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literary theory)의 관점에서 비평하기
감독 마이크 밀스는 누구인가?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마이크 밀스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첫 시작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전작 '비기너스 (Beginners)'가 감독 본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처럼 이 영화 또한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친했던 자신의 십대 친구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선 매력적인 배우 한 명이 등장하는 데에 엘르 패닝이다. 엘르 패닝이 마이크 밀스의 십 대 친구 역을 맡는다. '우리의 20세기'란 영화는 '어머님께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마이크 밀스 감독의 말처럼 자기 어머님에 대한 자신의 기억의 결과물이다. 영화에서 애비로 나오는 매우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마이크의 누이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일단 이 영화를 비평하기 전에 감독 마이크 밀스의 경력에 대해 좀 살펴보자.
마이크 밀스 감독의 경력과 그의 캐릭터들?
영화감독이기 전에 마이크 밀스는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사진작가이며,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영화에서 소년 마이크 밀스 즉, 제이미가 애비의 영향으로 펑크 음악을 즐겼던 것처럼 마이크는 음악을 좋아해서 전문 밴드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노래도 곧 잘한다고 한다. 다재다능한 미국판의 엄친아가 밀스 감독이다. 밀스의 아버지는 미술관 관장이었고 어머니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도면을 그리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영화 비기너스가 말해주는 것처럼 실제로 어머니는 뇌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이후에 밀스의 아버지는 자신이 성적 소수자임을 공개하고 여생 5년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게 남자를 사랑하다 폐암으로 죽는다. 밀스의 전작인 비기너스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보여준 아버지의 커밍아웃, 그리고 그의 사랑과 죽음을 그린 영화였다.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 '우리의 21세기'는 밀스자신의 어머님에 관한 얘기다. 밀스의 엄마는 영화에서 도로시란 캐릭터로 등장한다. 1979년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독립적이고 진보적인 어머니로 그려진다. 물론 소년 밀스인 제이미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페미니스트인 애비에 비하면 덜 진보적이다. 하지만 밀스는 상당히 오픈 마인드를 가진 여성으로 도로시 캐릭터를 그린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인 애비는 사진을 공부하고 도로시의 집에서 하숙하는 직딩으로 나온다. 물론 독립적인 여성이며 동시에 성적으로도 주체적인 여성이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개인적인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여자로 묘사되었다. 소년 마이크 밀스인 제이미의 절친한 친구로 나오는 줄리는 영화 초반부에는 아무 생각 없는 십 대 소녀였지만 애비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으로 변모해간다. 십 대 소녀의 설명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을 마치 자기가 십 대인 것처럼 잘 연기한 것처럼 보였다. 아직 만으로 19세다. ㅋ 물론 배우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제이미 빼고 이 영화에 유일하게 나오는 남성이 윌리엄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픔과 충격으로 한 여자와의 장기적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 캐릭터는 감독이 상상한 가공의 인물인 것 같다. 목수이자 자동차 정비공으로 나온다. 애비와 재밌는 러브신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제이미의 엄마 도로시와도 애정 관계를 1년간 상당히 길게 지속한다.
이 영화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들?
