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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폭탄과 유도탄들 Jun 22. 2023

공공외교의 대두와 개념 간 비교

국제정치학 #9

플레처 스쿨의 학장이었던 에드먼드 걸리온은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타국의 외교정책 입안 및 실행과정에 해당 외국 국민들이 관여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일

공공외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정의한 것 모두 그가 최초이다. 그러나 당시 공공외교는 단순히 프로파간다(propaganda)와 동의어로 취급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1997년, 미국 국무부에서 직접 공공외교를 타국과의 의사소통과정(understanding, informing and influencing)을 통해 국익을 증진하는 노력으로 정의하면서 쓰임도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공공외교가 남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공공외교는 남을 챙기되 궁극적으로 이득을 보는 건 우리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공외교는 프로파간다의 동의어로 쓰이며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 외교계에서 왜 미국이 증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며 공공외교의 가치와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조지 W. 부시(일명 '아들 부시') 행정부는 외교정책을 수정하는 대신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더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딕 체니(당시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당시 국방장관) 등 현실주의와 신보수주의에 심취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온건책을 몰랐다. (여담으로, 당시 외교 수장이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온건파에 속했고 무분별한 확전을 반대했다. 그러나 부시의 총애를 받는 강경파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이후 그는 사퇴했고,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뒤를 이었다. 그녀는 강경파에 속했다.)


미국은 그 유명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과 무리하게 전쟁을 벌였다. 특히 이라크 전쟁의 경우 '이라크 정부가 비밀리에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여 운용하고 있으니 이를 저지해 국제사회의 평화를 지킨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으나, 전쟁이 끝나고 보니 미국 행정부와 정보당국이 이라크 출신 망명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무고한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빈축을 샀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미국의 전략 목표는 테러리즘의 뿌리를 뽑고 점령지에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테러 행위는 오히려 더 늘어났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권이 들어서 있다. 전략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패배한 것과 다름이 없기에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회 곳곳에서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이때 공공외교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미국에서 공공외교가 대두하자 국제사회도 공공외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공공외교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다.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외교정책을 결정하고 수립해 이행할 때 국민 여론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과거처럼 국가가 비밀리에, 독단적으로 외교정책을 결정해 이행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한 국가가 펼치는 외교정책의 흥망을 결정하는 요인에 자국민의 지지가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자국민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해서 바로 좋은 외교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 국민의 지지 또한 확보해야 한다. 외교정책이 실제로 펼쳐지는 무대는 외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외교정책을 대내외에 홍보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에는 홍보와 설명이 반드시 직업 외교관에 의해 외국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 또한 옛말이 되었다. 온라인 공간을 활용한 홍보와 설명, 그리고 비대면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직업 외교관이 아니더라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외교정책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 오늘날의 외교현장에서 공공외교는 마스터 키(Master Key)나 다름없다.


공공외교를 수행할 때 활용하게 되는 핵심적인 외교 자산은 연성권력(Soft Power)이다. 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질수록 물리적인 충돌의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논리가 대두하며 많은 국가가 호감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연성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연성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공외교를 잘 실천해야 한다. 공공외교와 연성권력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한편 공공외교는 대민업무, 프로파간다, 단순 홍보 업무 등과 많이 비교되고 또한 혼동된다. 프로파간다부터 살펴보자. 우리말로 흔히 '선전' 또는 '선동'으로 옮겨지는 프로파간다는 양차 대전 당시 전쟁에 뛰어든 국가들이 참전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적국의 악마성을 부각하기 위해 펼쳤던 대대적인 선동 행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공공외교와 프로파간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거짓말의 허용 여부이다. 프로파간다에서는 흔히 흑색선전(matador)이라고 하는 거짓말이 허용된다. 그러나 공공외교에서는 진실만이 허용된다. 공공외교도 신뢰가 생명인 외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단순 홍보 업무란 기업 등에서 판매 증진을 목표로 사람, 기업, 기관 등과 교류하며 서로 이해하고 호감을 쌓는 것을 의미하며 흔히 '홍보(public relations)'로 줄여 부른다. 공공외교와 홍보의 차이점으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공공외교는 재화의 판매 증진에 흥미가 없다. 공공외교는 국익을 위해 펼치는 활동이자 고도로 정치적인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재화를 팔아 경제적 이익을 얻겠다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다만 국가를 하나의 재화로 취급할 경우 홍보와 공공외교를 비슷하게 볼 여지는 있다.) 또한 실패했을 경우 대처 양상이 크게 다르다. 기업 등이 펼치는 홍보의 경우 실패할 때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등 문제상황에 직면하게 되지만, 다른 방법을 통해 충분히 문제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거짓된 정보를 정정한다든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홍보함으로써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 등이 앞서 말한 다른 방법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공외교의 경우 실패할 때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된다. 물론 국가 또한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입 대비 산출, 즉 기울인 노력에 비해 브랜드 이미지가 회복될 가능성이나 회복되는 정도가 미미하다.


이제 대민업무(public affairs)를 살펴보자. 대민업무란 정부의 외교 목표, 정책, 활동 등을 대중, 언론, 기타 기관 등에 홍보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공공외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홍보와 설명의 목표(target)에 있다. 대민업무는 목표가 국내의 대중이지만 공공외교는 외국의 대중이다. 따라서 접근 방식이나 사용하는 툴(tool)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전문가가 대민업무와 공공외교를 반드시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2016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공외교법을 살펴보면 제2조(정의)에서 공공외교를

국가가 직접 또는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과 협력하여 문화, 지식, 정책 등을 통하여 대한민국에 대한 외국 국민들의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는 외교활동

으로 정의하면서도 같은 법 제4조(국가의 책무) 제3항과 제4항에서 대민업무의 중요성과 이러한 대민업무가 공공외교에서 배제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공공외교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과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등 필요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국가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의 참여를 증진하기 위하여 교육 및 홍보 등 필요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따라서 대민업무는 공공외교가 아니라는 단순한 접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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