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漢字), 전서체(篆書體)

by NoZam

전각은 원칙적으로 한자를 전서체로 돌에 새기는 작업을 말한다.

그렇다면 전서체가 무엇을 말하는지 간단하게나마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전각 공부를 하던 중, 아무래도 붓글씨를 배워야 조금 더 깊이 전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취미 삼아 시작한 건데 너무 깊게 빠지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조금 더 나이를 먹어서 유려하게 붓글씨를 쓸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집 근처에 서실이 없어서 고민을 하던 중에 문화센터에서 서예 교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배우기 시작했다.

보통 붓글씨를 배울 때는 한문, 한글을 구분해서 강의가 개설된다. 나는 전각을 하기 위해 배우는 거니 한문 서예를 선택했다.

보통 해서체(楷書體)를 처음 배우는데, 내 경우에는 전각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단 전서체를 먼저 배웠다.


한문 서체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전서체(篆書體) - 예서체(隸書體) - 해서체(楷書體) - 행서체(行書體) - 초서체(草書體)

시대 순서로 나열한 것인데, 이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체는 해서체다. 흔히 보는 명조 분위기의 한문 서체가 해서체다.

각각의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전서체 : 전서는 전국시대 주나라 시기에 생긴 대전(大篆)과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승상 이사(李斯)에게 지시하여 제정한 소전(小篆)이 있다. 소전체는 복잡한 대전을 간략하게 한 것인데, 이 소전을 전서라고 흔히 말한다. 금석문이나 전각문으로 활용하기 위해 생긴 이 글꼴은 서선 굵기가 일정하고, 수직, 수평 방향으로 운필 하였으며, 사각 자형을 이룬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서체 [篆書體]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suk.jpg 송나라 때인 993년에 다시 새긴 역산비(嶧山碑)의 앞면 탁본. 원래 비석은 기원전 219년에 쓴 것인데 산불로 훼손되었다.


예서체 : 한자 붓글씨체의 한 종류로 고안된 서체로 한자점획을 간결하고 부드럽게 쓸 수 있도록 중국 진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서체이다. 예서(隸書)라는 이름은 노예 계급의 사람들이 쉽게 익혀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서체라는 유래, 이를 만든 정막(程邈)이라는 사람이 노예 출신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서체 [隸書體]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고구려 사람들의 힘찬 기상과 소박한 성품이 잘 드러나 있는 예서의 걸작으로, 예서 특유의 붓 굴림이 전혀 없이 질박한 것이 특징이다.
suk.jpg 추사 김정희가 예서로 쓴 대련(對聯) 글씨. "평상시엔 고개 숙여 경사(經史)를 외우다가, 정신 들면 눈에 가득 시내와 산이로다.[常時低頭誦經史 覺來滿眼溪山]"

해서체 : 해서는 정해(正楷), 정서(正書), 진서(眞書)라고도 부르는 한자(漢字)의 글씨체이다. 동한(東漢) 시대에 만들어진 이 글씨체는 예서(隸書)를 더욱 간략하게 개량하면서 획을 가로 세로로 반듯하게 만들고, 글씨 전체가 정사각형을 이루는 것이 특징으로서 '해서'라는 명칭에는 '따라 쓰기에 좋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글씨체는 오늘날까지 한자의 정체(正體)로 간주되어 인쇄된 서적에 찍힌 한자는 대개 해서체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서체 [楷書體] (홍루몽: 인명, 용어사전, 솔출판사)

구양순-구성궁예천명. 당대 632년 산시성 인유(麟游)에 세워진 비석. 위징(魏徵) 문 구양순 글. 당 태종(太宗)이 구성궁에서 피서하며 샘물‘예천’을 예찬한 내용


행서체 : 행서는 초서(草書)와 함께 한자의 흘림 글씨체로서 이 둘을 합해 행초(行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행서나 초서는 점(點) 하나 획(劃) 하나를 정확하게 구분해 쓰는 예서(隸書)나 해서(楷書)의 규격성을 벗어나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글자를 쓰기 위해 나타났다. 그러나 초서는 글자의 윤곽이나 일부분만을 표현해서 해독(解讀)에 어려움을 가져와 실용성을 잃었지만, 행서는 정서(正書)인 해서(楷書)의 필기체 형태를 띠고 있어서 쓰기도 쉽고 해독도 어렵지 않은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행서는 일반인들의 필기체 글씨체로 널리 쓰여 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행서 [行書] (두산백과)

조선시대 문인서화가 이광사가 쓴 행서체.


