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라, 참아라
문득 그런 날이 있다. 나만 멈춰있다는 생각에 잠식되어 모든 것을 오히려 더 멈춰버리는 역설적인 날. 그동안 내 자신에 확신을 갖고 달리고 있는데 이유나 근거 없이 비난을 받을 때면, 맥이 탁 풀리면서 기분이 매우 언짢아 다 때려치워버리고 싶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인간들을 수차례 겪어오면서 이제는 상처받기 보다는 보란듯이 증명하고 싶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욱하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결국 참지 않고 그들의 비논리 하나하나를 요목조목 따진다.
내 어릴적 어른들의 어리석은 가르침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특히 ㅈ같은 건 겸손해야한다는 말과 참는 게 이기는거라는 말이다. 겸손떨며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면 남들이 더 대단하게 볼까? 내 결론은 ’아니. 전혀.’ 더 만만하게 본다. 내가 잘하는 것을 내세우고 알리는게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룬 것들을 ‘아니예요 아직 잘 못해요’라고 말하라고? 이렇게 열심히 해왔고 좋은 결과를 냈는데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말을 하라는게 앞뒤가 맞는 건지.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해와서 이렇게 됐습니다라고 말해봤자 자기 자랑으로 치부되는 이상한 곳이다. 한사람의 노력을 우습게 보는 거다.
그리고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자기가 부당한 대우받고 피해를 받는데도 참는 건 그냥 바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공격성’을 가질 수 있어야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피해받은 것에대해 정당히 화를 내는 사람과 그냥 앞뒤 없이 화내는 사람의 차이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권리를 침해당하고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 때, 참는 게 아니라 지적하고 화를 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속이 썩어들어간다.
나는 너무 오랜 기간 겸손과 참는 것이 미덕이라 세뇌된 채 살아왔다. 그리고 속에 병이 나고 죽어버릴까 충동적인 고민하며 괴로워진 건 결국 나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없으면 남도 없다. 내가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말하고 나에게 피해주는 자가 있다면 한마디 하는게 나를 지키는 일이다. 이를 계속 상기하다보면 맥 풀리고 다 멈췄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왔다. 나에게 무례한 인간들에게 나만 계속 호의를 베풀 필요 없다. 인간 관계는 서로 어느정도 비등하게 주고받지 않으면 어차피 오래 지속될 수가 없고 어떤 마무리든 곧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