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글!

상호 텍스트와 혼성모방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by 포레스트 하이


한때 영화 리뷰라도 써볼까 했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글을 읽고 바로 접어 버렸다.


참고한 책이 무엇인지를 뻔히 아는 글을 읽을 때,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말할 때, 그걸 참아야 하는 사람은 괴로워진다. 사람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쓰면 안 된다. -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중 <도둑질하고 도둑질 당하고> 일부, 정성일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장 그르니에 《섬》의 서문 <글의 침묵>에서 ”천직의 고행을 거치지 않은 많은 목소리와 말들이 진열된다."라는 탄식을 접하고서는 글쓰기는 외경이 되었고 털컥 겁이나 버렸다.




한 동안 책만 읽었다. 한차례 글쓰기 강좌를 거쳤고, 글쓰기에 관한 책을 원 없이 훑었다. 단 하나의 결론은 '무조건, 지금, 당장 쓰라.'였다. <보고서 잘 쓰는 법>이라는 계도형 유인물을 만들어 후배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곧잘 쓴다는 평은 들었지만, 여전히 제한된 공간 밖으로 글을 내보내려니 두려웠다.


이런저런 글을 끄적거렸고, 멋진 문장들은 필사하거나 내게 편지의 형태로 전달했다. 누군가 인용했던 문장의 원전이 궁금해 찾기도 했다. 그런 문장들은 스마트 폰 속 메모 앱과 다이어리 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따금 그런 문장들을 활용하여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글쓰기 달인 – 김훈, 황지우, 보르헤스 - 들의 문체를 모방하기도 했고, 표시 나지 않게 아주 살짝 변형을 시키기도 했다. 표절 같아 염치없었다.




시 쓰는 친구가 "네 마음을 속이면 그건 글이 아니다. 솔직한 글만이 감동적이다."라고 혼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서른 살이 되어버린 아들이 초등학생 때 쓴 일기는 최고의 문장이었다. 날씨 묘사만도 다섯 줄을 훨씬 넘겼고, '마라톤 철인 아빠'라는 제목의 일기에 아빠 미소가 절로 번졌다. 마침내 어느 책에서 "당신의 글은 아무도 읽지 않으며, 당신이 아는 사람이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당장 쓰라."는 글을 접했다.


21세기의 선구자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보르헤스는 “나는 늘 책으로 돌아가고, 인용문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지성 에머슨은 “인생은 하나의 긴 인용문”이라고 했다. 공자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로, 예전에 쓰였거나 떠도는 말을 단지 서술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낮추었다.






그러다 상호 텍스트 방식의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책을 만났다. 상호 텍스트란 “어떤 텍스트가 과거나 미래의 모든 담론과 상호 의존하는 성질”을 말한다. 패스티쉬라는 용어도 신선했다. "과거의 텍스트나 작품을 짜깁기한 혼성모방"을 말한다. 모두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산물이다. 그 패러다임이 내게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위안을 삼았다.


그렇다면 수집한 글과 문장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모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순수 창작이란 성경과 희랍신화와 플라톤과 제자백가뿐이라는 말을 핑계 삼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말대로 어떤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책, 누구의 글인지 자주 냄새를 맡기도 했다. 자기 표절, 미래 표절도 있고, 무의식적 표절도 있는데 뭘. 모든 글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니, 비록 다른 문장을 인용하더라도 내 생각과 잘만 버무린다면 말이다.



혼성모방과 상호 텍스트를 혼재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장’을 생각해 봤다. 이를테면 A라는 시를 읽다가 A’라는 시를 연상하면서, B라는 소설을 엮어내고, C라는 영화와 결부시키는 방식이다. 프로스트가 어느 저녁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의식의 흘러 보내듯이 말이다.


원래 제목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꼬꼬무’로 잡았었다. 이제니의 미래시를 읽다 보르헤스의 미로를 떠올리고,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을 거치면서, 네루다의 시와 영화 <일 포스티노>까지 흘러가는 방식이다. 그러다 <내 머릿속 도서관>으로 제목을 바꿔 버렸다. 어떤 흐름 속에 도서관 체계 분류 방식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도 멀티미디어 열람실이 있다.


책꽂이에 꽂힌 채 잠들어 있는 책, 읽기는 했지만 먼 기억으로만 머물러 있는 문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영화의 미장센과 촌철살인의 대사, 어느 밤 감상에 젖게 했던 음악, 불쑥 떠오르는 30년도 더 지난 추억들이 글감이 될 것이다. 기억을 소환하는데 실패하면 구글을 검색했고 서울도서관을 찾아 여기저기를 뒤적일 것이다.



글쓰기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알아챌까 - 알아주지 않을까가 아니다 - 두렵다. 글은 솔직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내 글은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며, 설령 읽더라도 나는 아는 누구도 '나'인 줄 눈치채지 못하리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내 머릿속 도서관>을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아마추어이므로 대부분 용서될 것이다. 이제니의 시(詩)로 마음을 다진다.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픔을 드러낼 수 있는,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고통의 고통 중의 잠든 눈꺼풀 속에서,

꿈속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

언젠가 내가 썼던 기억나지 않는 책
언젠가 내가 읽었던 기적과도 같은 책 (…)

- <분실된 기록> 일부,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제니


2022년 7월의 마지막 즈음에, 포레스트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