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남노포 보다가 운 이야기

역이민을 준비하며 #5

by HANA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정리가 되지 않아서 아직 캐나다에 있다. 작년에 동생 결혼식을 위해 방문한 한국에서 4개월을 있다가 2025년 해가 끝나기 전에 다시 토론토로 돌아왔다. 한주를 쭉 쉬려다가 4개월 만에 복직하는 게 걱정돼서 결국 휴일에 사무실에 나가 책상을 세팅하고 사용하는 웹사이트들의 바뀐 비밀번호들을 업데이트했다. 캐나다인이라면 복직 첫날 컴퓨터를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익히면서 하루를 다 보내겠지만, 나는 첫날부터 평소처럼 업무를 처리하면서 내 가치를 보여주고 싶은 한국인이니까.







한국에서 지낸 4개월은 한국으로 역이민 왔을 때 내가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평일에 5시간씩 와인샵에서 알바를 하고, 잡코리아에 들어가 구인공고들을 하나씩 꼼꼼히 읽어보았다. 내가 이 중에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입사 지원 조건이 되기는 할까, 이 급여로 혼자 집세를 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따져보았다. 마음은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동네 학원에 영어선생님 일을 하면서 소박하게 늙어가면 되겠지 말하면서도, 이것이 성공하지 못한 성인 이민의 결말로 비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살기 위해서 해외로 나갔다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 고통이 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동생이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다시는 한국 회사를 다니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 선배가 얘기해 준 MZ세대의 '3요 - 이걸요? 제가요? 왜요?' 표현은 생각을 확신으로 굳힌다. 왜냐하면 그 말들은 내가 와인샵에서 매일 하는 말이었으니까. 캐나다 회사의 매니저들은 업무 지시를 할 때 내 책상에 와서 내 이름을 부르고, 업무의 범위가 정확히 어디까지 인지 (어떤 것들은 하고, 어떤 것은 할 필요가 없는지) 시간을 들여 알려주고, 왜 지금 이 업무를 해야 하는지 설명 후 질문이 없는지 물어본다. 반면 와인샵 매니저님이 갑자기 이름을 부르지 않고 하는 지시에 나는 깜짝 놀라서 "저요?" 하고 뒤돌아보고, 손으로 가리키지도 않고 한마디로 끝나는 설명에 "이걸요?'하고 되묻고,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왜요?" 하고 대답한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업무 수령 프로세스가 반항으로 받아들여진다면 20대 초반도 아닌 나를 좋게 보는 상사가 있을까. 내가 그럴 때마다 매니저님은 답답해하면서 자기가 직접 와서 일을 처리해 버리고 나는 뒤에서 무안하게 서있기만 한다. 그게 본인이 시간을 아끼고 에너지를 덜 쓰면서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한국인은 아닌 걸 어떡하겠어.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시장에 자주 갔다. 반찬 가게에서 혼자 먹을 반찬도 사고, 철을 맞아 다양한 품종이 나오는 한국 딸기도 많이 사 먹었었다. 그래서 보기 시작한 유튜브 윤남노포다. 어머님들이 음식 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요리하는 모든 음식이 맛이 없는 이유가 보인다. 일단 그분들은 재료가 다 시골에서 올라온 고추장, 방앗간에서 짠 기름, 시어머니가 주신 김장김치다. 오늘은 최근에 올라온 제육볶음 편을 보다가 울어버리고 말았다. 직접 담그신 매실청, 캐나다에서는 살 수 없는 미나리, 손맛이 느껴지는 통통한 오이소박이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우와~' 하고 소리만 질렀었는데, 큰 솥에 끓이신 아욱국을 그릇에 덜으실 때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집에서 먹는 그 음식들이 너무 정겹고 그리워서. 나이가 먹을수록 한국음식만 먹고 싶다는 건 너무 자주 언급해서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캐나다의 모든 한식당들은 메뉴가 다 똑같을까. 어떤 집은 강된장쌈밥을 팔고, 어떤 집은 전복들깨국수를 팔고, 어떤 집은 평양냉면을 팔아야 하는데, 한결같이 메뉴가 비빔밥, 감자탕, 불고기, 칼국수다. 그런데도 나는 익숙한 지금 회사의 업무, 세금으로 날리더라도 숫자로는 내가 한국에서는 받을 수 없는 연봉,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은 서른 중반의 여성에 대한 인식 때문에 사직서를 내지 못했다. 모든 짐을 정리해서 국제택배로 한국에 보내놓고도 매니저에게 전화해서 휴직을 요청했다. 한국에서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주로 울면서) 왜 내가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반수를 하는 것, 학기를 마치지 않고 입사를 하는 것, 퇴사를 하는 것,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 이민을 하는 것 모두 빠르게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정들의 결과가 초래한 현재의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 그다음 결정이 너무 어려워진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니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약해져 버렸다. 인스타그램에 한 외국 여자가 용감함은 가방 하나랑 계획만 들고 해외로 이사 가는 거라는 말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비자, 언어, 은행 계좌, 길도 모르면서 집을 구하고 낯선 버스 노선을 알아내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본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 영상에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한국인의 댓글은 그 과정에서 이미 무너졌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바닥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지친다고. 괜찮아지길 바랐던 초기 생활이 안정이 되고 일상이 되면, 내가 누릴 수 없는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지금의 환경은 내가 나고 자랄 때 보고 경험한 것이 아니니까.





예전에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요새는 한국 아줌마들 오지랖이 그립다고. 처음 보는 사이여도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고. 우리는 이제 그게 '정'에서 나온다는 걸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