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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Mar 10. 2019

'나는 기자다'... 치열한 취재, 경영 현장기록

저서 '나는 기자다'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현장 기자로서의 치열한 취재 기록과 미디어 경영자로서의 성취와 좌절 등 경험을 담았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뿌듯함과 회한 등 상반된 느낌이 엇갈리는 일입니다. 되새김질을 할 수록 기분 좋은 일도 있지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저를 이룬 소중한 모자이크 조각들입니다. 모두를 직면해서 책 한 권에 담았습니다. 종전에 쓴 다른 책보다 마음이 많이 가는 책이네요.

제가 쓴 서문을 나눕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멈춰 섰다.

2018년 상반기의 YTN 노사분규 사태.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사장이 임기 중 회사를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 한겨울의 추위는 매서웠다.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었다. 실제 ‘최남수’와 그들이 그린 ‘괴물 최남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악몽 같았던 시간에 대한 가슴의 체감도는 점점 잔잔해지고 있다. 이젠 실제 ‘최남수’를 얘기할 시간이 됐다. 그는 누구이며, 어떤 고민을 하고 살아왔으며, 그의 성취와 좌절은 무엇이었는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기쁜 일도 있었고,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뿌듯한 성과도 있었고, 후회되는 실수도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1983년부터 YTN 사장을 했던 2018년 5월까지 신문기자, 방송기자, 유학생, 기업인, 경제방송 보도본부장, 미디어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종횡무진 일을 즐기며 열심히 살았다. 무엇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신문기자에서 방송기자로 변신하고, ‘한국의 CNN’을 만들겠다며 YTN 개국에 참여하고, 38살의 늦은 나이에 4년 동안 해외 유학을 했다. 대기업 부장을 하다가 다시 YTN의 경영개혁을 실무 지휘하고, 이어 경제방송 개국을 하겠다며 벌판에 나섰다가 ‘친정’인 YTN의 사장으로 선임됐다.      



삶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도전하는 노마드’의 길을 걸어왔다. 새로운 일에 나설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다. 뜻이 서면 몸을 던졌다. 뒷일은 다 수습이 됐다. ‘안락한 회사’를 떠나 24시간 보도 채널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나 경제방송 개국에 합류한 것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이었다. 유학 후 대기업을 다니다 연봉이 30%나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언론계로 돌아온 것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결단이었다. 해외 유학 중 보장된 경제부장 자리를 포기하고 자비 유학을 결심했던 것은 늦게 하는 공부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안정된 현재를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로 가는 모험이었지만 그 도전을 선택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신문기자와 방송기자를 하며 미디어의 경계도 넘나들었다.  유학 생활을 통해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2년 동안 외국인 학부생들을 가르치며 그들과 소통해보기도 했다. 평기자에서 시작해 두 개 미디어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봤다. 머니투데이방송에서는 만성적인 적자 기조를 바꿔 재임 기간 중 3년 연속 흑자행진을 기록했고, YTN에선 짧은 기간이었지만 10대 경영혁신과제를 선정하고 시행해보기도 했다. 경영자의 책무는 환경 변화를 주시하며 적절한 전략과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감을 얻어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솔선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서류는 얼마든지 화려하게 만들 수 있고, 말도 그럴듯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실행을 통해 열매를 맺게 하는 건 경영자의 몫이다.      



삶은 여러 조각이 어우러져 이루는 ‘모자이크’와 같다. 자랑스러운 조각도 있고, 회색빛 조각도 있다. 그러나 모든 조각이 소중한 자산이다. 잘된 일에서는 성공 경험을 축적한 것이고, 어그러진 일에서는 교훈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구절처럼 삶의 모든 조각이 의미 있는 ‘상승작용’을 가져온다. 이를 실제로 체험해왔다. 특히 미디어 경영자가 됐을 때는 신문, 방송, 유학, 대기업 근무 등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 인간관계가 큰 자양분이 됐다.



고난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 ‘잠시 멈춤’의 시간도 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바닥에서 잘 견디며 버티는 게 중요하다. 시간이 흘러 밀물이 들어오면 이게 떠오르는 ‘부력’이 된다. 어려운 시기조차 숙성의 기회로 삼고 뚜벅뚜벅 가다 보면 어느새 평지가 나타난다. 이 변화를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마주치면 되는 것이다. 삶은 결국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다. 사진을 찍다 보면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 같은 장소에서도 시선에 따라 사진이 달리 찍히고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이 구분된다. 다르게 보면, 결과도 달라진다. 고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년은 나에게 동굴 같은 시간이었다. 깊게 침잠하며 지나온 길과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다가오셨다. 부족함을 절감하며 손을 펴고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았다. 앞으로 삶의 여정, 그 길이 초원이든 사막이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가야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도 하며 체험하고 있다.

책의 일부 내용을 발췌합니다.


