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중국 전통주시장
앞의 내용에 이은 내용입니다. 먼저 앞의 내용을 보시길 권합니다.
중국 ‘황주黄酒’의 으뜸은 ‘샤오싱황주绍兴黄酒’라고들 하죠.
샤오싱황주엔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한 부부에게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임신을 했는데 찰떡같이 아들로 믿고 있던 남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들이 태어나면 마시려고 황주를 빚었다고 하네요. 근데 막상 아이가 태어났는데 여자아이였다고 합니다. 실망한 나머지 담근 술을 버리진 못하겠고 그냥 땅에 묻어버렸답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태어난 딸아이가 유난히 총명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아버지는 딸아이를 너무나 아끼게 되었고 그렇게 자란 딸아이가 장성하여 시집을 가게 되었다네요. 시집갈 때쯤 되어 갑자기 잊고 있던 술이 생각난 모양입니다. 오랜 시간 땅에 묻힌 술을 꺼내보니 술이 어찌나 잘 익었는지 딸 시집보내는 날에 손님들에게 그 술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믿던지 말던지겠지만, 샤오싱황주엔 이러한
샤오싱황주에는 '뉘얼홍(女儿红)'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합니다. 이 지역에는 이렇게 딸아이기 태어나면 술을 담근다는 이야기들이 있죠. 뉘얼홍은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 명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럼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술을 안 담글까요? 역시나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커서 큰 벼슬을 하라는 의미에서 같은 술을 담그죠. 이를 '주앙위엔홍(状元红)'이라고 부릅니다.
황주는 이렇게 중국인들의 삶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는 하나의 문화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또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는 제사에 까지 삶의 연속선상에 항상 황주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평소 술을 안 드시는 분이었더라도 돌아가시면 제사에서 술을 올리는 걸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왜 제사에는 술을 올릴까요?
챗GPT의 도움을 받아보니,
술은 발효 과정을 거쳐 깨끗한 형태로 거듭난다는 의미에서 청정과 신성을 상징하기도 하고, 곡물로 만들어졌기에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물품이라고 합니다. 제사상에 술을 올리며 가족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다는 의미도 포함한다고 하네요.
이렇듯 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그런데 이건 모두 옛날이야기들에서 이어온 개념들이고, 현대에서의 술은 어떤 의미일까요?
취한다는 것이 모두 나쁜 의미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취함에 대해 고찰한 한 책에 의하면, 취한다는 것이 우리 인류의 발전에서 긍정적인 작용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들 그렇게나 술을 먹으며 괴로움을 잊고 기쁨을 더하고, 고독을 견디려 하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이겨내지 못하는 술을 드시는 것은 아무래도 해가 더 크겠죠?
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조금 피곤한 상태입니다.
외지에 갔다가 상해로 복귀하는 기차 안에서 쓰고 있는데요, 어제 발렌타인 30년 산을 지인분들과 즐겁게 마셨거든요. 맥주와 양주를 섞어 마셨는데 고급술은 오랜만에 들이켜 봤습니다. 양주는 거의 안 마시는데 좋은 술이라는 심리적 작용인지 오늘 아침 컨디션이 그리 나쁘진 않더라고요. 술기운도 뺄 겸 운동도 좀 했습니다. 그랬더니 좀 더 몸이 상쾌해지긴 하네요.
술을 마시고 어울리고 즐겁게 흥을 공유하고 나면 주변분들과 더욱 친밀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술보다는 ‘술자리’라는 분위기가 더욱 의미로 와닿습니다. 그런 의미 있는 자리를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울리는 것이 술자리 문화겠죠. 그런데 그 분위기를 상대방의 배려 없이 자신만의 ‘해우소(解憂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이 술을 먹고, 절제를 못하고 사고를 치죠.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사람들입니다.
술에 의해 울고 웃고 즐거워하는 삶.
태어나기 전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그렇게 우리 삶 속에서 술은 하나의 사회적 연결의 매개체로 역할을 해 왔습니다.
황주박물관에 갔더니 술과 함께하는 중국인들의 삶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 모습들을 보자니 우리의 삶 속에서의 술의 의미도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되었습니다.
전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습니다.
매번 할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도맡아 하곤 했죠. 어머니가 쥐어주시는 돈을 꼭 쥐고선,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에 가서 술을 받아오곤 했습니다.
가득 넣은 술이 행여나 넘칠까 조심조심 수평을 유지하느라 애쓰곤 했죠. 그러다 술이 넘칠 듯싶으면 주전자 꼭지를 입에다 대고 한 모금 마시기도 했습니다. 막걸리의 그 알싸한 맛과 달콤함을 어렸을 때부터 느꼈습니다. 그렇게 맛을 보면서 집에 오다 취해서 방에 쓰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일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막걸리 값으로 꼭 쥐어준 돈을 주조장에 도착해 손을 펼쳐보니 돈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더군요. 울상이 되었는데, 주조장 사장님께서 그냥 주전자에 막거리를 담아 주시기도 했었죠.
저의 유년시절 막걸리와 관련된 추억들입니다.
최근의 전통주 시장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 현상들이 보입니다.
우리네 술시장엔 젊은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전통술들이 있기도 하거니와, 독특함과 개성 그리고 다양함을 추구하는 시장이 형성되어가고 있죠.
