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이여행

구화산에 남겨진 신라인(1)

중국인들이 추앙하는 신라인 김교각

by 생각쏟기

아주 오래전 중국 구화산(九华山)이란 곳에서 수행을 하다 육신불(등신불)이 되신 신라의 왕자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 분이 모셔져 있다는 구화산으로 발길을 옮겨봤고, 이번엔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지만 독실한 불자가 아니고서는 불교의 깊은 역사와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저 또한 불교적 철학과 세계관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표면적인 지식에 불과해 깊이가 깊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최근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중국불교에 대해 잠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전파과정을 보면 티베트를 거쳐 중국으로 넘어가는 대승불교가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고, 다시 일본으로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불교가 대부분 대승불교를 이어받아 크게 차이를 못 느꼈는데, 최근에 와서 초기불교에 대해 들어보면서 대승불교란 무엇인지 다른 것들과 무엇이 다른지 관심이 생기더군요. 여러 다른 개념들이 있지만 우리가 자주 접하는 ‘보살’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인 듯싶습니다.


'보살'이란 단순히 목적지로서의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의지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이롭게 하며 자비와 선행을 실천하고, 모두 다 함께 열반에 이르기를 추구하는 이를 뜻합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해,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구원’하려 하는 이를 이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자애’의 개념도 매우 중시합니다.


대승불교로 이어지면서 ‘종교’로서의 불교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종교의 발전’이라는 말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하는데, 종교의 발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라는 해석도 논쟁이 될 듯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발전의 개념은 추종자와 규모의 확대, 그리고 영향력의 확대라는 개념에서 정리해 볼 수 있겠죠. 그렇게 대승불교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중생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고 ‘속세’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법과 복을 기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입니다.


현재의 많은 사찰들을 가서 보면 이곳이 절인 지, 기업인지 모를 정도로 속세의 이익을 탐하는 곳들을 많이 볼 수 있죠. 본질이 희석되어 가는 모습들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거 같아 이쯤에서 정리하고 중국의 구화산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중국엔 4대 불교성지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구화산(九华山, 안휘성, 지장보살),보타산(普陀山, 저장성, 관세음보살), 오대산(五台山, 산시 성, 문수보살), 아미산(峨嵋山, 쓰촨 성, 보현보살)이 그곳이죠.

이 중의 한 곳인 구화산은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최근 중국정부가 지장보살 동상을 99미터 높이로 지어놓아 더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지장보살이라 불리는 이 분은 신라시대의 김교각이라는 스님으로 중국에 정착하여 지장보살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역사가들은 후대에 이 분이 신라의 왕자 신분이었다고 보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에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왜 이런 걸 몰랐었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중국에 살면서 이런덴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결국 전날 밤에 기차표를 덜컥 예매하고 구화산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홀로 하는 여행인지라 이곳의 관광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조금 난감해지더군요. 하룻밤 신세 질 저가의 민박집을 찾는 것조차 난관이었습니다. 우선 이곳을 소개하는 여행동선이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할 정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산중의 있는 사찰들이고 사전정보로는 100여 개가 넘는 사찰이 있었다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낯선 환경에서 파악을 하기가 정말 난감하더군요. 여러 정보들을 찾아봐도 제대로 된 지도도 안 나오고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20년 넘는 중국 짬밥이면 그냥 닥치면 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배낭하나 짊어지고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九华山站(구화산역)과 池州站(츠저우역) 모두 구화산 풍경구로 향하는 버스가 있더군요. 굳이 구화산역에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은 뒤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전 구화산역으로 향했습니다.


