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아래 멈춰 선 적이 있는가?

by 포레스트 하이

숲해설가 전문과정 첫 수업에서 들은 말이 부러웠지요.


독일에는 300여 개의 숲 치유 마을이 있다. 의사는 우울증, 스트레스 등 심리적 증후 환자에게 숲에서 오롯이 몇 주를 지내도록 처방한다. 그래도 차도가 없다면 비로소 치료가 시작된다. 대개는 숲에서 머무는 것만으로도 낫는다.


저는 ‘숲에서 머무는 것만으로도 낫는다’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어느 환경학자는 현대인은 '자연 결핍증후군'이란 질환을 알게 모르게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가 그렇고, 요즘 청소년을 중심으로 눈에 띄게 늘어나는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ADHD)'도 우리가 자연과 숲을 멀리했던 후유증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진화심리학에 ‘사바나 이론’이 있습니다. 사람의 DNA에는 숲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는 거지요. 호모 사피엔스 역사라고 해야 기껏 10만 년입니다. 인류의 조상 루시가 아프리카 사바나 숲에 출현한 때가 4백만 년 전이고, 초기 인류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야 8백만 년 남짓합니다. 하지만 숲은 4억 5천만 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숲은 아마도 신생대 이후에서 축적된 식물의 강한 생존 유전자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바나2.jpg 아프리카 사바나 숲 / Pixabay


퇴직하고 집에서 뒹굴다 보니 갖가지 불순한 생각들이 스칩니다. 나름 생산적인 일을 해보겠다 하지만 대개는 고만고만한 걱정거리만이 머리를 뱅뱅 돌다 사라집니다. 뿌리치려 애써보지만 치워봤자 또 다른 걱정으로 대체됩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96%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쓸데없는 것들이고, 4%만 대처가 가능한 것이라는 말도 있네요.


그럴 땐 조금 바삐 움직이려 합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소원했던 지인을 만납니다. 그러다 머릿속에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놓고, 쓴 글과 모은 문장 그리고 잡동사니 지식을 정리하곤 합니다.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면 한두 구절 쓰기도 하고요. 대부분 아쉬움과 후회가 많지요. 버릴까도 생각하다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숲과 나무를 만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강과 하천을 하염없이 걷습니다. 한바탕 걷고 나면 생각이 단단해 지지요. 아파트니 주식이니, 원망이니 불평이니 하는 것들이 조금은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요. 조금 늦췄으면 좋겠다는 말은 주변에서 듣습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제 모습이 여전히 분주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속도를 줄이려 노력합니다. 매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자고 다짐도 하고요.


멈춰 서지 않으면 /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밖에는 /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운동가가 쓴 『슬로 라이프』에 나오는 오사다 히로시의 <멈춰 서다>라는 시의 마지막 연입니다. 맞습니다. 숲도 나무도 멈춰서 봐야만 보입니다. 시인의 다른 시 <최초의 질문>도 좋습니다. 숲과 나무를 언급한 행들만 뽑아 봤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며 마무리합니다.

떡갈나무 아래나 혹은 느티나무 아래 멈춰 선 적이 있는가? / 가로수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 나무를 친구라고 생각한 일이 있는가? / 좋아하는 꽃 일곱 가지를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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