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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해랑 Oct 24. 2024

이제는 가벼워지고 싶다

오운완, 그리고 오글완





내가 무겁다고 버겁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다. 인생의 짐이라고 생각되는 것, 내려놓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인생이라는 단어와 내려놓는다는 말이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만 이어져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했다. 그 때 내 머릿 속에 떠오른 나의 시급한 짐. 그래, 이거다. 오늘의 글은 이렇게 완성하련다. 오늘도 나답게, 나의 '글놀이터'는 나 처럼.







아, 오늘도 실패다.


분명히 나의 오늘 저녁은 6시 전에 냉장고에서 나를 기다리는 저 두부 반 모가 끝이었는데. 저 두부는 며칠 째 나만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도 나는 애써 너의 시선을 회피하고 말았구나. 그러고보니 신발장에도 몇 달째 내가 들고 나가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내 운동화가 한 켤레 있었다. 


하아, 난 틀렸어.









가벼워지고 싶다.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가 하나 줄어들면 좋겠다. 그럼 내 몸이 참 가벼워지겠지? 지금 현재의 내 인생, 내 삶에서 필요치 않은 것, 없었으면 좋겠는 것. 굳이 내 몸에 내 건강에 필요치 않은 것. 바로 나에게 악착같이 붙어있는 나의 살덩어리, 체지방과 내장지방. 이것이 '나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귀찮은 물건. 좀 치워버리고 싶은데, 이게 이게 그렇게 한 번 붙으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젊을 때는 좀만 맘 먹으면 바로 떼어내 버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정말 안된다. 


사실 어떻게든 떼어내고자 하면 떼어낼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시행착오를 겪어본 사람들이 알려주는 노하우들은 참으로 많다. 책으로도 유튜브로도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으로도. 그런데 나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 아이들 키우느라 여유가 없다 등의 많은 핑계들을 늘어놓지만 문제는 사실 딱 하나다. 내가 문제다. 의.지.박.약. 다른 일에서는 내가 정해놓은 원칙을 딱 지키려고 노력하고 흔들리는 법도 크게 없는데, 왜 식탁 앞에서의 나는 그렇게 약할까? 아는 맛이 제일 무섭지. 남편의 저녁메뉴 제안에는 항상 눈이 번쩍 귀가 솔깃해 두부는 어느 새 우리집 냉장고에 없는 투명한 식재료가 되어버리고, 우리집 시계는 먹는 내내 6시에서 멈추어버린다. 그렇게 6시에서 8시로 갑자기 시간이 순간이동해 버리는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는 파란 맥주캔을 보며 나는 좌절한다. 아, 오늘도 망했다.


몸의 짐 덩어리. 그리고 여기에 더한 나의 마음의 짐도 못지 않게 버겁다. '나도 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하는데 지금 먹는 내가 행복해. 걱정마.' 그리고 얼마 뒤, '이것봐, 다이어트 성공했잖아.' 라고 딱 멋지게 보여주고 싶은데, 늘 앞의 대사만 되풀이 할 뿐이라 매우 민망하다. 다이어트라는 영역에서 나는 늘 마음이 불편하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겨 왔지만 내 마음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니 나는 이것을 너무 해내고 싶어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웃어넘긴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길었나보다. 지금의 나에게는 다이어트가 너무 버거운 영역이 되어버렸다. 


이제라도 애써 외면하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으니 된 건가. 나 다이어트 간절히 성공하고 싶었구나. 숨은 나의 내면 아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 좀 빼, 이제는 해야 해. 언제까지 나를 모른척 할 거니? 라고 나를 두드리고 있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까?


신발장에서 나를 몇달째 기다리고 있는 저 실내운동화부터 집어들어야겠다. 6시에 신랑과 아이들 저녁을 딱 차려놓고 맛있게 먹으라고 말해준 후, 실내운동화를 들고 커뮤니티 센터의 러닝머신을 한 시간 이용해봐야겠다. 그리고 돌아와서 씻은 후엔 반드시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으로 끝을 내야지. 절대 냉장고에 있는 맥주캔을 따지 않을테다. 이번에는 진짜 성공해봐야지.


나도 말할 수 있길, '이제야 가벼워졌네.'








이번 달부터 신발장의 신발을 잘 챙겨주고 있다. 주 2회, 가족들과 즐겁게 저녁식사를 하고(아직 저녁 식사를 끊지는 못하겠다. 점심도 푸짐하게 먹고 있다. 먹는 것을 멈추기는 아직 너무 어렵다.) 주방 정리를 대충 하고 나서 운동복을 챙겨입고 운동화를 챙겨들고 운동을 하러 간다. 한 시간 땀을 개운하게 빼고 나면 애매하게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괜히 그 시간에 들어갔다 잘 준비가 끝낸 아이들을 다시 깨울 수 없다는 핑계로 신랑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운동 나올 때 챙겨둔 책과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24시간 무인 카페에 들어간다. 그리고 글을 쓴다. 그렇게 그날의 글을 쓴다. 


오늘도 그 날이다. 오운완, 오글완. 내가 가벼워지는 날.








밤의 숲에서 / 임효영 글 그림 / 노란상상




마침내 파아란 새가 된 피비할머니는

오래된 그리움을 우수수 쏟아내버리고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아이고, 이제야 가벼워졌네."라고 말하죠.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오래된 그리움을 쏟아내고

새로 태어난 할머니가 간 곳은 어디일까요?



난 몸의 짐과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가벼워지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머릿속으로 살짝 몰래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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