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작가 with 공동체공간
집 가는 길에 수박 한 통을 살지 말지 거의 한달을 고민했다. 대부분의 원룸이 그렇듯, 나 혼자 사는 이곳의 냉장고는 무척 작고 싱크대는 더 작다. 언젠가 수박이 먹고 싶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쯤이었다. 수박 한 통을 사와 야심 차게 썰다 온 주방이 수박 범벅이 됐을 때 느꼈다. 이곳은 잠만 자는 곳이라는 걸. 1인 가구의 비애랄까.
이 작은 나라에서 1인 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은 원룸과 오피스텔이 나름의 최선이다. 최소한의 가구와 크기로 맞춰진 이 집에서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채운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소담소담은 그런 우리에게 다른 방식의 주거 형태를 제시한다. 10명이 큰 공간을 나눠 쓰는 쉐어하우스. 10명이라는 큰 인원이 함께 살지만, 그누구 하나 관계 맺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 10명에 맞춰진 공간이니 모든 게 큼직큼직하고 다채롭다. 그러니 이곳 소담소담은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도 나의 취향을 고집할 수 있고, 혼자 있고 싶어졌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내가 마음껏 변덕 부려도 좋은 공간이었다.
주거 문제에 대한 의식을 바탕으로 소담소담을 개발·운영하고 있는 서울소셜스탠다드.(김민철, 김자연)를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소담소담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 10명이 함께 공유공간을 공유하며 살 수 있는 쉐어하우스이자 주택입니다.
10명이 함께 사는 공간이라는 게 굉장히 흥미로워요. 공간기획에 있어서 10명이 사는 곳임을 배려한 부분이 있을까요?
: 소소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수납을 가장 크게 고려한 것 같아요. 소담소담에는 창고가 있는데 개인물품을 얼마든지 보관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만들었어요. 신발장이 따로 있기도 하고요. 거실 같은 경우에도 책장이라든지, 주방에도 개인 식품함, 세탁실에도 세제 같은 걸 따로 보관할 수 있게끔 개인 수납장을 분리해놨어요. 그러니 방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좁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방안에는 온전히 옷과 침구류만 있으니까요. 이렇게 분리된 수납 덕분에 자신의 방뿐 아니라 전체 집을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화장실의 세면대와 샤워실, 변기를 모두 분리했어요. 그러면 누군가 양치를 할 때, 누군가는 샤워를 할 수도 있으니 각자의 동선이 겹쳐도 크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거죠.
10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원이 다양하니 관계가 피어나는 모습도 다양할 것 같아요. 더 역동적일 것 같기도 하고요.
: 입주민이 아니라 관리자이기 때문에 아주 자세하게까지는 알지 못하는 점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관리를 하려 방문을 하면서 공유공간에 올라가 봐요. 그럼 tv를 같이 보신다든지 입주민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등 그런 작은 관계들? 사실 소담소담이 지향하고 있는바는 ‘느슨한 관계’이거든요.
관계가 느슨하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 함께 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일단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 저희가 운영할 때는 이벤트를 만들었어요. 관리자로서 촉발제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한 거죠. 근데 문득 이러한 방식이 우리가 원했던 관계의 형성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주방이나 라운지처럼 같이 쓰는 공간을 잘해두면 자연스럽게 사람들끼리 나와서 얘기를 나누지 않겠는가를 이야기했거든요. 그렇게 외치면서도 왜 우리는 굳이 이벤트를 열어서 사람들끼리 만나게끔 했을까? 우리가 원래 원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에는 그래서 관계를 만드는 관계는 지양하고 있어요.
딱 원하는 만큼만 맺어져도 괜찮은 관계가 소담소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도 문제는 늘 생길 것 같아요. 살면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문제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나요?
: 일단 저희는 너무 쉽지만 어려운 방식인데 규칙을 끊임없이 논의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몇 시 이후에 TV는 시청하지 않는다거나 밖에서 통화는 몇 시까지. 그런 소소한 규칙들을 들어가기 전부터 알려드리고, 입주민 회의를 통해서 바꾸고 있어요.
다른 셰어하우스들도 마찬가지로 함께 공간을 공유할 때의 문제는 항상 소음 아니면 청결도에서 생기는 것 같아요. 음, 가장 먼저 생활 소음 관련해서는 구조적으로 해결하려 했어요. 소담소담 같은 경우에는 계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방이 배치되어있고 그래서 방끼리 만나지 않아요. 주방처럼 공유공간이 있는 층에는 방을 안 두기도 했고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해요. 이 역시 입주민들끼리 소통을 하면서 배려하거나 룰로써 해결하죠. 청결도는 저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 서비스가 들어가서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청소 서비스 자체가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했거든요.
: 그런데도 일주일에 한 번이기 때문에 중간에 더러워지는 경우가 분명히 생겨요. 같이 살기 때문에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더러워지는 것들은 분명히 불편한 점이긴 한데, 스스로 학습의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해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 젊은 세대에서는 많이 없잖아요. 남이랑 무언가를 할 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씩 배우는 것 같기도 해요.
