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외교와 외교정책 #17
2016년이 되자 미국에 대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8년 동안 미국을 나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게 이끈 오바마 행정부가 물러날 때가 된 것이다. 대선의 결과를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확고한 지지층과 반대파를 모두 가진 오바마와 민주당이었기에 2016년 대선의 승자도 민주당이 된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한편 공화당은 보수 지지층을 강력히 규합하고 있었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2008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며 버몬트 주에서 상원 의원을 지내던 버니 샌더스 역시 경선에 뛰어들었다. 한편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부통령 조 바이든은 아들 보 바이든을 먼저 떠나보내는 참척의 고통 앞에 경선 출마를 포기했다. 경선 끝에 웃은 이는 힐러리였다. 40%대 지지율을 확보하며 돌풍을 일으킨 샌더스였지만 막판에 힐러리에게 크게 밀리며 경선 포기를 선언했고 힐러리가 민주당의 후보로 추대되었다.
한편 공화당의 경선에는 무려 16명이나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선 초반 경선 승리가 유력하다고 평가받은 이른바 Big 3는 플로리다 주 주지사를 지낸 조지 W. 부시의 동생 젭 부시와 위스콘신 주에서 세 번이나 주지사를 지낸 스콧 워커, 공화당판 오바마라는 별명을 가진 마르코 루비오였다. 그러나 경선이 진행되며 스콧 워커가 이탈하고 다른 후보들이 세를 불리면서 판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2016년에 들어서 기존의 Big 3에 마르코 루비오만 남은 채 강경한 보수주의자 테드 크루즈와 억만장자 사업가이자 숱한 구설수를 몰고 다니는 셀럽(celeb) 도널드 트럼프가 새롭게 합류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상승세가 무서웠는데, 2015년 7월부터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며 물음표를 점차 느낌표로 바꿔가고 있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루비오를 띄우고자 했다.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보수색이 짙지 않아 중도층이나 민주당 내 힐러리 반대파를 어느 정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젊은 나이와 유색인종이라는 점 등이 2008년 대선 당시 인기몰이를 했던 오바마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의 미국 대선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기현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당선 가능성은커녕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조차 0에 수렴할 것이라며 비웃음을 사던 트럼프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사업가 시절부터 구설수를 몰고 다녔고, 공화당 경선에 참여하는 와중에도 새로운 논란을 연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그만큼 핵심 지지층이 탄탄했다는 것인데 이들은 인물의 됨됨이와 도덕성을 중시하는 그동안의 유권자들과 좀 달랐다. 오히려 트럼프가 속된 말로 막 나갈수록 열광했다. 경선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트럼프는 홀로 1천 명이 넘는 대의원을 쓸어담으며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공화당의 후보로 선출되었다. 민주당과 민주당의 지지자들뿐 아니라 공화당 지도부와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힐러리는 러닝 메이트로 버지니아 주 주지사와 상원 의원을 지낸 팀 케인을 지명했다. 그는 오바마의 심복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에 많은 영향을 준 실세였다. 중도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고 불법 이민자들을 위한 봉사단체를 세워 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중남미에 선교 활동을 다니는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트럼프는 러닝 메이트로 인디애나 주 주지사를 지내던 마이크 펜스를 지명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동성애에 격렬히 반대하는 강경한 보수주의자였다. 주지사로 재임하며 서비스업 종사자가 종교를 근거로 고객을 차별대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등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으나 트럼프는 그를 당당히 지명했다. 부통령 후보들마저 많은 관심을 받는 가운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모든 언론에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없다고 진단했다. 힐러리가 득표율에서도, 선거인단 싸움에서도 넉넉히 승리할 것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힐러리와 민주당은 트럼프를 얕잡아 보고 안일한 선거전략을 펼쳤다. 텃밭을 다지는 데 치중하느라 다른 지역을 챙기지 못했다. 게다가 힐러리는 국무장관 시절 국가의 기밀이 담긴 내용을 공적인 계정이 아닌 개인 계정을 사용해 주고 받았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는 트럼프와 보수주의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힐러리는 개인 계정으로 주고받은 이메일 3만 여 건을 의회에 제출하며 자신을 향한 모든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조사 과정에서 1만 5천 건에 달하는 이메일을 숨기고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곤혹을 치렀다. 트럼프는 소외받는 몰락한 중공업 지대,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러스트 벨트의 몰락은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체결하면서 불이 붙었고, 세계경제위기가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는 클린턴과 오바마, 즉 민주당 행정부에서 러스트 벨트를 망가뜨렸다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여기에 막말 공세를 이어가며 기존의 기형적인 지지층의 중도이탈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묘한 분위기 속에 선거가 치러졌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많은 언론이 예상했던 것처럼 득표율은 힐러리가 앞섰다. 힐러리는 48.2%를 득표했고 트럼프는 46.1%를 득표했다. 큰 격차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작은 격차도 아니었다. 그러나 확보한 선거인단의 수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힐러리는 227명을, 트럼프는 304명을 확보해 결국 트럼프가 대선의 승리자가 되었다. 원래 힐러리가 232명의 선거인단을, 트럼프가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태였으나 힐러리 측에서 무려 다섯 명, 트럼프 측에서 두 명이나 반란표로 이탈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트럼프에 대한 지지세가 높았던 러스트 벨트를 중심으로 재검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다. 대통령 당선인은 트럼프였다. 미국의 재계와 예술계, 그리고 시민단체와 소수인종 시민들, 국제사회는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모든 이가 트럼프 행정부에 커다란 물음표를 띄웠다.
