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사막" 현상

게임에 담긴 한국사회 그 문제적 징후에 대하여

by 엔틸드



요즘 붉은사막이라는 한국 게임이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위의 영상 초반 썸네일 외국인의 최악의 최고 게임이라는 모순적 표현은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의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를 떠올리게 한다.


몇년째 게임 스트리머 영상을 화이트 노이즈처럼 자주 켜놓는 입장에서, 그리고 어릴적 한때 미친듯이 (잘 못하지만) 게임을 즐겼던 입장에서, 붉은사막은 보기만 해도 이 게임에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가 얼마나 진하게 스며들어 있는지 느낄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나는 최근 BTS의 광화문 공연 - ? 쇼케이스? 이조차도 제대로 규정되지 못하는 현 상황은 그 퍼포먼스가 방시혁으로부터 시작되어 정부가 난장을 부린 거대한 촌극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들이 내놓은 아리랑에도 별 관심이 없다. 누군가는 아리랑을 또 열심히 한류와 케이팝 산업과 결부시켜 분석하겠지만, 아리랑이 특이점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런데 게이머 사이에서나 화제가 되는 이 붉은사막은 한국사회가 지금까지 주조해낸 사회문화적 아키텍처를 마침내 세계 만방에 널리 드러냈다. 그 어려운(?) 일을 우연치 않게 해낸 것이다. 아리랑보다는 이 게임을 둘러싼 현상을 분석해보는 게 한국사회를 자세히 뜯어보는데 유용할지 모른다.


게임 내에 (전작 검은사막에 나왔던) 무당도 등장하고 호랑이도 등장하고 곳곳에 한국 문화의 상징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게임에 스며든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는 게임의 만듦새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이 게임은 간단히 말해서 말도 안되게 사실적이면서 화려하고 촘촘히 수놓아진 유려한 그래픽 디자인에 디테일한 모션이 살아숨쉬고, 그 이면에는 어디서는 사실성을 강조하고 어디서는 게임의 법칙을 강조하는 들쭉날쭉한 기준이 도사린다. 간단히 말해 사람 또는 사물과 상호작용을 하려 할 때 방향에 관계없이 일정 거리 안에 들어가면 작용 버튼이 활성화되지만, (패치 전의) 이 게임은 무조건 바로 앞에서 정면을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비스라는 이세계적 공간에서 퍼즐을 풀 때, 얼음을 녹이기 위해 횃불을 사용해도 얼음은 꿈쩍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상호작용의 어려움은 이 게임 인터페이스와 UI 전반에 서려있다. 유저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단 다 때려박은 티가 역력해서, 이 키와 저 키가 꼬여있고 이 버튼을 누르면 원치않은 엉뚱한 기술이 나가기도 한다. 기존의 유사 장르 게임만 잘 참고했어도 절대 있을 수 없는 문제가 가득해서, 보통은 이 말도 안되는 조작감과 불친절한 화면구성때문에 게임을 접게 된다.




한국에는 온갖 기술과 자본과 인력을 때려붓고 갈아넣어서 세계 최고의 아이템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정신이 이탈해버릴 것만 같은) 하이퀄리티 지향의 세계가 있다. 그걸 반도체라고, 손흥민 김연아 봉준호라고, 또 BTS라고 부를 수 있겠다. 붉은사막으로 치면 말도 안되는 영상미와 꼼꼼하게 배치된 오브제들이다.


그와 동시에 로우퀄리티로 방치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영역은 철저히 그렇게 되도록 의도적으로 관리한다. 이 때의 마인드는 철저하게 사장의 마인드로, 경영자의 마인드로, 노조를 탄압하고 돌봄노동자를 저임금과 불안정고용에 시달리게 하며 소상공인과 노동자를 서로 싸우게 만든다. 붉은사막으로 치면 인터페이스의 불편함과 불친절한 UI의 고통을 유저 개개인이 견디도록 전가하는 태도다.


여기에 더해, 어비스라고 불리는 퍼즐풀이의 세계는 마치 한국의 수능제도를 보는 것 같다. 내가 켜놓았던 게임스트리머는 어비스의 퍼즐을 풀다가 그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 장르의 다른 게임은 여러 가지 방법과 여러가지 정답이 있어서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시도를 하면 해결이 되는데, 이 게임은 정답이 하나이고 몇 가지의 방법이 있지만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다른 시도는 전혀 통하지 않게 막아놓았다." 수능에서 킬러문항이니 정답논란이니 하는 일들이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한국 교육의 현실이 게임에도 적나라하게 적용된 것이다.




이 게임이 얼마나 외국유저를 신경쓰며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상처럼 모순적이면서 양가적인 감정의 진폭을 흥미의 요인으로 삼은 이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이는 한국사회를 풍자한 봉준호와 박찬욱의 영화가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 컨텐츠의 내용이, 본인들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붉은사막 또한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 게임은 중세와 판타지가 섞여있어, 시대조차 거리가 있다. 한국사회의 모순의 핵심이 작동되어 만들어진 이 게임의 아키텍쳐가 강하게 외국 게이머를 자극해도, 이게 최악의 최고 게임으로 사람을 정신못차리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역시 외국에서 인기가 있는 불닭볶음면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 게임은 초창기 몇 주 동안 게임 평가에 있어서 여타 유럽이나 미주지역 유저들에게는 "긍정적" 이상의 평가를, 아시아 특히 한중일 유저에게는 "부정적-복합적" 평가를 받았다. 난 이 차이가 더더욱, 이 게임이 게임 내용 그 자체와 게임을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 얼마나 한국적 마인드의 영향을 깊게 받았는지 드러내는 표지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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