소담소담은 거실이 4층에 있더라고요. 근데 보통 거실과 같은 공유 공간은 한가운데에 배치해서 쉽게 모일 수 있게끔 위치시키잖아요?
: 신림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주거지 성격이 강해서 폐쇄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부에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좀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4층에 거실이 있는 건 꼭대기의 좋은 뷰에 공유공간을 놓으면 서로 잘 쓸리라 생각을 했고, 그런 의미에서 욕조도 4층에 있어요.
다른 이유로는 선택적으로 이 공간에 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1인 가구가 원하는 커뮤니티는 선택 가능한 게 큰 것 같아요. 내가 원할 때 잠시 들어갔다가, 지치면 빠져나올 수 있는 커뮤니티.
‘선택 가능하다는 것’이 곧 느슨한 관계를 설명해주는 말인 것 같네요. 서울소셜스탠다드라는 기업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공유주택에서의 최소 기준을 제시하고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최소 기준은 늘 고민이에요. 외국은 같이 사는 것에 대한 경험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편이라 참고할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예를 들어 뉴욕만 봐도 ‘마이크로 하우징이야.’하고 만든 게 우리나라 원룸보다 훨씬 크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상황이랑 아주 달라서 좀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최소 기준이라 하면 면적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 면적은 물론이고 화구는 몇 개, 싱크대 상판의 길이는 얼마, 수납장은 최소 몇 명이 살면 어느 정도 길이는 되어야 하나? 까지 연구를 해요 외국은. 그런데 우리나라는 해 먹는다기 보다는 만들어진 음식을 데워먹거나 간단히 조리해 먹잖아요. 그렇다 보니 ‘주방에 화구가 몇 개 있는 것이 중요할까? 화구 대신에 전자레인지가 하나 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것 같아요.
한편 요즘은 집이라는 게 ‘집 자체만으로’ 작동되지는 않아요. 많이들 사 먹으니까 편의점이 나의 주방일 수 있는 거고. 우리나라처럼 9시, 10시가 되어도 먹을 것이 천지인 나라는 없잖아요. 그것들을 내 주방으로 본다면, 우리 집 근처나 우리 집 안에 그런 프로그램들이 있는 게 오히려 우리나라에 맞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는 것 같아요.
스탠다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느낌인 거네요. 그렇다면 소담소담과 같은 코 리빙 스페이스가 입주민에게 제공하는 이점은 뭐가 있을까요?
: 같은 월세로 다른 데에 살려면 정말 작은 방에 작은 화장실인 원룸에 살아야 하잖아요. 이를 좀 더 확장한 쾌적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거 아닐까요? 1인 가구가 주거에 있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는 거죠.
또 한 가지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경험이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좀 더 널찍한 주방에서 베이킹한다거나. 입주자분들 중에서는 베이킹을 해서 테이블에 놓고 나눠 먹는 분도 계셨거든요.
그러네요. 집이라는 공간에서 얻는 경험이 곧 집에 대한 애착과 이어지는 것 같아요.
: 오피스텔이나 원룸은 복도에 철문이 다다다 붙어 있는 모습이잖아요. 그 경험이 너무 싫은거예요 저는. 직장과 지하철. 그렇게 집에 왔는데 엘리베이터 타고 시커먼 복도를 지나서 내 방. 마치 중간에 텔레포트 해서 도착한 것 같잖아요(웃음) 소담소담에서는 집에 들어왔을 때, 1층 라운지에 누군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올라올 때 샤워실이나 세면대가 복도에 있으니 그분들과도 마주칠 수 있는 거고, 5층에 사시는 분은 공용공간을 지나가야하기 때문에 거기 계시던 분들과 또 인사할 수 있는 거고. 내 집에 들어왔을 때의 경험이 스펙트럼을 가진다면, 집에 도달하기까지의 경험이 또 다르게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들이.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하다 보니 소담소담 안에서도 서로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셰어하우스가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제공하는 장이 될 수 있을까요?
: 여러 가지의 조건이 물론 필요하겠죠. 가족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우리 집이라고 얘기한 순간부터 가족의 성격을 띨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이 씨족 사회도 아니고(웃음) 저희가 하고자 하는 부분도 ‘저층 주거지에 있어서 셰어하우스가 어떠한 파급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예요. 굳이 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느슨한 공동체에 준하는 무언가의 시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끼리 무작정 끈끈한 것만이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원래 사람 사이 관계가 인사만으로도 서로 느슨하게 연결이 되는 거잖아요.
: 여러 가지의 조건이 물론 필요하겠죠. 가족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우리 집이라고 얘기한 순간부터 가족의 성격을 띨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이 씨족 사회도 아니고(웃음) 저희가 하고자 하는 부분도 ‘저층 주거지에 있어서 셰어하우스가 어떠한 파급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예요. 굳이 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느슨한 공동체에 준하는 무언가의 시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끼리 무작정 끈끈한 것만이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원래 사람 사이 관계가 인사만으로도 서로 느슨하게 연결이 되는 거잖아요.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 시즌2, 이태림 작가
본 글은 서울시공동체공간 X NSPACE with 도시작가 프로젝트로 쓰였습니다.
소담소담 : 신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