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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공장 Feb 20. 2017

불안, 복지, 테크, 그리고 이념 2

세금으로 공적 서비스 (의료, 교육, 연금 등)를 공동 구매하는 게 복지






유럽 국가들의 복지 정책      


완벽할 수는 없지만 헬조선의 모든 연령대의 시민들을 괴롭히는 각종 불안을 없앨 수 있는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안타깝게도 불안으로 오염된 2017년 대한민국의 공기를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시민들의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소개되었다. 2013년 1월에 EBS 다큐프라임에서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란 제목으로 노동, 의료, 주거, 보육, 교육, 그리고 노후에 관한 유럽 선진국의 복지 정책을 상세히 다루었다. 이 글 (불안, 복지, 테크, 그리고 이념)의 2부에서는 EBS 다큐멘터리의 방송 내용을 토대로 각 분야의 유럽의 대표적인 복지 정책을 소개해 보려 한다.



먼저, 노동 시장에 대한 유럽 각국의 복지정책의 특징은 노동자가 실직이라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실업수당이나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를 통해서 실업자들을 경제적 위기에서 보호해줄 뿐 만 아니라 정부의 직업훈련 교육 및 취업알선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시장 개입을 통해서 실업자들을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언뜻 보면, 정부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재교육까지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실업자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인 보호는 공짜가 아니다.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소득세율이 높기 때문에 정부의 노동 정책을 통해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노동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부의 세금수입은 여유 있어진다. 재취업에 성공한 노동자는 일함을 통해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유럽에선 노동자 소득의 평균 40-50%가 세금으로 국가에 납부되기 때문에 유럽 국가의 복지제도는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동시에 이것이 고용위기로 인한 경제적인 위기에 빠진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의료 복지는 영국의 NHS (National Health System; 국가 의료 서비스)를 모범적인 의료복지의 한 예로 들고 싶다. 영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복지제도 중의 하나다. 영국의 국민 건강 보험은 필자와도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다. 2007-8년 사이에 필자는 영국 런던에 잠시 3개월 정도 체류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때 당시에 방문자 신분으로 NHS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필자는 심한 감기로 인해 어떤 병원을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고 있었고, 병원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치료를 미루고 있다가 폐렴으로 진행되면서 어쩔 수 없이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당연히 필자의 의료기록이 없는 런던의 병원은 만성적인 폐질환이 있다는 필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혈액 검사부터, 엑스선 (X-ray) 촬영과 폐 기능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하게 되었고 결국 20여 일 분량의 항생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 미처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고 무작정 영국으로 출국한 필자는 처방전 없이는 구입할 수 없는 항생제를 손에 쥐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진단과정에서 있었던 상당한 수의 종류의 검사와 처방약에 대한 비용 때문에 떨리는 마음으로 내 모든 병력을 친절하게 자세히 들어주었던 병원 직원에게 ‘얼마를 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반응은 놀라웠다. 그의 대답은 ‘그냥 가세요’였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란 필자의 표정을 본 직원은 ‘약을 탄 병원 약국에 7-8 파운드 정도 (2007-8년 기준 14,000-16,000원)를 지불하던가?’라고 대답했다.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영국의 의료복지의 수준과 관대함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로 보인다. 선천적인 장애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장애, 희귀병,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질병들이 거의 재난에 가까울 정도의 의료비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서 헬조선에서는 희귀 질병과 장애의 벽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영국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는 나라’라는 가치가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의료복지를 지탱해 준다. 노령화와 함께 늘어나는 의료비용으로 유럽 국가들이 재정 부담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한 국가적인 노력과 정책도 함께 제시한다.



다큐멘터리의 3부에서 주거에 관한 유럽의 복지 제도는 ‘집은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다!’란 생각에 기초해 있다. 네덜란드의 20대 초반의 신혼부부가 국가로부터 임대료의 50%를 보조받는 모습을 3부는 소개한다. 임대료에 대한 국가 보조금은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경제력이 없는 시민에게 제공된다. 덴마크의 학생 지원금도 우리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복지제도 중의 하나다. 18세 이상의 모든 대학생들에게 국가가 우리 돈으로 매월 92 만원 정도의 학생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학생 보조금으로 대학생들은 매달 주택 임대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다시 네덜란드의 주거복지로 돌아오면 이런 복지제도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소득에 관계없이 주거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해 있다. 동시에 임대료의 지불 능력에 따라 집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수에 따라 임대될 아파트의 크기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네덜란드의 주거복지 정책을 떠받친다. 이러한 가치 때문에 모자란 임대료는 국가가 대신 지불한다.



다큐 4부는 보육이다. 보육의 천국 프랑스는 3-5세의 보육교사가 의무적으로 석사학위 (대학과정 포함해서 5년 이상 교육) 자 이상이기 때문에 부모들도 보육교사에 대한 신뢰가 높다. 동시에 육아수당, 출산 수당, 심지어는 개학 시에 학용품비를 지원하는 개학 수당 등 다섯 종류가 넘는 다양한 수당을 제공한다. 이러한 보육 복지 정책 때문에 프랑스는 OECD (경제협력기구; 소위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국가들 중에 가임 여성 한 명당 평균 2명이라는 높은 출산율을 보인다. 복지의 나라 스웨덴의 경우 1년 이상의 출산 휴가를 산모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주고 있고 출산 휴가시에 1년 동안 출산 이전에 받던 급여의 80%를 보장해준다.



