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작가 with 공동체공간
합리적 [함니적] :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또는 그런 것
합리적이라는 건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합리적인 마을이란 어떤 마을일까?
단어 그대로 이론이나 이치에 가장 합당한 마을인 걸까?
잠시 각자의 답을 품은 채로 성미산 마을회관을 둘러보자.
감사하게도 더위를 식히는 비가 보슬보슬 내려주던 날의 아침. 성미산 마을회관을 운영하고 있는 딱풀님, 오솔길님을 만나 회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을공동체나, 공동육아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은 성미산마을을 들어봤을 것이다. 성미산 마을은 뚜렷한 구역의 경계가 있는 게 아니다. 성산동과 망원동 일대의 성미산 근처 동네를 말하고, 그 구역은 조금씩 확장되어왔다. 성미산 마을 일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성미산 마을 사람이라는 유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광범위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딱풀님과 오솔길님 두 분 모두 아이 육아에 대한 고민 때문에 성미산 마을에 살게 되셨다고 한다. 17년째 성미산 마을에서 살고 계신 딱풀님은 아이를 친정어머니처럼 잘 보살펴줄 곳을 찾다가 공동육아에 관심을 갖게 되어 성미산으로 오게 되었다. 성미산 마을이 위치한 마포구는 최초의 구립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애초에 육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동육아를 하며 커뮤니티를 만들다 확장 된 것이 성미산 마을이다.
주변 지인 중에 협동조합형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분이 있는데, 아이만큼 부모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나 어른이나 친구가 필요한건 마찬가지인데, 어른들은 아이에 비해 친구를 만날 기회가 적다. 공동육아를 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로서 공동 관심사를 갖고, 함께 커나가는 기분을 느끼는 건 소중한 유대감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실제로 딱풀님은 17년 전, 어린이집에서 만난 다른 가족과 지금 사는 집을 같이 지어 살고 있다고 한다.
육아에 대한 고민 때문에 마을에 관련된 일을 시작했지만, 결국 내가 즐거워지게 된다. 내가 즐거워야 세상이 즐거울 수 있다는 딱풀님과 오솔길님의 말이 더욱 와 닿았던 이유다.
바깥부터 살펴보자.
간판이 약간 특이하다. 서울시에서 연결해준 예술가 분과 몇 달간 동네를 돌아다니고, 마을에서 인상이 남은 이야기들, 구조물들을 형상화해 간판에 녹여냈다고 한다. 메쉬 천으로 제작되어 밤에는 불빛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이 앞 동이고, 뒤쪽에 새로 지은 건물이 있다. 두 필지를 합쳐 하나의 마을회관으로 만들었다.
합쳐놓은 방식이 꽤 특이한데, 앞 동을 먼저 구경하고 나서 보러가보자.
앞 동을 들어가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성미산 마을 기업들의 제품들. 몇몇 제품과 성미산 마을을 알리는 책자들이 함께 있다.
여럿이 미팅을 할 수 있을 법한 큰 테이블도 있고,
한 쪽에서는 마을 분들로 보이는 몇몇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한 쪽 방에 마련된 ‘뭐든지 공유센터’라는 곳에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지만 자주 쓰지는 않는 물품들이 모여있었다.
소규모 행사를 할 때 쓰이는 컵이나 접시, 몇몇 공구들을 자유롭게 빌려다 쓸 수 있다.
이제 뒷동으로 넘어가 보자.
뒷동으로 넘어가는 바깥 골목에 있는 정겨운 작은 작물 간판.
주변의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작물을 모은 게 아닐까 싶다.
뒷동의 1층에는 작은나무카페가 있다.
본래 다른 곳에서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역할을 하던 카페인데, 월세가 급격히 오르면서 1년간 휴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을회관이 생기면서 1층에 자리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카페 운영도 마을의 여러 단체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고 한다.
안 쪽이 아기자기하니 이쁘다. 음료들도 맛있지만, 유기농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말을 던지니, 아이들이 엄마아빠가 일이 생겼을 때 기다리는 공간이 필요한데, 여기서 건강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다릴 수 있도록 하자는 마음에서 탄생한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맛이 없을 수 없겠다.