이에 비해서 중국은 아직 전통주 시장에서는 조금 늦은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변화의 필요성에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황주에 커피를 넣는다던지, 스파클링 황주를 내놓기도 합니다.
중국 황주는 전국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지만, 실제 샤오싱황주의 경우 여전히 중국 남쪽의 생산지의 영역에서 크게 확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값이 싼 옛 술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는 젊은 고객들을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죠. 정리를 하자면 '소비지역화', '제한된 시장규모', '저가인식'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들을 보자니 샤오싱의 황주 관련 협회장은 황주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젊은 세대의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고 성토했습니다(只要年轻人认可,就离成功不远了). 전체 주류시장에서 2.7%의 점유율뿐인 황주이기에 기존의 시장전략으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의 발현이겠죠.
일본의 삿포르, 중국의 청도,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보르도. 이 도시들은 모두 주조장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황주의 고향이기도 한 샤오싱도 이들의 명단에 올라가고픈 욕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고리타분한 방법으로는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앞이 보이지 않죠.
이번 황주에 대해 고민을 해보면서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샤오싱의 황주가 발전하는 모습을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러한 전략적인 개념들이 먼저 정리되어 있어야 공간디자인도 방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죠.
많이들 해야 되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약해 보입니다. 그동안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름대로의 방향에 대해 성토를 해보긴 했으나, 결국은 클라이언트의 이해도와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더군요. 그래서 매번 설득에 대해서 고민을 합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 어떤 것을 보여줘야 이해가 될까 하고요. 하지만, 저의 짧은 견해와 한 두 번의 PT로 오랜 세월을 그 업종에서 분투해 오신 분들을 이해시키기가 쉽지는 않겠죠.
“네가 뭘 알기는 해?”
자주 맞닥뜨리는 상황입니다. 역시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란 클라이언트 그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의 역할은 ‘잘 모르지만, 이런 건 어떠세요?’라는 제안을 하는 일입니다. 고루한 고정적인 사고를 전환시키기 위해서 여러 자료와 설득 이미지들을 하루종일 찾고 선별해서 PT자료를 만듭니다.
제가 하는 일의 어려움이자 동시에 즐거움이기도 하죠.
덕분에 매번 이런저런 다양한 지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그 영역에 오랜 시간을 보낸 분들보단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가진 이들이 정확히 파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컨설팅과 외부전문가의 제안을 필요로 하는 거죠. 본질을 파악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유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슷한 패턴을 익히기 때문입니다. 업종과 내용은 다르겠지만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사고의 패턴은 유사하기 때문이죠. 그 훈련이 되어 있는 분들이 컨설팅을 하고 제안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과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클라이언트 자신들의 몫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참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해 봤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몇 가지 뽑아보자면,
- 주역(周易)을 주제로 한 관광 및 주거단지 개발
- 커피와 빵을 주제로 한 여러 프로젝트 (커피공장, 커피숍, 커피마을 등)
- 지하 쌀창고의 활용
- 당나라 대명궁 유적지의 영상제작 프로젝트
- 컨테이너 활용 상업공간
- 옛 얼음창고의 커피숍 변환
- 허마(중국 유명마켓)에 대응하는 새로운 브랜드 개발
- 0.6킬로미터의 지하쇼핑몰 개발 및 각종 쇼핑몰 프로젝트
- 해상레저스포츠 관련 시설 개발
- 생태공원, 근린공원, 고급별장등의 조경 디자인
- 완다그룹의 '쇼핑몰 타입' 개발 프로젝트
- 음향회사의 사내 전시시설 개발
- 각종 역사문화시설 및 단지 재개발
- 쇼핑몰 내부 및 야외 푸드코트
- 양로원, 각종 박물관, 오피스, 호텔, 상업시설 등등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적어봤는데요, 이런 프로젝트들을 진행할 때마다 정말 많은 자료수집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 깊이는 주어진 시간과 자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프로젝트가 가진 '본질'을 파악하고자 참 많은 고민을 했었네요. 프로젝트의 규모가 크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주로 기획단계와 기본설계단계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마무리까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초기 방향설정을 하는 단계에서 앞에 열거한 주제들을 어떻게 공간에 녹아내릴까 밤새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 클라이언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한 명의 외국인이 중국의 깊은 문화적 정서와 현재의 소비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야 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들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부족한 제가 이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그 어떤 나라이든 클라이언트들의 '욕구'를 이해하면 의외로 프로젝트는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이 나라가 거쳐온 흐름과 변화, 그리고 기대치를 여러 선례들을 찾아 녹아내려 제안을 하곤 했죠. 그 선례는 반드시 이 나라에 적용가능한 것들이어야 하기에 이 나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클라이언트와의 교류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더불어 일은 돈을 벌기 위함이 있겠지만, 일을 통해서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측면도 존재합니다.
전 운이 좋게도 일을 통해서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매번 새로운 영역의 내용들을 보면서 다양한 인생들을 경험하곤 하죠. 물론 중국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안고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중국의 이런 경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그래서 일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황주프로젝트도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제 경험치에 '술'이라는 주제가 하나 더 첨가되네요.
오늘도 위스키와 관련된 영상과 문건들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술도 알고 마시면 더 즐거운 술자리가 될 듯싶습니다. 지나친 음주는 삼가여야겠지만요...
오늘은 여기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