1. 중국을 잡아라
소련이 무너진 자리에 중국이 나타났다. 중국의 성장을 억제할 기회를 놓친 미국의 대통령들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요한 파트너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조금 달랐다. 중국에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818종, 미화 약 32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보복관세를 매긴 것을 시작으로 무역 전쟁의 포문을 열어젖히는가 하면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기업들을 겨냥한 제재도 자주 내놓았는데, 대표적으로 이란에 내려진 제재를 위반하고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중국의 3대 통신장비 제조사 중 한 곳인 ZTE 그룹에 약 9억 달러의 벌금을 물린 사례와 기밀을 수집해 중국 정부에 제공하는 등 미국의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행동을 반복했다는 명목으로 화웨이에서 생산한 장비의 미국 국내 사용을 전면 금지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사실 경제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의 행정부들도 늘 중국과 갈등을 빚어왔다. 트럼프의 대응이 다소 성급하고 과격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의 행정부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중국과의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행정부들은 중국과의 정치적인 갈등을 되도록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대만 총통의 입국을 막는다든지, 하나의 중국 담론을 지지하고 중국의 인권 문제 등을 내정 문제로 치부한다든지, 저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을 향해 양안 문제와 인권 문제 등은 중국의 레드 라인(red line)이라고 말해왔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서방 국가에서 중국과 정치적인 갈등을 빚으려고 하는 순간 참지 않겠다는 협박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핵전쟁의 위협이 늘 도사리던 냉전 시대를 지나 평화를 맞은 서방이 발톱을 감춘 중국을 굳이 자극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남중국해의 영유권 문제와 양안 관계에 목소리를 냈다. 남중국해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바다로, 쉽게 말해 중국의 남쪽에 위치하면서 베트남과 필리핀 사이에 끼어있는 바다를 일컫는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바다를 지나야 하므로 교통의 요충지에 해당한다. 나아가 다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어 많은 국가에서 개발에 눈독을 들이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남중국해 인근에 모여 있고 섬들도 많아 영유권이 어디에 속하는지 애매한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남중국해의 영유권이 중국에 속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에서 편찬하는 중국 지도에 남중국해를 그려넣는 등 일방주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연히 남중국해 인근의 국가들은 이에 반발해 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주변국의 불만을 힘으로 찍어누르기 위해 남중국해에 해군 함대를 배치해 자유로운 항행을 방해하기도 하는데, 트럼프는 이를 꼬집었다. 남중국해의 자유로운 항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쏘아붙인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대만에 무기를 수출하고 대만을 지원하기 위한 비공식적인 방법을 찾는 등 중국을 배제하고 대만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또한 홍콩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홍콩인권법을 제정했다. 홍콩은 중국의 영토이지만 오랫동안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발전한 탓에 계획경제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중국 본토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르다. 이는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마카오도 마찬가지이다. 중국 정부는 홍콩과 마카오가 벌어다주는 경제적인 이익을 흡수하기 위해 일국양제를 도입했다. 홍콩과 마카오는 원칙적으로 중국에 속한 지방이지만 자치권을 인정해 공산당의 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따라서 홍콩에는 독자적인 행정부와 입법부가 있고 제한적이지만 독자적인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이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중국 정부는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홍콩의 행정부와 입법부 선거, 나아가 사법부에 간섭했고 홍콩 시민들이 반발하며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일국양제를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홍콩 행정부의 힘을 빌려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민주화 운동가가 불법적으로 감금되고 고문을 받기도 했으며 실종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공개적으로 규탄하며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가를 감금하고 고문 또는 살해한 자를 미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홍콩인권법을 제정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이 심해져 홍콩의 자치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다시 말해 일국양제라는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홍콩에 부여한 특별경제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조항도 설치했다. 특별경제지위란 홍콩에서 생산한 상품을 미국이 수입할 때 관세를 적용하지 않는 혜택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 정부가 홍콩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을 제한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반발을 샀다. 