초서체 : 초서는 당나라 때가 되어 예술성을 가진 서체인 광초(狂草)로 발전하였다. 중국 당나라 때의 승려인 회소(懷素)는 어린 시절 집안이 궁핍하여 종이를 살 돈이 없어서 메마른 파초의 잎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는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술을 좋아하여 항상 술을 마신 후에 날렵하게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 사람이 광초의 대표적 인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예의 글씨체 (중국문화와 한자, 2013. 3. 28., 도서출판 역락)

조선 말기의 왕족이자 정치가인 이하응의 초서.

서체의 종류는 이렇게 정리된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서예 선생님께 들은 한자 서체에 관한 이야기.

일반적으로는 전, 예, 해, 행, 초서체가 서체의 발생 시기에 따른 배열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에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예서와 해서 정도는 존재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서체와 같은 시기에 작성된 예서, 해서로 쓰인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단다.


그럼 전서체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우리가 한자의 발전 단계를 말할 때 꼭 듣는 이야기가 바로 "상형문자"이다.

상형문자가 쓰이던 시기는 당연히 종이나 붓이 없던 시기였을 것이고, 따라서 점토판이나 나무판에 딱딱한 돌 등을 이용해서 그렸을 것이다. 또는 평평한 돌에 그렸을 수도 있겠다.

상형문자는 보통 이런 형태로 발견된다고 한다.

그 뒤 갑골문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보통 거북이 등껍질, 소뼈 등을 이용했다고 한다.

은나라 초기 전쟁 토벌 기사가 실린 거북 배에 새겨진 갑골문


이후 석고문(石鼓文)이 등장하는데, 돌에 새긴 글이며 형태는 전서체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위의 서체 설명에 대전과 소전으로 구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석고문에 새겨진 글은 대전이 된다. 이후 진시황이 글자체를 통일하며 선택한 것이 전서체이고 대전체의 문제점을 보완해서 사용하기 편하게 만든 게 소전, 문서로 남아 있는 전서체의 형태가 된다.


전서체를 가만 들여다 보면 상형문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내가 전서체를 배우면서 가장 흥미를 가진 글자가 있다.

사슴을 의미하는 글자인데, 지금은 주로 사슴 록(鹿) 자가 이용된다. 그리고 흔하게 사용하지는 않지만 암사슴 우(麀) 자도 있다.

suk.jpg
suk.jpg

사실 위의 글자만으로는 저 글자의 형태가 어떻게 수사슴과 암사슴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전서체로 쓴 글을 들여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쓴 글을 올리면 좋겠지만, 워낙 졸필이라...ㅠㅠ

서예 선생님께서 써주신 글을 올린다.

suk2.JPG 숫사슴 록
suk.jpg 암사슴 우

보다시피 수사슴 록자는 머리에 커다란 뿔을 이고, 늘씬하게 달리는 수사슴을 나타낸다. 그에 반해 암사슴 우자는 머리에 뿔이 없고, 다리 사이에 새끼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이렇듯 전서체는 글자의 특성보다는 형상의 특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있다. 물론 전서체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소전으로 넘어가면서 글로서의 역할을 위해 이런 형상을 나타내는 특성이 많이 줄었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으로 전서체와 관련해서 정리해본 내용이다.


이런 전서체를 기본으로 해서 다시 변형을 가해서 돌에 새기는 작업이 전각이다.

전서체를 보면서 부적에 쓴 글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부적에 쓰는 글도 전서체에서 변형되었다고 한다.

아마 사물의 형상을 담고 있다 보니 글자 자체에 신령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던 것 아닐까 싶다.


한 가지 주의할 점.

보통 도장을 팔 때 보면 한글을 길게 늘이고 구부러트리고 꼬아서 무슨 글자인지 읽기 어렵게 새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걸 인장에서 쓰이는 한글 전서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한글은 전서체가 있을 수 없다. 다만 한자 전서체를 흉내 내어 억지로 만든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물론 도장이라는 것 자체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도장을 새기는 원칙 역시 중국에서 건너왔을 것이고, 그걸 흉내 내다 보니 한글 전서체라는 걸 만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춘향식으로 전서체 흉내를 내어 도장을 새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 도장의 실질적 역할은 많이 줄어들었으니, 차라리 개성 있고 독특한 자신만의 글자 모양으로 도장을 만드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최근 전각 관련 사이트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로 한글 도장을 선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억지 전서체보다 훨씬 보기 좋다는 생각이다.


나는 전서체를 2년 동안 공부를 했고, 올해 들어 해서체를 시작했다. 한자 서체 하나로 5년쯤 공부를 해야 조금 흉내 낼 정도가 된다고 하니 아직 멀었다.

어쨌든 이렇게 십 년쯤 전각과 서예를 공부하면 예순 언저리에는 둘 다 조금 흉내는 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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