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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by 엔틸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엄마 품에 안겨 횡단보도를 건너온 아이가 다가오는 언니/누나를 보고 반갑다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본 건지 못 본건지 그 언니/누나는 노선표만 슥 확인한 채 이내 발걸음을 옮겼고, 함께 버스에 탄 아이는 내내 시무룩하다가 내릴때쯤엔 잠이 들어 있었다.


이어 아주 느린 걸음의 노인이 정지 신호에 걸린 버스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다행히 신호는 길었고, 힘겹게 버스에 오른 노인 앞에 전에 없던 자리가 생겨났다. 내리는 문 앞에는 전에 없던 사람이 어느새 서 있었다. 운전노동자가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내리는 문이 열리고 다시금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기꺼이 돕는 아무 것도 아닌 이들 (아무개들)의 이야기를 언론에서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무심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스몸비 모드로 제 갈길을 가던 사람도, 어느 때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다. 그들은 대부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길 가다 쓰러진 노인을 몇 번이나 (...아니 이거 이상한 일 아니냐고...) 119에 신고해서 응급조치를 취한 나도 그럴 때마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어린 존재와 늙은 존재, 비인간-사람이 자신을 온전히 영위하게 되는 사건은 이 지옥같은 세계 속에서도 지금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이 지난 겨울 내내 광장을 채웠던 것이고, 지금 독재-엘리트 카르텔의 상상도 못할 전횡의 연속 앞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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