홍콩인권법 역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례없는 강도로 중국을 견제했던 데에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트럼프 자신의 직업적 가치관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유명인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사업을 펼치는 기업가이자 백만장자였다. 따라서 그의 삶에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철칙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당시 중국을 상대로 엄청나게 손해 보는 장사를 펼치고 있었다. 미국은 하나뿐인 초강대국답게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와 무역을 벌인다.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기도 하지만 반대급부로 적자 또한 어마어마하게 쌓인다. 트럼프가 취임할 당시 미국이 무역에서 보는 적자의 규모는 약 5천억 달러 상당이었는데, 이 중 3천 5백억 달러가 중국과의 무역으로부터 발생했다. 기업가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만 해소해도 미국의 경제가 상당히 나아질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기업가적 관점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2. 종잡을 수 없는 동맹 외교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을 강화해 경쟁자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는 동맹 외교를 고수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댜오) 등의 지역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도 적자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내에 공장을 세워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 기여할 것과 환율과 관세의 조정, 그리고 수입의 확대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미국이 떠안는 적자를 해소할 것을 은근히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면서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아시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주목할 만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인도-태평양 구상(Indo-Pacific Initiative)일 것이다. 2017년 11월에 발표된 이 구상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제시된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 전략을 대체하는 것으로 태평양부터 인도양까지 넓은 영역을 자유롭고 개방되게 유지하며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동맹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한 다자협력체계를 구축할 것을 골자로 한다. 기존에 아시아-태평양(Asia-Pacific) 개념을 대체하는 용어로 인도-태평양을 제시한 점이 독특하다. 여기에는 인도가 가지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최근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많은 자원 덕분에 잠재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국가이다. 인도가 가진 잠재력은 과거부터 주목을 받아 왔지만, 오늘날 인도가 우주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인도 출신의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잠재력이 만개할 순간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외교 측면에서 친중도, 친미도 아닌 중립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고 있어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많이 교류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도 경제, 기술과 문화적인 부분에서 많은 교류를 펼치고 있는데 다만 중국의 존재를 의식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등 의사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렇게 철저히 국익을 우선하며 중립을 지키는 인도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 중국에 대한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자 했다. 마치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두어 미국을 압박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구상은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그 위상이 더 높아지고 내용이 더 구체적으로 보완되었다. 이 구상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를 일본, 호주를 비롯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4개국(Quad)으로 대우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테러리즘의 근절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전 세계는 ISIS의 위협으로 말미암은 두려움 속에 갇혀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ISIS를 축출하고 중동 지역에 평화를 선사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한 국가들과 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노력도 보였는데 오바마 행정부 시기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도록 방치해 혼란을 키운 것과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민간인 1,300여 명을 학살한 사실을 묵인한 것에 대한 동맹국들의 비판을 수용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또, 오랜 혼란으로 인해 시리아에서 많은 난민이 발생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시리아에 안전지대를 만들어 난민을 수용하고 시리아의 정치체제를 연방제로 재편해 내전과 같은 혼란한 상황이 다시 반복될 수 없도록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제안은 미국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미국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트럼프는 난민과 이민자를 수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었다. 