사랑과 인생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것 같다. 제이미의 엄마이자 이혼녀 (?)인 도로시의 인생, 아픔을 가진 독립적인 여성 애비의 연애와 인생, 제이미의 절친 줄리의 십 대의 경험과 사랑, 이 모두를 지켜보는 듯한 제이미의 사랑과 홀로서기 과정, 그리고 윌리엄의 연애사를 포함한 개인사가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인 듯하다. 이 영화 홍보 카피 중에 '서툰 인생을 나름대로 헤쳐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란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 중에 감독 마이크 밀스의 독서 목록과 인생관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행복'에 관한 도로시의 견해, 페미니즘에 대한 애비의 입장과 태도, 부드러운 음악에 대한 애비와 제이미의 견해 등등이 그렇다. 어찌 보면 무거운 주제들인데 그저 가볍게 언급되는 수준이다. 성공한 백인 남성으로 대변되는 마이크 밀스의 철학적 깊이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대중적인 상업영화이기에 이런 무겁게 다루면 정말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선에서 타협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인지 뭔가 깊이 있는 묵직한 철학을 발견하진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현대 사회에서 성공한 남자들이 뽐낼 수 있는 지적 허영심으로 해석될 수 있는 수준의 대사들만 난무했다.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페미니즘이나 펑크 음악에 대한 이해는 마이크 밀스가 스스로 '나, 이 정도의 생각은 하고 사는 그래도 개념 있는 남자야!'라고 은근히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의 철학적 깊이를 가진 운 좋게 성공한 미국의 유명인사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데에 아네트 베닝, 그레타 거위그, 그리고 엘르 패닝과 같은 지명도 있는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연기 연습을 위한 정도로만 의미 있어 보이는 이 영화에 기꺼이 출연해 준 배우들의 영화를 보는 안목이 매우 존경스럽게 보인다. 좀 비꼬았다. 그래도 양심은 좀 있는지 나름 저예산 영화다. 대략 80억 정도의 예산과 30일이 좀 넘는 촬영으로 영화를 마무리한 것 같다. 영화 흥행 성적도 제작비에 좀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물론 필자의 이 영화평은 전작 '비기너스'를 좋아한 분들과 이 영화를 수입해서 개봉한 회사엔 서운하게 읽힐 수 있다. 물론, 이 영화가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평을 쓰고 싶어도 좋게 보이는 구석이 별로 없다. 한두 대사 정도와 애비가 돋보였던 공동식사 장면 정도가 인상적이다. 굳이 여기에 써 보면 '행복에 관해 말하거나 고민하는 행동은 불행에 이르는 지름길이다!'와 '부드러운 노래는 사회의 어둡고 불의한 면을 가려버린다!'라는 의미를 가진 대사들 정도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애비의 제창 독려 부분이다(Everybody, menstruation!). 마이크 밀스는 이 영화의 기세를 몰아 자신의 인생 성공담을 차기작으로 이번처럼 시나리오도 본인이, 그리고 감독도 본인이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지 않고 좀 참았으면 좋겠다. 좀 더 인생에 진지해지고 성찰의 시간을 가진 다음 세상에 나오길 희망해 본다. 왜냐하면, 본인이 직접 쓴 대사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렇게 '잔잔하고 소프트'한 영화는 미국 사회를 비롯한 현대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를 가려버린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정작 집중해야 할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외면하게 만드는 역할도 해왔다고 많은 문학이론가가 비판해왔다.
문학이론 (literary theory)의 관점에서 '부드러운' 영화란?
시나리오든, 소설이든 문학은 역사적으로 지배를 정당화시켜주거나 지배를 은밀하게 숨기는 역할을 했다고 수없이 비판받아왔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같은 소설은 '살인과 약탈'로 화려한 삶을 누리는 영국인들의 삶을 식민지배를 받는 원주민들에게 보여줌으로 영국의 지배를 은폐시키는 수단이었다고 비판받아왔다. 식민지에서 헐값에 약탈한 원재료로 풍요를 누리는 영국인들, 그리고 그 나라인 영국을 식민지 원주민들이 선망하게 만드는 역할을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감당했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영웅 영화들은 어떤가? 미국의 현재의 지위 즉, 경찰국가의 지위를 세계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미국은 거리낌 없이 군사적인 개입을 한다. 이에 대해 우리를 포함한 세계인들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느끼지않게 만드는 역할을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영웅영화들이 감당하고 있다. 어벤저스의 서울 촬영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미국의 영웅인 어벤저스의 일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소위 '지랄'을 했다. 