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하이 석고문(石庫門) 건축의 변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업공간여행

by 생각쏟기

최근 상하이에 여행 오는 한국분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상하이의 여행코스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비슷한 경로를 거치게 되죠.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이라고 하면 아마도 '신천지(新天地 신티엔띠)'를 떠오르시는 분들이 많을 듯싶습니다. 신천지는 상하이의 과거와 함께 최신 상업 트렌드들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여행객들의 관심을 받는 모양입니다.



석고문 건축이란?


상하이를 걷다 보면 붉은 벽돌과 검은 돌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건축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거대한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안뜰이 나타나고, 마치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바로 '석고문(石库门 스쿠먼)' 건축입니다.


FuN_Fm1Qx_o0RcckKkbKDNswdBVG.png
신천지1.png 석고문의 여러 형태(윗그림)와 신천지 석고문의 모습(아래)


이 전통적인 주거 양식이 이제는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천지(新天地)'와 '장위안(张园)'입니다. 이 외에도 여행지로 각광받는 '티엔즈팡(田子坊)'이나 '지엔예리(建业里)'등도 석고문 건축물을 변화시킨 곳들입니다. 이에 대해 향후 언급할 기회가 생길 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번엔 신천지와 장위안 두 곳에서, 석고문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는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19세기 중후반, 상하이가 개항하면서 서구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중국식 주택 구조와 서구식 건축 요소가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석고문입니다. 서양식 벽돌과 화강암 문틀, 중국식 내부 구조의 조합, 좁은 골목길과 연결된 주거 단지 형태, 작은 안뜰(天井)이 있는 중정 구조 등등이 석고문 건축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石库门建筑.png 석고문건축의 내부구조를 보여주는 이미지
一幅绘制于20世纪20年代的石库门工程图纸.png 1920년대의 석고문건축 시공도면


조금 더 첨언을 하자면, 산업혁명 이후 도심의 노동자 거주공간을 제공하고자 개발한 영국식 주거양식이 바다를 건너 상하이의 조계지에 뿌리내리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식의 공간구조와 결합되어 독특한 양식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석고문건축도 시대에 따라 변화과정을 겪었는데, 초기엔 상류층들의 주거공간에서 1940~50년대엔 사회적 혼란기를 겪으며 노동자와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공공주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고 이곳의 주거환경은 더욱 열악해졌으나, 지금은 부분적으로 재건축되어 문화공간, 쇼핑몰, 카페, 호텔, 공유 오피스로 탈바꿈하여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있죠.

상하이 전체적으로는 이런 석고문 건축지가 여러 곳이 있지만, 먼저 재건축되어 성공적으로 안착한 신천지(新天地)가 있으며, 최근에 오픈한 장원(张园)이란 곳도 주시할 만한 곳으로 뽑힙니다.


63351015.jpeg 상하이의 주요 석고문건축군의 위치를 표현한 지도


밀집된 곳에 이런 주택단지를 목재로 빽빽하게 짓다 보니 화재에 매우 취약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9세기 중반 화재로 인해 번번이 주택이 전소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건물 간의 벽을 목재 대신 석재로 세우는 방식이 도입되었고, 이것이 바로 석고문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두꺼운 석재 벽과 돌로 만든 문틀은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으며, 당시 상하이의 빠른 도시화 속에서도 효과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석고문건축으로 이뤄진 주택들을 '리롱주택(里弄住宅)'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 건물들 사이엔 자연스럽게 골목이 생기게 되는데 이곳을 ‘롱탕(弄堂)’이라고 부릅니다. 롱탕은 북경의 사합원건물들 속에서 형성되는 골목 ‘후퉁(胡同)’과 비교되는 상하이의 독특한 문화공간입니다. 골목에서 상하이나 북경사람들의 공공생활들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에 옛 추억사진들의 전시들을 보면 이런 골목에서의 이웃 간의 다양한 소통들을 주제로 삼은 사진들을 자주 보게 되죠.


