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안쓰기 시작한 때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뭔가를 다른 플랫폼에 비해 아주아주 싸게 팔 때부터, 그리고 그때 간간이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트위터같은 곳에서나 조금씩 문제제기가 있었을 때부터, 결정적으로 로켓배송인지 뭔지를 시작했을 때. 로켓배송으로 주문해보니 빨리 왔다. 근데 반대급부로 노동자들이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맞아? 다른 플랫폼 써도 되잖아. 도긴개긴이라지만 그래도 쿠팡은 아니지 않아? 싶었다. 탈퇴했다. 그래선지 탈퇴한지 5년이 지난 사람에게도 왔다는 문자가 나에게는 오지 않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같은 빌라 사람들은 요즘 쿠팡 주문을 얼마나 하나 집 앞에 놓인 박스를 살펴봤다. 정기배송 박스부터 시작해서 눈에 띄게 줄었다. 택배는 그렇다쳐도 배달플랫폼을 이용할때면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문 앞에 음식을 놓고 가면 문만 살짝 열리고 음식을 쏙 가져간다. 그 광경을 실제로 제 3자 입장에서 보고 있으면 - 혹은 상상만 해봐도 - 우리가 진짜 올드보이가 됐구나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쿠팡이츠를 이용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배민을 벗어나는 건 그보다는 조금 더 힘들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떤 패턴에 따라 배달음식을 연속으로 먹을 때가 있다. 입점 수, 혜택 등 다른 먹거리 플랫폼에 댈 게 아니니,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래도 줄였다. 배민은 탈퇴했고, 가끔 요기요를 이용한다. 그마저도 가능하면 포장주문을 한다. 포장주문도 쓰레기가 발생하니까 최소한으로 한다. 뭐든 가능한한 집 근처 가게를 이용한다. 포장용기도 줄여보려고 에코백을 들고다닌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배달노동에 얼마나 의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음식뿐 아니라 각종 물건도 매장에서 직접 사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다. 아이들이 물건을 다이소에서 만든다고 믿어도 이상할 게 없다. 내가 어릴 때는 그래도 쌀 하면 쌀집 아저씨나 농부님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런 상상마저도 점점 생략되는 시대다.
쿠팡은 탈퇴가 최선이다. 그래서 쿠팡이 어려워지면 노동자도 같이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 그런 헛소리는 경영진과 내란적 언론이 늘 써먹는 클리셰다. 아직도 그딴 소리 믿는 흑우 읎제? 저것들은 늘 원인과 결과를 뒤섞는다. 지들이 살인마 경영을 해놓고 그로 인한 문제는 왜 피해자에게 덮어씌우는지? 억울하면 변화하시든가. 쫄리면 나가시든가. 어디 그 잘난 170개국 가서 계속 장사해라.
어쩔 수 없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쿠팡을 이용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탓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온라인에 서식하며 남의 인생을 지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한량들이다. 다만 이런 저런 우리의 일상 속 움직임들이 소비자의 권리와 책무라는 세련되고 중립적인 냄새 풍기는 가짜 정체성으로 퉁쳐지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비자이기 이전에, 아니 소비자가 아니라 노동자(생산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그 생산물이 가치형태에 귀속되지만, 어쨌든 우리 노동자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들을 만드는 주체다. 그렇다면 쿠팡 배달노동자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얽혀있고, 스며들어 있다. 그들의 죽음을 막아야 우리의 죽음도 막을 수 있다.
일전에 <자본이 만들어주는 습관>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자본주의 안에서 우리에게는 많은 정체성이, 많은 패턴과 습관이 수동적으로 주어진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는 자본이 끌고다니는 흐름에 의해 조직되고 패턴화된 회로도 안에서의 선택지다. 거기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그런 선택지를 의심하고, 나아가 객관식 문제의 정답 맞히기를 거부할 때 시작된다. 시험지를 찢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쨌든 각자가 비집고 나올 자본주의적 일상의 풍경은 조금씩 다를테니 정답은 없다. 다만 비집고 나와야 한다는 절박한 방향성만큼은 이미 차고 넘친다. 쿠팡 탈퇴가 어렵다면 다른 물건은 최대한 직접 매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고, 온라인 주문을 하더라도 더 괜찮은 곳을 검색해볼 수 있다. 약간의 수고를 더 들여서, 집에 공간이 있다면 작은 텃밭을 가꿔볼 수도 있다. 먹고 마시며 느끼는 일상이 내 피부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본주의적 패턴에 얼큰하게 절여졌는지 깨닫게 되는 효과는 덤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깨달음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