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의 신경전
Good morning!이라고 외치며 이불을 박차고 나와 늘어지게 기지개 켜고 일어난 아내에게 돌아오는 내 남편의 인사는 늘 한결같이 웅얼 웅얼거리는 '깔리 메라'!
이쯤 되면 오기가 나서라도 '잘 잤어?' 혹은 최소한 '좋은 아침'이라도 들어보고 싶어 진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영어로 인사를 했구나! 이런!!
다시 활기차게 인사한다.
‘여보, 좋은 아침!".
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인사는 '깔리 메라'이다.
그래, 난 아침형 인간이고 당신은 올빼미이니 꼭두새벽이 ‘굿 모닝' 일리는 없겠지. 용서해줄게!
© LNLNLN @pixababy
이렇게 아침 인사 하나도 참 다른 우리 둘은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 밀라노의 한 학교에서 만나 짧은 연애 후에 참으로 긴긴 세월을 부부로 살아오고 있다. 2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의 풍파를 함께 맞으며 사랑으로 살던 신혼과 아이들을 키우는 연대감의 시간을 넘어 이제는 그야말로 전우애로 함께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늘 싸움거리는 바로 이 언어 문제. 과히 언어 문제로 싸움이 시작되고 끝난다고 해도 될 듯하다.
결혼 첫 9년은 일 하느라 바빠 서로의 언어보다는 의사소통이 가장 자유로운 영어로 소통하며 살았지만, 그 후 아이 둘이 생기면서 우리는 그야말로 언어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되었다.
두 아이에게 끈질기게, 가끔은 참 치사하다 싶을 정도로 매달려가며 각자의 언어를 가르치려고 노력했지만 현재 두 아이는 모국어인 영어 외에 각자의 학교에서 외국어로 선택한 스페인어와 불어로만 이야기할 뿐 절대 한국어와 그리스어로 이야기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국에 가서 외가댁 식구들의 한국어를 눈치로 '때려 맞추고' 가끔은 한국어로 간단하게 '네', '아니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도 대답해주는 것을 보면 고슴도치 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흐뭇하게 눈가에 주름 좍좍 지어가며 웃게 된다.
‘거 봐! 그리스어보다 한국어가 쉽다니깐' 하는 생각으로 그 장면들을 영상으로 찍어 남편에게 자랑하기 바쁘고.
© gwon @pixababy
나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사랑한다.
지금은 미국의 공립 중학교에서 영어로 밥벌이하며 사는 입장이지만, 한때 나의 꿈은 언어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바빌론 탑 덕분에 (혹은 탓에)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한국어와 영어 외에도 다른 언어를 좀 해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역사도 되짚어 보고, 무엇보다 우리들의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변화하는지, 그게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사실, 여전히 나는 언어학자가 되기를 꿈꾼다. 백세 시대라는데, 아직 전반전도 안 마친 나이이니 인생 후반전을 위해 언어학자의 꿈은 그대로 꿔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모처럼 둘러앉은 아침 밥상에서 남편과 아이들이 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Can you please say 'ευχαριστώ(Thank you, 에프카리스토) and 'σε παρακαλώ(please, 쎄 빠라깔로)?"
"No thanks, dad!"
속으로 남편에게 외친다! 아, 쌤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