외신부에서의 기자 생활은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기사를 작성하는 훈련을 좋은 선배들로부터 받아 글 쓰는 실력이 향상됐다. 오랜 기간 국제경제 동향을 추적하며 매일 기사를 쓰다 보니 국제경제에 대해 나름대로 식견을 갖추게 됐다. 외신부 ‘졸병 기자’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침 일찍 나오는 건 기본이다. 요즘 국제 뉴스는 모두 온라인으로 들어오지만, 당시는 ‘텔렉스’라는 장치를 통해 타이핑하듯 기사 내용이 인쇄용지에 찍혀 나왔다. 한경은 국제경제 전문 통신인 APDJ를 이용했다. 아침에 나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밤새 찍혀 나온 외신 인쇄용지를 기사별로 찢어서 분류한 다음 주요 기사들을 선별해 부장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 < 1부, 외신기자로의 첫 출발 > 중에서



기자에게 특종은 기쁨, 낙종은 슬픔이다. 다른 기자들보다 중요한 기사를 먼저 써 특종을 한 다음 타사기자들이 자신의 기사를 받아쓰는 것을 보는 것은 상당한 성취동기를 느끼게 해준다. 낙종은 정반대다.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기자는 늘 특종을 꿈꾼다. 하지만 낙종의 상처도 운명처럼 삼켜 넘길 수 있어야 한다. 특종과 낙종이 수시로 되풀이되니 냉·온탕을 오가는 식인 것이다. 그래서 특종에 겸손하고, 낙종에도 평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 1부, 특종의 기쁨, 기자는 이 맛에 한다 > 중에서



쌀 개방 협상 관련, 취재 후기가 한 가지 더 있다. 쌀 개방에 대한 국내 반발이 거셌기 때문에 정부는 초기에는 미국과의 접촉 자체를 부인하고 있었다. 1993년 11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쌀 개방 이슈를 보도하기 위해 이 협상의 주무 부서인 경제기획원 대외조정실 촬영이 필요했다. 기획원의 허락을 받아 사무실 촬영을 했다. 촬영을 하게 되면 카메라 기자는 사무실 전경을 찍는 ‘풀 샷(Full Shot)’ 외에 일하는 직원 얼굴과 컴퓨터 화면 등을 클로즈업하는 영상도 찍는다. 정보를 훔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촬영의 ‘ABC’이다. 이 화면을 회사에 돌아와서 돌려보는데 컴퓨터 화면에 ‘이상한 서류’가 나왔다. 한미가 쌀 개방 협상을 놓고 이미 접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보도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 방송에 내보냈다. - < 2부, 방송 취재 현장 곳곳을 누비며 > 중에서


나는 YTN 합류 후 두 달간 기존 멤버들과 함께 개국 준비를 위한 강행군에 들어갔다. 한국 최초의 보도 채널인 만큼 다소 거칠더라도 가장 빠른 속보를 전달하는 시스템 구축에 모두가 전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1995년 3월 1일 오전 11시 58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연합통신 빌딩의 12층 YTN 1부조 안에서는 긴장 속에 ‘애국가 스타트’를 외치는 PD 콜이 있었고, 애국가에 이은 ‘YTN24’ 뉴스를 시작으로 YTN이 첫선을 보였다. ‘살아있는 뉴스’, ‘깨어있는 방송’을 슬로건으로 내건 YTN은 이때부터 쉼이 없는 24시간 뉴스체제의 깃발을 올렸다.
- < 2부, ‘한국의 CNN', 그 꿈을 향한 첫 걸음 > 중에서


우리 경제는 IMF로부터 긴급 자금 수혈을 받아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그게 바로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IMF 프로그램에 따라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많은 근로자가 실직의 아픔을 겪게 된다. 이 여파가 YTN에도 미치기 시작했다. 멀쩡한 대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거의 모든 기업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광고 물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995년에 개국해 적자를 지속하고 있던 YTN은 ‘바람 앞의 등불’같은 신세가 됐다. 1998년 초부터 회사 금고가 바닥나 월급을 줄 수 없게 됐다.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년이나 이어지니 직원들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적금은 깨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보험까지 해지해야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은 매일 나가야 하는데 후배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조차 미안한 상황이었다. - < 2부, 외환위기, 월급을 못 받아도 꺾이지 않았던 기자정신 > 중에서


1995년에 입사해 1999년 해외 연수길에 오르기까지 4년여 동안 YTN에서 우여곡절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무엇보다 한국 최초의 24시간 보도 채널의 기초를 닦고 주춧돌을 세우는 일에 참여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YTN의 앞길을 개척해가는 길에는 적지 않은 암초가 있었다. 개국 초기에는 24시간 뉴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고, 게다가 시청 가구도 얼마 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안타까운 대형 참사가 시시각각 현장의 상황을 생방송으로 전하는 보도 채널의 중요성을 한국 사회에 각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 기회의 깃발도 잠시 펄럭이다 멈출 뻔했다. 외환위기의 쓰나미가 몰아닥치면서 회사의 금고가 바닥나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다 공기업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증자로 YTN은 회생과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말 그대로 ‘청룡열차’를 타는 듯한 굴곡과 시련의 과정이었다. 후배들과 함께 주눅 들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만 보며 묵묵히 일하면서 회사를 지켰고 그러는 사이 풍파는 잔잔해졌다. 위기는 이를 용기 있게 헤쳐가는 자에게는 기회가 된다고 했다. YTN이 그랬고 그 과정에서 나도 단단해졌다. 힘들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해외 연수 길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 < 2부, YTN 회생 후 해외연수의 길로 > 중에서

새 책을 펴낸 기쁨에 책 소개를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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