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자들
김초엽 (지은이) 퍼블리온2023-10-13
책 마지막의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몇 년 전 한 미술 전시에서 발표한 짧은 이야기가 이 소설의 씨앗이 되었다. 그때 나는 인간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래서 인간은 물질적으로 바깥 세계와 뒤얽혀 있고 그 사실은 우리의 세포와 단백질, 분자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게다가 인간의 몸속에는 수많은 ‘외부에서 온 전재들’이 같이 살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실제로 우리를 구성한다. 인간이 ‘우리’라고 말할 때 그것은 꼭 인간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짧은 이야기는 범람체의 모티브가 된 균류, 곰팡이에 관한 책들을 만나며 긴 이야기로 발전했다.”
이야기는 지금이 아닌 먼 미래, 지구 표면이 아닌 지하로 숨어들어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인간이 다시 지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 정태린은 파견자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파견자는 지구 표면을 탐색하고 범람체라 부르는 지표면 정복자를 무찌를 방법을 찾는 일을 하는 직업이다.
범람체는 위 작가의 말에서 소개하는 균류, 곰팡이처럼 번져 나간다. 인간마저 범람체가 번지면 한 몸에 두 정신이 깃드는 것 같은 상황이 된다.
정태린은 어릴 때 범람체에 감염되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성인이 되고 파견자가 되기 직전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도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어릴 적부터 함께 한 몸 안에 살아온 범람체와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다.
결국 범람체와 인간은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고 평화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과연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정의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상황이 내 결정인가?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떤가? 라며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이 책을 읽으며 “다중인격 장애”가 생각났다.
드라마, 영화에서 종종 이야기하는 다중인격, 역사적으로 한 사람에게서 최고로 많은 인격이 등장한 게 스무 개 이상의 인격이었다고 했던가?
주인공 정태린과 그녀의 몸을 공유하고 있는 범람체 쏠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고, 몸의 주도권을 양보할 수도 있다. 다중인격 장애와는 설정과 전개가 전혀 다르지만 한 몸에 하나 이상의 정신, 영혼이 존재한다는 점만을 보자면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인간 외의 생명체, 즉 외계인의 모습에 대한 이 책의 표현도 독특하다.
지구에서의 생명체처럼 개별적인 신체구조를 갖는 방식이 아니라 담쟁이넝쿨, 곰팡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생각과 결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개체별로도 가진 존재라는 설정이다. 나와 너, 나와 우리의 관계가 애매해지는 이런 생명체도 꽤 그럴 듯하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문재인 전대통령이 추천했다는 글을 읽어서였다. 아마도 소설을 추천하신 건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더 궁금했고 읽게 됐다.
소설이니 편하게 읽을 수 있었고, 재미있게 읽으며 인간,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420P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눈빛이 반짝이고, 얼마 후 자스완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묻기도 한다.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냐고. 그러면 자스완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