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소가 가진 한국과 중국의 깊은 인연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상하이에 살고 있는 저를 비롯한 많은 교민분들은 상하이를 방문하는 대통령을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죠. 연일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새로운 소식들을 접했습니다.
많은 소식들 중에서 유난히 제게 와닿는 내용은 대통령의 임시정부 방문이었고, 그중에서 대통령의 공간에 대한 관심과 이와 관련한 대화였습니다.
영상에 올려진 대화를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참고로 검은 글씨가 대통령의 발언이죠.
마지막은 담당 중국관료의 대답이고요.
지금부터 제가 왜 이 대화에 큰 의미를 두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상하이 임시정부를 알아보겠습니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1919년 9월 연해주에 있던 대한민국 의회(1919.3)와 한성의 정부(1919.4) 그리고 상하이의 임시정부(1919.4) 이렇게 세 곳의 단체가 여러 이유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1919.9)됩니다.
현재 상하이 임시정부 건물은 초기 임시정부가 사용하던 건물은 아니었고요, 1926.7부터 1932.4월 항저우로 이전할 때까지 6년간 본부로 사용된 건물입니다. 이 건물 자체는 1925년에 건축된 상하이를 대표하는 석고문건축이죠. 중공이 들어서고 한동안 민가로 쓰이다가 1991년 복원이 추진되어 1993.4.13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기념관'으로 공식 개관했습니다. 이후 2001년 한 차례의 리노베이션(구조보강, 내부시설 보수, 전시시설 추가)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복원당시는 한중수교(1992.8.24) 전이었기에 전적으로 민간외교 차원으로 삼성물산 전무가 대표자격으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당시 30만 달러 전체를 삼성이 제공했다고 하니, 이런 면은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할 듯싶습니다.
현재 이 건물은 대지면적 6,028㎡, 연면적 9,322㎡이며, 이 중 상하이임시정부는 4호 구역으로 모두 3개 층 연면적 476.5㎡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건축면적이 191㎡라고 하니 얼마나 협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념관 운영시간은 9:00-11:30, 13:30-17:00, 입장료는 20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혹시나 방문하시는 분들 참고하세요.
매번 입장료를 받는데 이거 꽤 되겠는데 했는데, 그래도 나름 중국에서 잘 관리하고 직원들 월급 및 건물보수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니 아까워하지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남는 돈은 향후 리노베이션에 쓰인다고 중국관료가 공개적으로 말했으니 어디 딴 데 가진 않겠죠.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둘러봤으니 이젠 가까운 옆에 있는 중국의 유적지를 살펴볼까요?
살펴볼 곳은 中共一大会址(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개최지) 입니다.
지도상의 직선거리로 300m, 걸어서 370m가 나옵니다.
북측 신천지 상업단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까이 가면 공안들이 엄격하게 지키고 있어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저를 비롯해서 많은 한국분들이 그렇게나 많이 신천지라는 곳을 가도 이곳을 잘 모른다는 거죠. 그리고 안다고 해도 들어가기 좀 꺼려지는 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교육을 받아서 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중국에서 밥벌이를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공산당과 엮이게 되는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공산당 선전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을 앞서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 공산당 역사와 현재상황에 대해서 학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최근에 몇 번 연속으로 가게 되었네요.
상하이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시작이듯이 이곳 中共一大会址(중공일대회지)가 중국 공산당의 시작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1921년 7월 최초의 공산당 회의가 열렸고, 장제스의 눈을 피해서 이곳저곳을 도망 다니며 회의를 이어나가게 되죠. 최초의 회의는 13명이 모여서 중국공산당을 공식적으로 창립하게 됩니다. 회의에는 13명 외에도 2명의 외국인이 참석하는데 한 명은 러시아 대표였고, 다른 한 명은 네덜란드 대표였죠. 이들은 조언자, 참관자 자격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렇게 러시아 코민테론의 영향하에 중국 공산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회의를 한 이곳은 임시정부와 같이 상하이 전통양식이 된 石库门(스쿠먼) 양식이고 2층 건물입니다. 대지면적 600㎡, 연면적 900㎡ 규모로 보존하고 있죠.
참관은 9:00-4:00이고 입장료는 안 받습니다.
들어가면 책상 하나 달랑 보는 게 전부이고, 2층엔 각종 공산당 선전 전시들이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번 전시내용을 달리하는 거 같더군요.
뭐 그냥 그런가 하지만, 이곳 바로 옆에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기념관'(www.zgyd1921.com)이 아주 멋들어지게 들어서 있습니다.
입장시간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9:00-17:00 이며, 역시나 입장료는 받지 않습니다.