다큐멘터리 5부의 주제는 교육이다. 네덜란드에서의 교육 기회의 균등은 세금에 기반한 무상 (?) 교육을 넘어 시민이 하고 싶어 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 까지 나아간다. 한 예로 의대의 학생 선발을 성적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추첨을 통해서 학생을 선발한다. 물론 고등학교의 졸업시험성적을 기준으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추첨 확률이 높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성적이 의대 입학을 위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교육 복지는 독일도 빼놓을 수 없는데, 2010-11년 당시 독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다녔던 필자도 교육복지의 수혜자였다. 당시 학비는 한 학기 기준으로 700 유로 (당시 우리 돈으로 당시 약 백만 원 정도)로 저렴했고 이마저도 2012년부터 사회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본이 속한 주는 학비가 폐지되었다. 2011년 당시 학비 중에서도 삼십만 원 정도는 쾰른과 본 등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어느 도시나 무료로 대중교통과 지역 간 기차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학생 무료 교통권을 위한 비용이었다. 이렇게 유럽에서 대학생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해주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소득이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 주거, 보육, 의료와 같은 여러 유형의 복지도 기본적으로 같은 이유이지만 특히, 교육 복지는 국가가 무상 (?)으로 국민들을 위해 선물하는 제도이기보다는 국가단위의 R&D (연구개발) 투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 복지는 미래의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학생이 경제적인 벽에 좌절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런 일은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사건이다. 그렇다고 모든 대학생이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될 필요도 없다. 한 명의 노동자로 열심히 일하고, 노동의 대가로 받은 급여 중에 상당한 돈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행동 자체가 자신의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교육복지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원하는 개인과 그 개인을 보호하는 국가를 위해 필수적인 제도다.



마지막으로 노후복지인데 독일의 노부부의 사연이 나온다. 남편은 전자제품 판매원으로, 부인은 백화점 직원으로 은퇴했고 매월 연금으로 2000 유로, 우리 돈으로 대략 삼백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데 독일은 생필품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충분히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고, 이 프로그램에서 이 노부부는 요트로 발트해를 7주 동안 여행하면서 노후를 즐기는 모습도 보여 준다. 물론, 독일은 연금 가입자 비율이 90%이고, 평균 납입 기간이 36년, 그리고 월급의 평균 20% 정도를 매월 연금으로 납입하고 있기 때문에 노후에 이런 안정되고 시간적으로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월급의 18.5%를 매월 45년 동안 납입한 스웨덴 부부의 매월 연금수령액은 우리 돈으로 오백육십만 원 정도인데 이중에 대략 160 만 원 정도가 세금이고 생활비는 240 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세금과 생활비를 제외하고도 연금이 남는 여유로운 삶을 노부부 살고 있다. 남의 나라이고 먼 나라 이야기이다. 이 두 나라 모두 노후의 많은 지출 부분을 차지하는 의료비는 거의 무료에 가깝다.






국가는 시민을 위해 보육, 교육, 의료, 주거, 노후연금 등의 공적 서비스를 세금으로 공동 구매해 주는 대리인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상'이란 단어를 복지제도에 붙여 복지 제도의 도입을 막거나 꺼리는 정치인은 우리 돈(세금)을 사기 치는 인간임을 스스로 인증하는 거다!!


지금까지 기술된 여러 유형의 복지제도들은 사치가 아니라 사실, 시민들의 '사회적 권리'에 해당한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서유럽과 북유럽의 국가들은 국가를 국민 전체가 속한 하나의 큰 가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국민 한 사람이 실업, 질병, 재난과 같은 여러 유형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시민 전체가 낸 세금으로 국가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한 시민을 가족 중에 한 명처럼 즉, 형제나 자매 혹은 자녀처럼 보호해 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웃집 가장이 실직하거나,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드는 암과 같은 중증 질환이 생겼을 때, 또는 은퇴했을 때와 같은 경제적 위기에 처할 때, 도와주지 못해 드는 미안하고 동시에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불편한 마음과 미안함은 유럽의 국가에서는 가질 필요가 없어 보인다. 또한, 모든 시민에게 자신의 꿈과 재능을 펼침으로서 사회나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공공재로서 교육, 보육, 직업교육, 의료와 같은 복지제도들을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한다. 즉, 세금으로 위와 같은 공적 서비스 (주거, 의료, 교육 , 연금 등)를 국가가 저렴한 값으로 시민을 위해 공동 구매해 준다. 위에서 기술된 복지제도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가까운 미래에 실현된다면 앞서 이 글 (불안, 복지, 테크, 그리고 이념) 1편에서 언급된 다양한 유형의 불안들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환상적인 복지 제도들이 대한민국에서도 실현될 수 있을까?라고 2017년 대한민국 다수의 시민에게 물으면 어떤 반응이 주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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