뒷 동의 2층으로 올라가면, 꽤 큰 세미나실이 있다. 아무래도 성미산 마을이 공동체 마을로서 모범적인 역할을 하다보니, 각지에서 성미산 마을에 탐방을 오신다고 한다. 그때 마을에 관해 설명드릴 때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이외에도 평소에는 마을 내의 행사들, 주기적으로 열리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세미나실 옆으로 가보면, 앞 동과 뒷 동을 복도식으로 연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시 앞 동으로 넘어가면-
동네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공유주방이 보인다. 바로 전날도 동네 청년들이 모여 카레를 해먹고 갔단다.
한 편에는 마을의 청년 예술가들에게 빌려주는 연습실 겸 작업실이 있었다. 지금 잠시 공간을 쓰고 있는 ‘예술공작단 무어’라는 팀이 이 공간 덕분에 극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망리단길’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망원시장과 함께 특색있는 가게들이 거리 곳곳을 채워주고 있다. 마포구는 부동산 상승기의 바람을 타며 가격적인 면에서 큰 상승을 했고, 자연스레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다. 오랜기간 마포구에 살아온 성미산 마을의 주민들은 공동으로 운영하던 가게들의 월세가 치솟으면서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작은나무 카페도, 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성미산밥상이라는 밥집도 그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성미산 마을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 내 평균 주거기간이 굉장히 긴 편이다. 관계가 안정된 덕분이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공간적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몇몇 공간의 월세를 대출금 이자로 환산해보니 30억 이상을 대출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제는 결단의 문제였다.
고민이 깊어지던 차, 서울시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성미산 마을에 마을활력소로 작용할 공동체 공간을 만들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무조건적으로 반가운 제안은 아니었을 듯 싶다. 관과 함께하면 행정적 절차도 까다로워지는 면이 있고, 그에 따라 영민한 대처가 여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미산 마을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정부차원에서 마을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고, 우리가 좋은 시범모델이 된다면 파급력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성미산 마을 회관은 마을 사람들의 공간자체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된 곳이다. 주민들의 거점공간으로서 그 동안 너무 힘들었던 점들을 풀어내는 공간이었다. 앞으로 마을회관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는지, 어떤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무언가 제공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마을의 여러 동아리들이 생로병사가 있는 것처럼, 회관에서 많은 시도들이 생겨나고, 실험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간을 꽉꽉 채워두는 게 아니라 일정 부분은 비워두고 싶다고 한다.
사실 요즘의 많은 공간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갖고 있다. 그래야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공간 운영자로서의 꿈을 꾸며 여러 공간을 돌아다녔는데, 결국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은 아무런 특색도 없는 공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Everything is Nothing’이기 때문이다. 공간에 내 삶 자체를 녹여내고 싶으니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유연하고 포용력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이 작업이 능숙해지면, ‘Everything is Nothing’이 아니라, ‘Everything is Onething’ 이 되리라 믿고있다.
성미산 마을 회관을 운영하는 ‘사람과 마을’이라는 조직은 마을 내의 네트워크조직이다. 강하게 그룹지어져 있는 단체가 아니라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며, 상황에 따라 마을의 일에 관여하는 정도를 달리한다. 항상 통용될거라 믿는 매뉴얼을 갖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 최적의 상황을 찾아내는 단체다.
성미산 마을은 끊임없는 수정.보완 작업을 거치는 마을이다. 이야기가 통하는 마을이고, 협업을 하는 마을이다. 그리고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서두에서 봤던 ‘합리적’이란 단어를 다시 떠올려보자. 합리적이라는 건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합리적인 마을은 어떤 마을일까.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것이 합리적이라곤 하지만 항상 맞아 떨어지는 이론이나 이치는 없다. 여러 사람이 모여 거친 돌을 쳐내고 쳐내 매끄러운 조각을 만들고, 상황에 맞는 유연성을 발휘할 비움의 공간을 가진 성미산 마을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마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 시즌2, 장범수 작가
본 글은 서울시공동체공간 X NSPACE with 도시작가 프로젝트로 쓰였습니다.
성미산 마을회관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3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