구화산_01.png 구화산 대원문화원 입구와 지장보살 99미터 동상
구화산_02.png 이 더운 날 지장보살이 만들어 주는 그늘이 진정한 공덕이 아닐까 싶은 풍경


도착 후 다시 역에서 버스를 타고 구화산풍경구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짧은 거리지만 택시를 타고 그 유명한 지장보살 99미터 동상을 보러 갔습니다. 날씨가 어찌나 덥던지, 동상에 올라가는 계단에선 온전히 햇빛을 받아야 해서 평소에 부족한 비타민D를 아주 많이 많이 축적했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동상을 둘러보고 내려와서 사찰들이 모여있는 산 위로 향했죠. 그곳에 도착해서야 왜 숙소를 잡을 때 산아래인가 산 윗부분 인가로 구분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구화산 풍경구는 산 위에 형성된 곳이기에 어떤 특별한 요구가 없다면 산중에 숙소를 잡는 게 여러모로 편합니다.


구화산_03.png 대원문화원 동상으로 향하다보면 나타나는 복권판매소. 지장보살의 '영빨'을 받은 우리 중국 보살님들께 '희망'을 판매.


산중의 구화산풍경구에 도착하니 역시나 수많은 사찰들이 보였습니다. 크고 작은 사찰들은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었고, 들어보니 사찰마다 복을 기원하는 내용들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떤 곳은 시험에 잘 붙기를, 어떤 곳은 재물을 많이 얻을 수 있기를, 또 어느 곳은 건강을 기원하는 식으로요. 전 오로지 김교각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왔다는 목적이기에 시간관계상 발길 닿는 사찰들을 대충 둘러보는 식으로 지나쳤습니다.


구화산_04.png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찰들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하면서 도착한 풍경구는 곧 해가 넘어갈 태세더군요. 내일 새벽같이 움직일 생각으로 잘 와닿지 않던 지리를 익힐 겸 저녁 산책에 나섰습니다. 이 지역은 도로가 환형으로 되어 있었고, 부분적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노선들이 이어져 있더군요. 대략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아보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기에 해가 넘어가는 저녁 무렵의 이곳은 기념품과 음식물을 파는 상점들로 북적이더군요. 너무나 상업적인 풍경들이기에 불교성지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뭐 우리네도 유명한 사찰 주변엔 비슷하기도 하죠. 이곳저곳을 방황하다가 한 곳에 들러 요기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구화산_05.png 산중에 밀집한 여러 식당 및 기념품 가게들의 모습




* 글이 길어질 듯싶어 다음 회에 이어갑니다.





20220410_214227_917_1.jpg


"사랑으론 안 돼요, 날 추앙해요."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김지원)의 대사.

추앙(推仰)이라고 잘 쓰지도 않는 대사를 사용하는 바람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대사입니다. 추앙의 원뜻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이라는 사전적 단어는 주로 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죠.


글 제목을 생각하다가 추앙이란 단어를 써놓고 보니 몇 가지 덧붙이고 싶은 생각에 첨언을 해봅니다.



지장보살은 원래 내려오는 전설에선 "지옥이 텅 빌 때까지는 성불하지 않겠다"면서 지옥으로 향하는 모든 중생들이 없어질 때까지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겠다는 중생에 대한 무량한 자비와 인내로 스스로의 성불을 미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쩌면 대승불교의 하나의 지향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이런 전설의 지장보살의 칭호를 과거 7~8세기의 신라인 김교각 스님에게 내린 것은, 김교각 스님이 그만큼이나 이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공덕을 베풀었기에 얻을 수 있는 중국인들의 '추앙'인 것이죠.


그래서인지 이곳에 가면 한국인들에 대해 매우 우호적입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지장보살님이 한국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중국인들이 동북공정이다 뭐다 하면서 역사왜곡을 한다고 시빗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절대적이죠.

같은 한반도인으로서 뭔가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이 지장보살인 김교각 스님이 성불한 곳이라고 해서 유명하지만, 신비함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더욱 관심을 주는 것은 김교각 스님의 '육신불(등신불)'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여럿 등신불이 나오면서 이곳이 진정한 불교성지의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이죠.


무수한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었지만, 가까운 옆 나라와의 이러한 교류들이 후대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중국에 대해서 아는 만큼 느끼는 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 써 내려가려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국의 막걸리 '황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