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잘 하기 vs 다시 하기

넷플릭스 영화〈디스커버리〉 리뷰 - 1

by 항율

내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자각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이다. 죽음 이후의 막연함은 이제 막 10년 정도를 살아낸 입장에서 너무나 거대한 공포였다. 교회에서는 죽어서 천국에 가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에게는 그 끝없는 시간을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아득한 높이의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물론 영원한 삶과 반대로 죽음과 동시에 ‘나’라는 자아가 사라지고 무(無)의 존재로 돌아가는 것도 겁이 나긴 마찬가지다. 꿈이 없는 영원한 잠이라니,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윤회는 이 두 가지 선택지를 잘 조합한 순한 맛의 죽음이겠다. 유한한 인생을 살고, 다시 유한한 존재로 태어나며 영원 속에서 끝을 반복하여 경험하는 삶의 순환이니 말이다.


다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 항상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이 삶이 끝난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므로 불쾌하고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동시에 죽음은 삶이라는 유한성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가능성의 열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장수하기 위해 병원에 가고 생명을 연구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지금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자살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에 관한 선택에 있어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의식 수준과 과학 기술의 수준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에도 인간이 죽음 이후에 과연 어떤 현상을 겪는지 밝혀진 것은 없다. 따라서 종교 윤리적 판단을 배제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행위는 누구나 겪는 죽음이라는 생리적 현상을 앞당겨 경험하는 것 뿐이다. 미지의 대상은 두려움, 호기심, 그리고 희망을 갖게 한다.


427686b7fcf434067837c5d0f9e6b08fe1c32897.jpg?type=w966 Netflix 영화〈디스커버리〉포스터 (Google Image)


죽음 뒤에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다면 우리의 인생관은 어떻게 변할까? 넷플릭스 영화 〈디스커버리〉는 사후세계의 증명이라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딘 가에서 이어진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죽음을 공포의 대상에서 새로운 삶의 기회로 바꾸어 놓았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존재가 소멸되지 않고 어딘가로 이어진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위태롭게 버티던 지금의 생을 포기한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밝혀낸 과학자 ‘하버’는 나아가 죽은 사람의 뇌의 파동을 감지해 사후세계의 영상을 얻을 수 있는 기계 개발에 나선다. 죽음 뒤의 세계가 과연 산 사람들의 희망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것은 그 존재를 밝혀낸 이의 의무다.


주인공 ‘윌’은 과학자 ‘하버’의 아들이지만 그의 연구가 불러온 사람들의 연쇄 자살 행위에 반대한다. 그에게 자살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지 못하는 이들의 무책임한 도피 수단일 뿐이다. 윌을 연기한 배우 Jason Segel은 이를 지리적 이동에 비유한다. 뉴욕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LA로 이사를 결심하며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여전히 그 자신이다. 완전한 새 출발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전생의 기억을 모두 날려버린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이므로 후회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MV5BZDc1ZDkzZTItYmI0NC00N2NmLWFjZDgtMjViNGIyMDMyYzk2XkEyXkFqcGdeQXVyOTc5MDI5.jpg?type=w966 Scene from〈The Discovery〉on Netflix(Google Image)


영화는 사후세계의 증명을 통해 현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인생은 숱한 후회와 좌절로 점철되지만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얼마나 많이 도전하든지 간에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삶은 후회의 순간으로 수백 번 되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매달려 무한한 반복의 굴레에 갇힐지, 아니면 지난 후회를 밑거름으로 앞으로 다가올 후회의 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영화 〈어바웃타임〉의 남자 주인공 '팀'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시간 여행의 능력을 사용해 지나간 후회의 순간들을 바꿔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현재는 망가지고 소중한 것들을 잃는다. 결국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단지 하루를 두 번씩 사는 것이다. 사소한 실수들을 고치고 소중한 사람들을 더 챙긴다. 우리에게는 시간여행의 능력이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하루가 있다. 실수를 예측하고 고치는 팀에 비해 배의 노력을 들여야하지만 주어진 삶의 기회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삶을 고치고 바꿀 수 있다.


언젠가는 사후세계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날이 올 수도 있겠다. 그때 우리는 이 삶에 남을지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한 결정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사후세계의 존재가 '나'의 존재의 연속성을 보장한다면 완벽한 새 출발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인간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니 말이다. 사후세계의 증명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전까지 우리는 지금 힘들다고 해서 후회로 가득한 삶을 포기하고 불확실성에 기대기 보다는 주어진 삶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마침표를 찍는 편이 훨씬 확실한 선택인 듯하다. 사후세계가 다음 생의 시작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의 인생을 끝까지 마무리해 본 사람과 중도 포기하고 재시작하는 사람들의 경험치는 다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