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아이들과 다양한 독후 활동을 하는 이유
“깨끗하게 읽고 중고서점에 팔려고 그러지?”
“아냐, 도서관에서 빌려보던 습관 때문에 그래~”
책을 아껴 읽던 저를 보고 친구가 농담 삼아 물어봐요. 그러고 보니 나는 책을 참 깨끗하게 읽는구나. 싶어요. 분명 10번도 더 읽은 책인데 새 책 같거든요. 새 책은 펼칠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들어요. 처음 읽을 때는 몰랐던 것들과 새로운 생각과의 만남이 의외로 재밌답니다.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저를 비교하는 느낌이랄까요. 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있어요.
“선생님 책 사셨어요? 엄청 깨끗해요.” 그날은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교실에 남아있던 한 아이가 다가와서 묻더군요. 제 책이 너무 깨끗해서 궁금했는지, 아니면 저에게 따로 말을 걸고 싶었는지도 모르고요. 책 귀퉁이를 접어서 인상적인 쪽을 표시하거나 책에 직접 연필로 생각나는 내용을 적거나 하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아요. 책을 읽고 수첩에 간단하게 후기를 쓰는 편이에요. 관련된 영화가 있으면 같이 보고 나서 책과 비교도 하고요. 책만 읽고 나서 이런저런 기록을 하는 이유는 책을 조금 더 알고 싶기 때문이에요. 책의 내용이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내 감정을 글로 쓰다 보면 책을 한번 더 읽은 느낌이 나서 좋더라고요. 이런 경험은 아이들에게 독서 지도할 때 실질적인 도움이 돼요. 책을 읽은 후에 무심하게 뭔가를 하기를 바라거든요. 혹시 아이들에게 ‘독후감 쓰세요’라고 말한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이미 독서 후 활동의 중요성은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준비가 되셨어요.
책을 읽었다는 것은 책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해요. 책을 한 권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아무 말도 못 한다면 뭔가 잘못된 거예요. 정말 활자만 읽은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은 후에 줄거리가 아닌 소감을 말하게 해요. 줄거리가 아닌 한 줄 평으로 말하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작업이에요.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작가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읽어야 해요. ‘재밌었다. 슬펐다. 작가가 이상한 것 같다.’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은 원치 않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에서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말하는 훈련을 해요. 예전에 5학년 아이들과 ‘초정리 편지’라는 책을 읽었어요. 우리 반에 한 아이가 누나와 헤어지는 남동생의 슬픈 마음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고 해요. 책을 읽었을 뿐인데, 뭔가가 그 아이의 마음을 건드렸나 봐요. 단순히 글자만 읽어서는 이런 감정까지 느낄 수 없어요.
바로 말하기가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학기 초에 독서기록을 할 수 있는 공책을 따로 준비해요. 한 줄 평을 적는 칸은 크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반드시 채우면 좋겠다고 말해요. 자신이 읽은 책을 꼼꼼히 한 줄로 적다 보면 자신의 생각도 간결하게 정리되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훨씬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답니다. 만약 책을 다 안 읽은 상태에서 한줄평이 너무 쓰고 싶을 때도 있어요. 이럴 땐 여러 번 써도 된다고 이야기해요. 때로는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거든요.
한줄평으로 아이들은 개인의 소감을 말하고, 독서 퀴즈 대회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때도 있어요. 책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이해했는지도 중요하거든요. 이것은 온 책 읽기 도서나 교과서에 수록된 도서일 경우에 해당해요. 아이들이 같은 책을 읽고 문제를 푼다는 것은 굉장히 재밌는 경험이에요. 학생들 간의 독서 격차를 파악할 수 있기도 하거든요. 문제 유형은 단순히 책을 정확히 읽었는지 물어보는 항목도 있지만, 중요 질문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보는 서술식도 있어요. 퀴즈대회라고 하면 왠지 딱딱하고 시험지가 예상되시나요? 독서 골든벨의 느낌으로 자유롭게 문제판에 답을 적고 머리 위로 든답니다. 총 10개 정도의 문제로 구성하고 아이들은 맞춘 문제의 개수만큼 도장을 받게 돼요. 작은 선물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굿즈도 있지만, 청소 일주일 면제권, 급식 우선권 등 아이들에게 환영받는 교실 아이템도 있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평소에 알아두고 상품으로 준비하면 아이들은 상품을 받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책을 자세히 읽게 돼요. 제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상품 없이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거예요. 책의 즐거움을 알려면 책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요. 열심히 읽다 보면 눈에 보이는 상품 대신 책의 즐거움이 더 큰 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한 번은 저희 반 아이가 교실 문고가 아닌 개인 책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고 말했어요. 평소에 책을 안 읽던 아이라 무슨 책인가 궁금했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 형제’라는 책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아기 돼지 삼 형제 동화책이 ‘돼지 버전’이라면 이 책은 ‘늑대 버전’이라고 보면 돼요. 이 책을 왜 추천하고 싶은지 물어보니, 왠지 늑대가 불쌍했대요. 배고픈 늑대 입장에서는 돼지를 잡아먹는 게 당연한 건데, 어느 순간 돼지는 피해자고 늑대만 나쁜 캐릭터가 되어있는데 뭔가 이상했대요. 자기만 이상하게 생각한 건지, 다른 아이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에 대하여 뭔가 이야기하고 나면 아이는 자신이 읽은 책을 한 번 더 정리하고 되새길 수 있어요.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요. 저는 이 과정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책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거든요. 이 책을 추천해도 되겠구나 생각되면, 아이가 친구들에게 책을 소개할 기회를 줘요. 의외로 아이들이 가져오는 책이 꽤 괜찮아요. 학기 초와 비교하면 아이들 추천 도서의 빈도수가 많아지고, 점점 저의 자리가 좁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굉장히 뿌듯해요. 서로 책을 주고받는 훈훈한 광경을 직접 보신다면 아이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지 생각하실 거예요.
아이들이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눌 뿐인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이 다르구나 느껴요. 그러고 그 다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독서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 이 세상이라는 사실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아이들과 책을 읽고, 조금 더 다양한 세상을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