弄堂文化.png 롱탕(弄堂)의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이미지들



신천지(新天地)에 대한 이해


석고문 건축의 대표적 주자라고 하면 역시나 신천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신천지는 1990년대 후반 홍콩의 개발업체인 수이온그룹 (Shui On Land,瑞安集團)이 상하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이 지역을 개발했습니다. 개발사업엔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 법인데, 상하이 전통을 보여주는 중요 건축군이면서 주택단지인 이곳을 상업공간으로 개조하는 작업은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기존 골격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상업공간으로 쓰기엔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죠. 결국엔 거의 해체하다시피 한 후 다시 조립하여 외형을 세우는 방법으로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반대도 많았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상업적으로는 성공적인 사업이 되었는데, 점포 운영을 당시 유명한 홍콩 및 해외 연예인들이 맡으면서 유명세가 생기기 시작했죠. 상업공간만의 개발투자비는 수익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주변의 땅을 저가로 매입하고 개발권리를 획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 큰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업모델이 성공하자 중국 여러 지역에서는 동일한 이름을 붙인 아류 사업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新天地航拍2-00002副本.jpg 상공에서 내려다본 신천지 모습
신천지2.png 신천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미지들


성공요인을 굳이 뽑아본다면 경험이 많은 홍콩개발회사의 운영능력과 시간을 견디면서 수익을 만들어내는 자금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최근 여기저기 들쑥날쑥 지어지기만 했지, 지속 운영을 못해서 텅텅 비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발회사들이 운영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그럴싸한 껍데기만 만들어내면 이런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죠. 아직도 이런 대책 없는 개발이 진행 중인 곳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초기 상하이의 성공모델로서 안착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리노베이션을 진행하면서 고객들과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상업시설이 되었습니다.


참, 이곳을 설명하면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있죠.

신천지는 단순히 석고문건축단지였다는 사실뿐만이 아닌 중국공산당의 역사 유적지인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유적지(中共一大會址, 1921년 7월 23일~31일)'가 있는 곳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보면 당시 당원 57명이 있었다고 하는데(2023년 중국공산당원은 9,918만 명) 회의에 참여한 대표 13명에 의해서 첫 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 중 러시아 공산당에서 파견된 2명의 외국인도 있었죠. 이 회의에 참여한 마오쩌뚱은 주석이 되고, 둥비우는 부주석이 되긴 했지만, 나머지 인원은 제명, 처형되는 등 파란 많은 길을 걸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150.jpg 中共一大会址 중국공산당 1차 회의 유적지 (신천지에 위치)


또 하나의 이야기는 이곳에 대한민국의 시작인 임시정부가 있었다는 거죠.

1919년 4월 11일 이곳에서 임시정부가 출범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었지만, 일본의 끊임없는 박해로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게 됩니다. 신천지를 찾는 한국인들이 꼭 들리는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상해임시정부.jpg 상하이 임시정부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는 한국인들


글을 적다 보니 정말 신천지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이곳에서 대한민국과 지금의 중국의 시작이 있었다는 것이 참 역사의 아이러니 이기도 합니다. 두 나라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로 다른 길을 가고 있긴 하지만요.




새로운 핫플레이스 장위안(张园) 소개


앞서 석고문 건축지로 두 곳을 언급했었는데요 다른 한 곳은 장위안(张园)입니다.

장위안은 신천지보다 오래된 석고문 단지로, 과거 상하이 상류층이 거주했던 공간입니다. 최근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22.11.27 오픈해서 많은 분들이 아시지는 못하는 거 같더군요. 코로나의 영향에 있던 시기라 오픈 세리머니가 좀 약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장위안.png 새로 단장한 장위안의 모습


이곳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좀 설명을 해봅니다.

1882년 부유한 사업가였던 장수허(张叔和)는 영국인 소유주였던 20亩(1亩가 660제곱미터)가 조금 넘는 땅을 매입하게 됩니다. 이를 시작으로 주변의 땅을 여러 차례 매입하여 개인 정원을 짓게 되죠. 민족주의 의식을 가졌던 그는 이렇게 지어진 정원을 1885년 일반 중국인들에게 개방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이곳은 문화의 중심지, 시민 활동의 중심지, 대중문화의 발상지로 발전하였죠. 상하이 최초로 전등을 사용한 곳이었고, 최초의 서커스 공연, 최초의 공공 영화 상영, 최초의 사진 전시회, 최초의 자전거 경주 등이 열린 장소로 상하이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됩니다.


