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일기 1.

통밀빵

by 항율

처음으로 제빵에 도전했다. 최근에 정말 빵이 먹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는 매일 아침 스펀지 케이크와 우유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할 정도로 빵을 좋아했지만 피부 트러블이 심해지면서는 밀가루 음식을 먹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특히 식빵이나 바게트 같은 정제 밀가루를 이용한 빵은 당 흡수율이 높아서 입에 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좋지 않을 수 있어 먹으면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통밀은 정제되지 않아 현미와 마찬가지로 흡수율이 떨어지고 흡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당뇨환자도 먹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주변에 통밀빵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이 없어서 항상 아쉬워하기만 했다. 빵집, 케이크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은 있지만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본 것은 케이크 시트를 사다가 생크림을 발라 완성한 것이 전부였고 직접 만들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독일 여행에서 처음으로 오븐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보기 시작하면서 오븐을 활용하는 요리들에 조금씩 관심이 갔다.


한 번도 직접 빵을 만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전부터 오븐을 이용한 홈베이킹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참에 도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운 좋게도 집에는 오븐이 구비되어 있다. 비록 지난 10년간 단 한 차례도 사용해본 적이 없고 최근까지 고장 난 줄로만 알았던 구형 모델이지만, 설명서를 뒤져 차근차근 조작하니 멀쩡히 잘 작동했다. 오븐이 없는 가정을 위한 전자레인지, 에어 프라이기 등을 이용한 베이킹 영상들도 요즘 많이 올라오고는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빵의 정석은 오븐으로 구워내는 빵이다. 뚜레쥬르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갓 나온 빵에서 풍기던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에는 빵이 곧 일거리였기 때문에 빵이 새로 구워져 나오는 것을 마냥 반겼던 것은 아니지만 고소한 빵 냄새는 기억 속에서 아직도 은은하게 풍겨온다.


음식 레시피 전문 사이트에서 통밀빵 재료를 확인했다. 화려하고 달콤한 빵들은 그만큼 들어가는 재료 가지 수도 다양했지만, 통밀빵은 심플하게 통밀가루, 이스트, 소금과 약간의 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었다. 빵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레시피 작성자는 우유를 첨가하라고 했지만 집에 우유가 없었고 사러 나가기가 번거로워 생략했다. 통밀가루와 이스트는 동네 마트에 팔지 않아 새벽 배송을 통해 주문해 아침에 바로 준비할 수 있었다. 빵은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지만 유럽여행에서 식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을 오븐에 잠시 데우는 정도는 해봤기 때문에 오븐 사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잠시 옆길로 새자면 바게트나 단단한 식사 대용 빵을 상온에 두어 딱딱해진 경우에는 빵을 물에 한번 담갔다가 오븐에 구워내면 속이 다시 촉촉하고 부드러워져서 처음과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다시 빵 굽기로 돌아와, 첫 시작은 순조로웠다. 레시피는 6인분 기준 500g의 통밀가루를 사용하라고 되어있었지만 어차피 나 혼자 먹는 것이고 첫 시도가 망할 경우를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300g 만을 넣어 반죽해보기로 했다. 통밀가루 300g을 계량해 채에 받쳐 곱게 내리고, 이스트 5g과 소금 7g을 넣어 주걱으로 살살 섞어준 뒤 따뜻한 물을 부어 뒤적이다가 견과류 등을 넣고 손으로 반죽을 시작하는 어렵지 않은 과정이었다. 소금과 이스트를 넣는 과정에서 귀찮아서 한 접시에 두 가루를 같이 계량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소금과 이스트가 직접 맞닿으면 발효가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스트나 소금이 아니었다.


