 아내는 서울에서 열심히 살면서 짤막한 일기를 쓴다.
이 남자가 제주에서 하릴없이 돌아다닐 때 아내는 서울에서 김장하느라 고생을 했다거나, 한 달 살이 중 일정 때문에 잠깐 집에 온 남편을 기다리는, 다시 제주로 떠나보내는 이야기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별 이야기처럼 비장하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딱히 거창한 주제를 담고 있지 않다.
이런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별 일 없이 제주에서의 한 달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심심하게 서울로 돌아온다.
내가 이 책이 심심하다고, 특별하거나 거창한 무언가가 없는 책이라고 느끼는 건 아마도 작가가 이 책을 그렇게 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175P
사실 나는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쓰는 글이 오히려 힘들다. 목적이 너무 분명한 글은 금방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에피소드가 다 주제의식을 향해서만 수렴되는 영화나 소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이 책은 맥락이나 전개가 중요한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이 매일 매시간 목적의식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투쟁하듯 살 수는 없다.
학생들이 줄넘기, 자전거 타기 마저 학원에서 돈을 내고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모든 걸 그렇게 배우고 익히며 치열하게 사는 건 재미없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참 마음에 든다.
읽는 내내 긴장감은 1도 없고, 궁금증도 전혀 들지 않지만 그래도 단숨에 읽어 내릴 정도로 눈길을 잡아끌었다.
아무리 좋게 봐줄래도 “재미있다”고는 평가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이 책은 잘 읽히고 키득거리게 되고 곰곰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을 쓴 편성준 작가가 내 동창이라는 게 무척 자랑스럽다.
전작인 “부부가 함께 놀고 있습니다”에서는 제목처럼 부부가 같이 노는 모습을 이야기했고, 이 책 역시 제목에서 보여주듯 한 달 동안 중년의 남자가 혼자 노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