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반쪽짜리 교사가 될 뻔했다.
여러분이 근무하는 학교에는 사서 선생님이 계시나요? 혹시 도서실이 있지만 사서 선생님이 누군지 몰라 잠깐 고민하셨나요? 학교에 사서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에요. 책을 좋아하는 교사가 사서 선생님과 친하게 지낸다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굉장히 많아요. 책을 좋아하지 않는 교사도 일단 사서 선생님과 친해지면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받게 되어 있어요.
일단 사서 선생님은 책에 관해서는 담임교사보다는 전문가가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담임교사가 요청하는 책을 찾는 능력도 굉장해요. 가끔 국어 교과 외에 수학, 사회 관련 도서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이론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딱딱해서 아이들이 재미없어하겠다. 관련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용을 알아차릴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 해보신 적 있으시죠? 어디에서도 참고 자료를 찾기 어려울 때, 사서 선생님께 구체적으로 여쭤보면 원하는 책을 찾아주시니 전문가가 맞지요. 담임교사는 아이들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맞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혼자서 찾기는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거든요.
보통 한 학기에 한 번 도서관 수업이 있어요. 대개 일 학기에는 도서관 이용 방법이나 도서관 예절, 도서 대출 방법 등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수업을 하세요. 이학기가 되면 책갈피 만들기나 시화 그리기 등 다양한 독후활동 위주로 수업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이것이 항상 정해진 것은 아니에요. 학급에서 원하는 수업이 있으면 사서 선생님과 미리 조율이 가능해요.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사서 선생님의 전문성을 살릴 기회를 제공해 드릴 수 있어요.
한 번은 외부강사가 동화책 읽어주는 수업을 해준다는 공문이 왔고, 사서 선생님이 각반에서 신청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흔치 않은 기회라 많은 선생님이 신청을 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서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이 꼭 와야 하냐고요. 그랬더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제가 있어서 아마도 안 오실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셨어요. ‘공문이 와서 일단 신청은 받았지만, 사서 교사가 없는 작은 학교가 우선순위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네요.’ ‘역시 그렇죠. 사서 선생님은 전문 가니까 우리 학교는 그분이 안 와도 걱정이 없겠어요.’ 저는 활짝 웃으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말씀드렸답니다.
학교 도서실은 일 년에 두 번 희망 도서 신청을 받아요. 3월 초 정신없는 시기가 지나면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희망 도서 신청 안내장이 배부돼요. 저는 이때 교과 관련 도서, 교양서적, 그 외 필요한 자료를 신청해요. 제 경험상 학생을 가르치는데 교과 관련 도서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여행기나 소설, 역사책, 에세이 등 교양서적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경험치가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러한 경험은 학생을 대할 때 굉장한 역할을 한답니다.
한 번은 말 수가 거의 없는 저희 반 학생이 책을 읽고 있길래 대수롭지 않게 ‘그 책 선생님도 읽었는데 좋더라. 그 작가 다른 책 ㅇㅇㅇ도 읽어봤니.’ 하면서 넌지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연인지 며칠 후 보니 제가 말한 그 책을 학생이 읽고 있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기뻤답니다. 왠지 학생과 더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았거든요.
운이 좋게도 학교에 희망 도서 신청자가 거의 없기에 제가 신청하는 책을 거의 다 사주세요. 책을 신청할 때는 저만의 규칙이 있어요. 우선 국어 교과서 맨 뒤를 보면 교과서에 수록된 도서 목록이 나와요.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책은 일단 검증이 됐다고 믿기에 신청 목록에 넣어요. 이 책들이 도서관에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신청만 했을 뿐인데 벌써 국어 수업이 성공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요. 그러고 나서 교양 도서를 신청해요. 교양도서는 평소 제가 읽고 싶었던 책들로 정해요. 이상하게도 신청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학교 도서실이 제 개인 도서관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한 번은 사서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선생님은 사서가 되면 더 좋았겠어요’하고 말한 적도 있답니다. 그만큼 저는 책에 대한 관심이 많고, 우리 반 아이들도 책과 친숙해지면 좋겠어요. 이렇게 교사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난 후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간곡히 부탁드려요. 우리 반은 책을 읽는 교실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 최대치를 신청해주세요. 몇몇 학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귀찮은 일 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일 년 동안 우리 아이가 함께 할 담임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더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우리 아이 담임은 책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이 참에 나도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아이 어릴 때는 매일 동화책을 읽어줬는데 이 번에 같이 읽어볼까. 학부모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시면 정말 금상첨화겠지요. 그렇게 아이들과 부모님은 반강제적으로 도서를 신청하게 되고, 이 책들은 일 년 내내 우리 반 아이들의 독서 꾸러미가 돼요. 적어도 일 년에 자신이 신청한 책 20권은 읽게 되는 거예요.
신청하고 나서 빠르면 4월 중에 새 책이 도서실에 들어와요. 가끔은 내가 무슨 책을 신청했나 기억하지 못한 아이들이 저를 찾아와서 물어봐요. 저는 아이들이 신청한 책 목록을 따로 정리해서 갖고 있어서 대답해 줄 수 있어요. 다시 한번 알려주면서 꼭 읽으면 좋겠다고 눈을 보면서 은근히 강조해요. 자신이 신청한 새 책을 받았을 때 아이들은 굉장히 뿌듯해한답니다. 왠지 생각지도 못한, 조금은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은 느낌이에요. 이 책만큼은 반드시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드리라 하는 비장한 다짐도 보여요.
올해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학교 도서실이 한동안 문을 닫았어요. 아이들에게는 전자책을 보는 방법이 안내되었어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새로 만들고 전자책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책을 보는 거예요. 실제로 아이들은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요? 책을 빌리는 수고가 없으니 더 많이 읽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저희 반 아이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고 해요. 눈 앞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한 권 빌려서 읽는 것은 쉽지만 전자책으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해요.
아이들은 책을 만져보고 훑어보면서 이 책 재밌겠다 빌려 가야지 하면서 책을 읽게 돼요. 하지만 전자책은 이런 느낌인지 절대 알 수 없어요. 전자책은 절대 종이책의 느낌을 대신할 수 없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표지를 보고 넘기면서 기대를 하고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무의식적으로 판단해요. 전자책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에요. 더군다나 저학년은 전자책에 접속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 도서관이 더욱 절실해요.
다시 도서실이 문을 열었을 때 아이들보다 제가 더 좋아했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책을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매일 갈 수 없고 주 2일, 하루에 30분씩만 가는데도 동화책을 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진지해요. 이번 코로나로 인해 도서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