입장을 하면 지하로 들어가게 되는데 지하게 꽤 큰 공간(9,690㎡)에 공산당 초기 역사를 잘 전시해 놨죠. 중국 공산당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꼭 한번 참관하시길 바랍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들여다보면 그래도 알찬 역사 공부 거리들이 보입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보면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자기들 땅에 자기들 혁명역사를 얼마나 전시하고 싶겠냐만은,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대립되는 공간에 마음이 착잡하거든요. 정말이지 제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신천지 상가 쪽에 공간 하나라도 빌려 임시정부 방문하시는 분들 커피 한잔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너무나 협소하고 앉을 곳도 설명을 해주는 이들도 없으니 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그냥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신천지로 쇼핑하러 발길을 돌리죠. 그만큼이나 대한민국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왜 대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 있는가 하는 서글픈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고 있었습니다.
저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상회라든지 어떤 단체라든지 인원을 배치해서 방문하시는 분들께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죠. 이런 이야기들을 이곳 지인들하고 하곤 했는데, 상황을 좀 아시는 분의 이야기로는 관리 주체가 상하이 정부라 우리가 쉽게 관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네요.
그런데...
이번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정말 반가왔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뭔가 변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네요. 중국 고위 관료가 답변을 했으니, 중국의 面子(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매번 한중관계에 따라서 울고 웃어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이번 대통령의 방중이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
장소로 치면 같은 장소라고 쳐도 될만한 이곳에 두 나라의 시작이 된 공간이 붙어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우연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상황을 잘 활용한다면 한중관계에 많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죠.
이런 내용을 알리고 싶어 이 글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김구선생이 그토록 그리던 '문화강국'의 최정점에 와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시작점이었던 이곳이 이렇게 초라하게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그 시작점을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하고 언급했으니, 이런 정치인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정치인이라고 여겨집니다. 진영을 떠나 국익을 생각하고 한반도에 있는 국민이든 재외국민이든 모든 이들이 이익을 누리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이가 진정한 정치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모습을 열성적으로 보여주고 실제 변화가 생기기에 임기 끝까지 한번 믿어보려 합니다.
이런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뽕이 차오르네요.
오늘 머리를 깎다가 중국 헤어디자이너에게 살짝 물어봤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이런....
정치엔 관심 없다네요.
"내참... 이게 정치냐? 민생이지...."
"그래서 니들이 발전이 더딘 거야...."
혼자 투덜거리다가 돈 내고 나왔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대~한 민 국, 짝~ 짝~ 짝~!"
양념이야기....
당시 상하이엔 영국조계, 프랑스조계, 미국조계(공동조계)가 있었습니다.
다른 조계지에 비해서 프랑스 조계지는 프랑스가 혁명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린 국가라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다양한 사상가들이 프랑스 조계지로 몰려들었고, 이를 어느 정도 수용했던 거죠.
하지만 눈 시퍼렇게 뜨고 다니는 장제스의 국민당과 일본 제국주의 미친개들이 그들이 말하는 불온분자들을 색출하는데 노력을 하고 있었기에 프랑스 조계지라고 해서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임시정부는 계속 옮겨 다녀야 했고, 초기 공산당도 비슷한 처지였다고 볼 수 있죠. (참고로 중국공산당은 도망쳐서 1차 회의를 강가의 배 위에서 마쳤다고 합니다.)
상하이는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참 다양하고도 복잡한 문화를 가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런 다양성이 상하이의 매력이기도 하니,
상하이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공부 좀 하고 오시면 더 많이 보고 얻을 수 있을 듯싶네요.
제가 가끔 시간 날 때 상하이 도시해설사 역할도 하는데요,
시간이 맞으시는 분들은 어쩌면 동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 하나 더.
유튜브 영상 중에 신천지 단지 내의 Shake Shake 버거 점포가 김구선생님이 주거했던 곳이라고 나오던데, 이건 조금 오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신천지라는 곳은 기존 병영막사 같은 (지금도 스쿠먼주택들은 이렇게 배열되어 있음) 배치형태로 주거가 형성되어 있었죠. 그래서 롱탕(건물사이의 골목)이라는 말이 생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개발사가 상업지구를 조성할 때 이런 형태로는 도저히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 기존 구조를 많이 바꾸었거든요. 그래서 당시 이런 식의 개발이 과연 보존인가? 하는 논쟁이 많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기존 구조물들을 뜯어내서 새롭게 조합을 한 단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설사 김구선생이 이곳에서 거주했던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새롭게 상업단지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그 자리는 있을지언정 공간은 이미 해체되었다고 보는 게 맞거든요.
괜히 김구선생 집구경 간다고 햄버거집에 가시는 일이 없도록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 참에 Shake Shake 버거가 '대한민국 햄버거'를 메뉴에 넣으면 꽤 잘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해볼까? ^^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함평군에는 2009년 대한민국 임시청사를 재현해 놨다고 합니다.
(https://www.hampyeong.go.kr/ilgang/contentsView.do?pageId=ilgang40)
이미지나 영상을 보니 겉은 좀 애매한데... 내부엔 그래도 많이 신경을 썼더군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이나 가까운데 계시는 분은 아이들 데리고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정말로 글 마치겠습니다.
제가 이전에 썼던 내용도 참고하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