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나는 속초에 간다. 속초는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있고 다른 한쪽을 보면 설악산 울산바위와 줄기가 병풍처럼 단단하게 서 있다. 이렇게 매력적인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속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서점이다. 서점을 빼놓고 갈 수 없다.
몇 년 전에 속초에 갔었을 때 가고 싶었던 동네서점 몇 곳을 모두 돌아보고 그중에 좋아하는 서점이 생겼었다. 동네서점만의 큐레이션을 잘 갖춰놓았다 해도 마음에 닿지 않으면 나에게 좋은 서점도 아니었다. 하지만 ‘동아서점’만큼은 달랐다. 이곳에선 책 안 읽는 남편마저도 큐레이션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읽고 있었다. 책 읽게 하는 마법의 기운이 있는 걸까?
동아서점은 3대째 내려오고 있는 속초의 오래된 동네서점이다. 동네서점이라고 하기엔 중대형 서점에 가까운 큰 서점이기도 하다. 현재 주인장이 맞게 되면서 서점이 리뉴얼되어 새롭게 문 열게 되었다. 주인장은 어릴 적부터 널린 책이었고 서점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지만 서점 운영을 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덜컥하겠다고 했다. 서점을 맡게 되면서 그에 따른 사사로운 고민부터 어떻게 운영하며 책을 팔지에, 숱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서가의 분류도 서점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인터넷 서점이 아닌 ‘서점’에 갈 최소한 한 가지 이유는 확보한 셈일 것이다. (p.61)
<당신에게 말을 걸다> 김영건 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서점을 좋아하고 오래 머물며 책을 볼 거라 예상한다. 남편도 내가 서점을 가면 책을 항상 볼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였다. 물론 책을 좋아한다면 책이 가득한 공간을 좋아하겠지만 모두에게 들어맞는 경우는 아니다.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와 신간 쪽이 아니면 책을 검색해서 찾아보는 정도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서점에 머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내가 책을 고르고 발굴하는 재미도 좋지만, 그러기엔 대형서점은 지루하고도 산만한 곳이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책을 팔기 위한 곳으로 존재하고 책을 읽게 하기 위한 곳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겐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 동네서점의 큐레이션이 더 와 닿아 오래 머물며 책을 고른다.
베스트셀러만 소개하고 잘 팔릴 것 같은 책들만 진열했다면 아마 묻혀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책.
그렇게 묻혀버리고 말기엔 아까운 책.
그런 책들을 손님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그들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이 목소리를 듣고 책을 펼칠 수 있을까? (p.91)
<당신에게 말을 걸다> 김영건 글
이 서점이 가장 좋은 이유가 바로 주인장의 큐레이션이다. 어떤 책을 메인으로 내놓는지, 무슨 설명을 손 글씨로 적어 놓았는지, 어떤 쪽을 만들어 놓았는지를 보고 있으면 대형서점과 다른 동아서점만의 정감이 넘치게 흘러나온다. 어떤 책을 사야겠다는 작은 결심 하나 없이 큐레이션만 보고 고르고 산다.
주인장의 글이 담긴 책을 읽고 있으니 내가 왜 속초 갈 때마다 이 서점을 들르는지, 또 예상하지도 못했던 책을 골라오는지 알만했다. 사람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주인장의 깊은 바람이 서점에 잘 심어져 우리 세 식구에게까지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남편과 아이도 함께 좋아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책이고 서점이라 더 소중했다. 이 귀한 경험을 이번 짧은 가을 여행 중에 하고 왔다. 다음에도 강원도로 오게 된다면 분명 내 발걸음은 속초의 한 서점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