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MA Annual Conference 2018 in Bangkok
줌바 강사와 함께하는 아침운동 세션이 있었다. 호텔을 즐기는 방법으로 피트니스클럽 이용을 꼽거나, 매일 하는 운동을 출장으로 인해 지속하지 못 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점까지 고려한 센스가 돋보였다. 그 운동 종목 또한 트렌디하면서도 행사지(태국)에 딱 맞는 줌바라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운동은 조식을 더 맛있게 만들어줬다.
3개 세션이 동시에 열린다. 개중 하나의 세션이 로비에 스툴을 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광고 디스플레이용 현황판에 발표자료를 띄워 진행됐다 (우측 사진). 어제 복도에 링을 설치해 진행한 세션도 재밌었는데, 이런 공간활용 방식이 참 인상적이다.
원래 내가 듣고싶었던 세션은 따로 있었지만 방을 잘못 찾아 GDPR 관련 세션을 듣게 됐다.(;;) 연사가 GDPR 개념에 대한 청중의 이해정도를 live poll로 묻고 시작했는데 0%라고 응답한 사람이 나 뿐이였다. 내가 유독 무식한 사람이던가, 한국에서 관심받는 이슈가 아니던가.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 규정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법이 MICE 산업과 무슨 연관일까? 2018년 5월부로 유럽연합(EU) 시민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그 어떤 사업자라도 이 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시행 초기라 구글 같은 대기업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을 정도라, 인프라와 인력이 미흡한 한국의 PCO 업체가 당장 어떤 대응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회에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 수준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행사에서 다뤄지는 참가자들의 개인정보 양은 생각외로 방대하다. 회사에서 역대 행사에 참가했던 VIP들의 주민번호가 아무렇지않게 사무실에 돌아다니는 걸 보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이를 문제제기 했다가 이 파편적인 정보로 무슨 큰 일이 있겠냐는 변명도 들었다. 행사때마다 보안수준이 낮은 홈페이지를 만들고, 등록비 결제는 PG사를 끼지만 한국PG사가 호환성이 엉망인 것을 어려움을 겪는 참가자 국가의 웹 환경을 탓하고, 여권카피와 신용카드정보를 따로 받아 대리로 결제를 진행하고, 심지어 그것을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비스’라고 배웠던 업무매뉴얼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나는 exclusive한 외교행사나 의학학회 경험만 있어서 ‘Event Crisis’ 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유치 업무를 할 때도 컨틴전시 플랜이 단골 질문이긴 하지만, 북핵이슈에 어떻게 정치적으로 잘 대답할 것인가 따위의 논의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미국 등지에서 수만명이 참가하는 각종 인기산업 이벤트 기획자들에겐 총기와 테러위협이 실질적인 문제인가보다. 덕분에 나도 경각심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미디어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 지에 대한 설전이 있었는데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Event Incident Response Team을 만들고 정확한 진상파악 후 최고책임자를 통해서 메세지관리가 돼야 한다는 게 전통적인 방식인데, 요즘엔 현장에서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사건이 중계되는 탓에 상기 절차대로 대응할 시 다소 시간이 걸려 짧은 시간내에 온갖 추측만 난무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을 꼽으라면 단연코 테마가 있는 커피브레이크다.! 커피와 약간의 페스츄리만 내놓는 그런 커피브레이크가 아니다. 처음엔 못 보던 음료와 매그넘 아이스크림에 기분 좋은 정도였는데, 본격적으로 테마가 있는 커피브레이크가 진행되자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감탄을 했다.
20분 막간에 진행되는 커피브레이크를 위해 세트를 따로 설치하는 게 웬 말인가!
씨네마 테마에선 (아무도 들어가 앉아 영화를 관람하진 않았지만) 룸 하나에 영화를 상영했고, 한 쪽에서 버터 팝콘향을 튀겼다.
스파 테마에선 자연주의 컨셉의 핑거푸드들과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VUCA 월드 (volatile, uncertain, complex and ambiguous) 라는 거창한 타이틀의 클로징 플레너리. 여러 좋은 말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찾고자했던 답을 준 시간이었다.
이 업계에서 가장 큰 변화가 무어냐는 연사의 질문이 있었는데, IT 기술 접목 같은 답변이 나올 줄 알았건만, 청중 대부분이 직장 내 업무환경 변화라고 했다. 그리고 워커홀릭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events professionals 라는 직업 자체가 잔일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구조에 놓여있단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파일럿 다음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란다. (APAC 지역 행사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와중에 동양 특유의 그 문화까지 더해지면 문제가 심각해지니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하고, 패닉에 빠지지 않게 자신의 감정도 잘 챙겨야 한다고 했다.
The events industry is a people business, so why do we neglect self-care?
클로징이 밥 시간 때에 걸리면 애매하다던데, 네트워킹 런치까지는 함께하고 헤어졌다. 짧은 행사 기간이지만 제법 친해진 사람들에게 밥 먹는 동안 내가 겪은 직장 내 에피소드를 들려줬는데, 일본, 싱가폴, 태국 출신의 동종업계 사람 모두 안타깝게 생각해줬다. 이 직업을 바꿔야 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딘가 잘 맞지 않다는 건 자명했다.
차기 행사 일정과 장소가 공개되었다. 프랑스 파리일 줄 알고 반가웠으나 홍콩 마카오다. 내년에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끝.
번외)
일을 쉬고있다보니 행사일정보다 3일 먼저 도착해 태국 관광을 실컷 즐긴 후였는데, 다들 내가 남들처럼 멀리서 바쁜 시간 내 참석한 줄 알고(;;) 저녁 비행 이전에 방콕시내를 구경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한 친구가 오늘 ICONSIAM 복합쇼핑몰의 그랜드오프닝이라며 자기 초청권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백화점 오프닝 행사가 뭐그리 재밌을까 다소 의아했지만, 건물 일부가 내년부터 컨퍼런스홀로 쓰이는데 seating arrangement가 전자동일 거라는 얘기에 혹해서 따라가봤다.
규모는 내 상상을 압도했고, 수십만명이 최소 턱시도를 차려입고 모이는 광경이 놀라웠다. 방콕 쇼핑에 빼놓을 수 없는 파라곤시암과 엠포리엄 백화점의 그 소유주의 작품인데, 아무리 오프닝이라도 그렇지 식품코너의 음식이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인심(?)에 두 번 놀랐다. 세상에 너그러운 부자는 없다는 내 상식에 반하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더니, 태국친구는 초대를 했으면 후하게 대접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웃었다. 가히 people business의 나라다운 면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