말 그대로 '지랄'이다. 영화상에서 대한민국 영토의 심장부인 '서울'에서 자신들이 한국 정부의 허락도 없이 작전을 편다. 이런 장면을 보고 아무런 문제 제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장면이 갖는 은밀한 영향에 대해 비평하는 글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이런 장면이 세계인들로 하여금 미국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고 인정하게 만든다는 비판은 충분히 나올 법한 데도 말이다. 한류를 이끄는 헬 조선의 드라마는 어떤가? 97년 IMF 이후로 가계의 실질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에 우리 대기업은 수백조를 쌓아놓고 있다. 물가 대비 실직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 다수는 팍팍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헬 조선, 이번 생은 망했음, n포세대' 등의 표현이 넘쳐난다. 경제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그 성과물인 부는 정의롭게 분배되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기업이 그 이윤을 독식했기 때문이다. 이윤을 독식해서 우리를 힘들게 만든 자들이 재벌과 그 가문의 자손인 재벌 2세들이다. 이들은 원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이 원망의 대상이어야만 하는 재벌과 그 2세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이 얼마나 '어메이징한 하느님의 역사'인가? 자기들 돈으로 드라마 만들어서 자기들을 멋지게 보이게 만드는 우리 재벌들의 작태가 얼마나 민망하고 한심한가?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들인가보다. 어쨌든 문학이 이렇게 권력자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사실상의 지배를 위장시키는 역할을 해왔다고 현대의 문학이론가들은 목청껏 외쳐왔다. 물론 문학이 이와는 반대로 지배를 폭로하는 순기능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가 앞서 예로 든 '부드러운 문학이나, 영웅 영화의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들'이 지배를 위장시키는 역할을 했는지, 아니면 지배를 폭로하는 역할을 했는지를 여러분은 쉽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20세기' 총평?
'우리의 20세기'는 미국에서 성공한 백인 남성, 우리 표현으로 하면 다재다능한 엄친아인 밀스가 자신의 성공한 인생에 대해 트로피를 자신에게 스스로 수여하는 수단 정도로 필자에겐 보였다. 마이크 밀스는 현재 자신을 있게 만들어준 아버지, 엄마, 누이, 그리고 자신에게 영향을 준 친구들에게 자신의 영화로 답례한 것이다. 마치 저렴한 (kitsch; 저질인데 인기는 있는 예술 작품을 표현하는 형용사)영화제인 아카데미나 그래미 상, 헬 조선의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은 배우들이 이 모든 영광을 저를 있게 해준 감독과 영화 스태프에게 돌린다고 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제작 목적을 매우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마이크 밀스는 자신의 인생의 성공에 상을 주는 '인생 시상식'에서 자기를 선망하는 미국민들에게, 그리고 그걸 좋다고 막 기꺼이 인정해주려는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를 있게 해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와 친구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며 감사드린다'는 좀 재수 없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영화로 풀어 낸 것 같다. 원래 할리우드에 성공한 중, 노년의 남자 배우들은 자신의 성공에 상을 줄 때 스무살 정도 차이나는 매력적인 여성과 결혼 (trophy wife)하고, 이걸 대중에게 뽐내는 행위로 보통 한다. 감독 밀스가 어떻게 골빈 배우들처럼 똑같이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 이렇게 영화로 스스로 상주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 영화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 준 제작사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발 벗고 나서서 감독 개인의 가족과 친구에 관한 시덥지않은 얘기를 심도 있게 들어준 배우들이 마이크 밀스는 얼마나 고맙겠는가? 놀라운 인맥은 역시 엄친아의 대표적인 자질이 중에 하나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애비의 캐릭터 그리고 이 캐릭터를 연기한 그레타 거위그는 개인적으로 호감 가는 외모와 성격을 가졌다. 엘르 패닝이 연기한 줄리의 정신세계는 너무 미숙해서 개인적으로 정이 가진 않으나 그녀의 외모는 상당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스펙터클'한 영화였다. 'Kitsch' 한 영화들이 그렇듯 내용은 없어도 볼거리는 원래 있지 않은가?
이 글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다음 (daum)에 게시된 '우리의 20세기'의 공식 사이트에서 가져 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06773#1199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