1919년 장수허가 사망하고, 경매로 주인이 바뀌면서 정원은 철거되고 석고문 건축의 거주공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거주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열악한 환경이 되면서 다른 곳과 비슷한 그저 그런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상하이 정부는 이 지역을 새롭게 환생시키는 계획을 세우면서, '보호'와 '갱신' 모두에 열의를 갖게 됩니다. 2015년부터 이곳의 170개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각 주택에 대한 정보를 아주 세세하게 수집하고 보관하였습니다. 2018년 개선 프로젝트가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정원 내의 42개 건물과 170개 블록에 있는 2.053개 방에 대한 조사, 측량, 기록, 비교, 정리, 사진파일등을 완성했는데 역사유적지 재건축에 있어서 중국 전역으로 봐도 가장 열정을 쏟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뚝딱하고 마구 짓던 중국에서 이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것은 이 지역에 대한 중요성을 알 수 있죠.


개발상은 홍콩의 太古地产(Swire Properties Limited)입니다. 이 개발상은 청두의 太古里라는 상업지역을 개발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기업입니다. 최근 여러 상업적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상하이의 역사적인 장소인 장원(张园)은 최근 복원 작업을 거쳐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는데요, 이곳에는 여러 명품 브랜드의 매장이 입점해 있어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쇼핑 경험을 제공합니다.

현재 장원에는 디올(Dior), 루이뷔통(Louis Vuitton), 구찌(Gucci),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불가리(BVLGARI), 시슬리(Sisley) 등의 명품 브랜드 매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장들은 장원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어우러져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한번 들릴만한 곳이 되어가고 있죠.


또한, 장원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화 행사와 전시가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루이 비통은 여행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공간을 선보였으며, 디올은 한정판 컬렉션을 전시하는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장원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방문객들에게 독특한 쇼핑과 문화 경험을 제공하기에 점차 그 매력이 농후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죠.




xintiandi Style.jpg


이렇게 석고문건축공간을 여행하게 되면 상하이 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이국적 느낌의 건축만이 아닌 살아있는 도시의 역사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상하이의 진정한 '맛'을 찾는 다면 도시의 '진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신천지와 장위안에서 석고문건축공간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은 시도일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장소,

여행의 순간이 더욱 특별해지는 곳,


석고문을 열어 들어가면 상하이의 감성에 발을 들일 수 있습니다.



석고문을 상징한 로고들.png 석고문을 활용한 로고들 첫번째 상해 유명 황주, 두번째 신천지, 세번째 제1차공산당대회 전시관



NSPArchi's Space Marketing Analysis :


석고문 건축공간들이 자칫 연립주택들이 나열되어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유사형태의 건축군들이 모여있어 돌아다니다 보면 그게 그걸로 보일 수 있죠. 신천지는 주변에 호수도 있고, 쇼핑몰이 있으며, 조그마한 광장도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다양한 공간경험이 가능하죠.

그에 비해서 장위안은 뭔가 아쉬움이 계속 생깁니다. 분명 건축물 보호를 위한 노력이 있었겠지만, 상업공간으로 거듭나기로 결정한 이상 과감한 공간 변화를 시도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거닐면서 느끼는 공간의 율동감이 부족합니다. 골목을 누비면서 느끼는 다양성과 의외성을 고객에게 남기지 못할 가능성이 있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입점업체를 다 채우지 못한 상황으로 보이는데, 향후 변화가 궁금해지는 곳입니다.


석고문건축은 분명 상하이의 아이덴티티가 되었습니다. 상하이를 대표하는 건축형태인 석고문. 도시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있기에 공간기획에 적용할 요소로 충분함이 있죠. 하지만, 너무 남발한다면 의미는 퇴색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역사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생활했던 모든 이들의 기억의 총합이기에 이미지와 더불어 '행위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상업공간에 적용하는 기획들이 색다른 모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대 상업공간의 과제는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이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하이 히말라야센터의 명과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