난민과 이민자들이 미국인이 정당히 얻어야 하는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정당히 받아야 하는 경제적인 이익을 가로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난민과 이민자 정책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여 경기 회복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은 많은 미국 시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자 트럼프는 실제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병력을 투입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시리아의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도, 겉으로는 안전지대 설치나 연방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난민이 미국 사회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전지대 설치와 같은 기존의 계획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유럽의 동맹국들에게 난민 수용의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이 많은 난민을 수용했던 만큼 유럽의 동맹국들도 성의를 보이라는 요구였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 수용에 난색을 표하자 트럼프는 본격적으로 유럽을 공격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EU에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독일을 겨냥해 환율 조작국, 무역적자 유발국 등의 멸칭을 써가며 공격의 수위를 높여 나갔다. 독일 등 서유럽의 주요 동맹국들은 일제히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으나 트럼프는 개의치 않았다. 난민 수용과 경제 정책 등 하나부터 열까지 유럽과 미국은 갈등을 벌였고 사이는 틀어졌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ISIS를 축출하는 데에 힘을 합치기로 하는 등 친러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해 대테러 전략을 함께 펼치는 것 외에 별다른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여담으로 훗날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의 정보당국이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인 공작 활동을 펼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친러 정책에 나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3. 오바마 지우기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흔적을 지우는 데에 몰두했다. 먼저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이란은 미국 등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비핵화 전략을 수용하는 대신 많은 원조를 제공받는 길을 택했다. 이란은 핵실험을 할 수 없는 소량의 우라늄 등 핵물질을 제외한 나머지 핵물질을 모두 해외로 반출하고 핵연료 처리 시설 등의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자 미국은 이란에 내린 제재를 해제하고 원자력 발전 기술을 제공하는 등 이란을 지원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의 핵합의가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를 이루어냈다고 보기 어려운 졸속 합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란이 핵개발을 완전히 중단했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이란에 내렸던 제재를 다시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반발한 이란은 오늘날까지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협정에서도 탈퇴했다. 파리협정이 미국에 과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삶과 에너지 산업을 위해서 파리협정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동시에 NDC 방안(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6~28% 수준까지 감축하는 방안)의 추진을 중단하고 녹색기후기금(GCF)에 공여하기로 한 공여금의 잔액인 20억 달러의 지급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트럼프가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과 협력해 추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TPP는 오바마 행정부 시기 구체화된 것이기는 하나 그 아이디어 자체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집권한 시기에 나온 것이기에 트럼프가 이에 반발할 여지는 적어 보였으나 취임한 지 단 이틀 만에 탈퇴를 승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TPP는 전체 회원국 GDP의 85% 이상을 대표하는 6개국이 모두 비준해야만 출범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비준 파기로 TPP는 무산되고 말았다. 일본은 이에 반발하면서 미국의 재가입을 전제로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출범시켰다.
#4. 정리하며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 세계경제위기에서 탈출하며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미국 경제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 실업률 등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개선되며 호황을 맞았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내놓은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가진 힘을 활용해 주변국의 반발을 찍어눌렀고 무역 적자의 원흉이던 중국과는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으며 상황을 바꾸어 나갔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일각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기주의를 내세워 동맹국을 공격하는 태도와 미국 편과 미국 편이 아닌 곳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태도는 세계를 둘로 조각냈고 미중 경쟁을 심화시켰다. 트럼프는 시민사회가 신중하게 담론을 형성해 나가야 하는 젠더, 인종 등의 이슈에 성급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에게 반발하는 이들을 잘못된 사람들로 몰아가면서 사회 분열을 조장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백신의 신뢰성에 끊임 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음모론을 앞장서 퍼뜨리면서 반지성주의의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문제적 남자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와 시민사회가 받은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