처음 시도하는 음식은 무조건 레시피대로 따라 하길 추천한다. 실수는 정말 무심코 하는 행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반죽이라곤 어릴 때 미역국에 넣어먹던 새알심 떡을 빚을 때 말고는 해 본 적이 없긴 했지만, 물을 넣고 주무르기 시작한 반죽은 단단히 뭉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떡을 빚거나 기계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TV 프로그램의 장면에서는 처음에 조금 되직하던 반죽이 시간이 지나면서 찰기가 생기고 벽에 붙은 가루들까지 흡수해 깨끗하게 뭉치던데, 이 반죽은 한눈에 보기에도 물이 많고 단단해질 것 같지 않았다. 이상하다, 레시피대로 했는데... 3분에서 5분이면 끝난다는 반죽을 30분이 넘게 치대면서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도저히 변화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추가로 밀가루 200g를 계량하고 채를 치는 순간에야 내가 레시피보다 밀가루를 적게 사용했음을 깨달았다. 500g 기준 레시피에 300g만 넣고 물은 레시피 그대로 넣었으니 당연히 반죽이 질어질 수밖엔. 30분 동안 열심히 치대긴 했는지 200g 더 넣은 밀가루에 이번에는 물이 부족해 다시 물을 살살 부어가며 반죽을 마무리했다. 제대로 된 반죽은 무척 단단해 치대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반죽을 마친 뒤에는 랩을 씌워 따뜻한 곳에서 발효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아직 5월이지만 포기하지 못했던 '전기장판'이 있어서 수월하게 반죽을 발효시킬 수 있었다. 밀가루를 중간에 다시 추가했기 때문에 혹 발효가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덮어뒀던 이불을 들추니 반죽이 처음보다는 확연히 부풀어 있는 모습이었다. 발효된 반죽은 처음의 단단함은 없어지고 주욱 늘어나면서 부드러운 촉감으로 변했다. 당장 오븐에 넣고 싶었지만 반죽 안에 생긴 가스를 꾹꾹 눌러 제거하고 다시 한번 랩을 덮어 30분 동안 2차 발효를 했다. 2차 발효가 끝나고 다시 부풀어 오른 빵 반죽에는 기호에 따라 속재료를 더 첨가해도 되고, 그대로 빵 모양으로 잘 만들어 구울 준비를 해도 된다. 첫 술에 배부르랴, 나는 속재료는 생략하고 바로 반죽을 빵 모양으로 보기 좋게 다듬었다. 그리고 오븐의 '저온 발효' 기능을 이용해 15분 간 래핑 없이 세 번째 발효를 해준 뒤 꺼내어 반죽에 칼집을 내고 구울 준비를 마무리했다. 오븐에서는 30분 남짓이면 빵이 구워지는데, 오븐에 들어갈 반죽을 준비하는 데에만 거진 2시간이 걸렸다. 칼집을 내는 동안 오븐을 200도로 예열해준 뒤, 반죽 위에 통밀가루를 살살 뿌려 오븐 전용 트레이에 올려 드디어 투입했다.


KakaoTalk_20200603_124238871.jpg 굽기 전 칼집 낸 반죽. 너무 깊어서 구우면서 찢어졌다.


빵이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찍으면 좋았을 텐데. 오븐 타이머를 맞춰두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부엌으로 가 빵을 확인했을 때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정말 오랜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칼집을 낸 부분의 속이 부풀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진 표면은 정말 일을 하면서 여러 번 보았던 치아바타 브레드처럼 먹음직스러웠고 색도 노릇노릇하게 익어 바삭할 정도로 단단해져 있었다. 오븐 타이머가 끝나기까지 10분 정도는 오븐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빵이 익어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조심스럽게 꺼낸 빵은 손가락으로 튕겼을 때 '탁탁' 하는 경쾌한 소리를 냈고 그와 반대로 속은 꽉 차면서도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이 좋았다. 살짝 덜 익은 게 아닌가 싶어 오븐에 8분가량 더 돌리긴 했지만 크게 변하지는 않았고, 조금 식은 뒤 썰어보니 보통 빵처럼 부드럽게 잘 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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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크림치즈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오븐에 데운 빵을 크림치즈를 발라 커피와 함께 즐기던 독일에서의 아침식사처럼 적당량의 크림치즈를 나이프로 떠 자른 빵에 고루 바르고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한 입 깨물었다.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만 간간하게 소금으로 맛을 낸 통밀빵에 크림치즈의 새콤하고 은은한 달콤함이 어우러지고, 바삭한 겉껍질과 촉촉한 속에 차갑고 부드러운 크림도 퍽 잘 어울렸다. 쌀국수를 이미 거하게 먹은 터라 다행이었지, 아니면 앉은자리에서 빵 세 조각은 거뜬히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첫 판은 망해도 어쩔 수 없다지만 생각보다 더 음식이 잘 되면 몇 배는 더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보다 항상 빵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그 달콤한 향기를 맡고 어떤 재료가 들어가서 내 피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부터 하던 나였기에, 들어간 재료를 전부 알고 있는 이 빵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통밀이 현미처럼 건강에는 좋지만 그만큼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덮어놓고 먹는 것은 좋지 않으니 적당히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작년부터 독서, 음악 감상과 같은 누구나 이야기하는 내용 말고 정말로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겠다는 생각으로 드립 커피를 내려마시기 시작하고 중국 차 수업도 열심히 들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맛과 향을 접하고 그와 관련된 문화들을 배우는 것이 즐거웠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취미라는 것은 그 자체를 좋아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즐기는 것인데, 남들에게는 취미가 되는 일도 여전히 숙제처럼 느껴지니 취미라도 찾자던 가벼운 생각마저 마음의 짐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글쓰기도 재미는 있었지만 글을 위한 글을 쓰면서 그나마 있던 흥미도 점점 잃어버렸던 것 같다. 글에서 중요한 것은 소재이고, 소재는 나의 일상에서 발견해야 하는데 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지는 게 당연했다. 첫 빵을 만들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빵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신기함과 오븐 앞에서 느껴지던 온기, 빵이 구워지는 향기, 갓 구워져 바삭하고 단단하던 겉껍질까지 하나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혼자서 손에 잡히는 둥글고 따뜻한 빵을 구워냈다는 점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 통밀과 건강한 재료들을 이용해 또 다른 빵, 쿠키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든다. 앞으로 누군가 취미를 물었을 때는 베이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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