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는 일에 열성적이던 때가 있었다.
주말마다 산에 가기를 수년,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매주 산에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궤적처럼 느껴진 시간이다.
주말마다 산을 찾는 나 스스로를 조금은 '멋있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쁨'을 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등산복이 아닌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장소를 찾아다니며, 예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더라면 내 30대가 더 반짝이지 않았을까?
허리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산 정상에서 발목이 접질리는 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주말이면 산에 있었을까?
주말을 산에서 보내고 월요일이 되어 학교에 가면,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어디 산을 다녀오셨어요?"
질문은 짧았지만, 대답은 늘 길었다.
아마 내 등산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남학생 한 명이 불쑥 말했다.
"선생님, 우리도 산에 같이 가요!"
생각지 못한 말이었지만 나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자!"
등산을 희망한 학생들은 모두 8명이었다.
남학생 다섯 명, 여학생 세 명.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염려되어 해발 500~600m 정도의 산으로 장소를 정하고, 날짜를 정했다.
위험 요소가 많은 겨울 산행인 만큼 안전 교육을 철저히 했다.
산행 당일 눈이 오면 자동 취소된다는 점, 등산복과 등산화 착용은 물론 혹시 모를 잔설에 대비해 아이젠 꼭 가져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정상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니 각자 도시락을 챙겨 오되, 추운 날씨를 고려해 선생님이 따뜻한 어묵탕을 끓여주겠다는 야심 찬 약속도 했다.
산행 당일, 우리는 약속된 장소에서 한 명도 빠짐없이 시간에 맞춰 만났다.
모두 밝은 얼굴에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교복이 아닌 등산복 차림의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더욱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평지를 걷다 완만한 경사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한 남학생이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뿜어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남학생들까지 덩달아질세라 뛰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뒤에서 연신 "위험하니까 천천히 가!"라고 소리쳤지만, 내 이야기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녀석들은 저 멀리 달아났다.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마음을 졸이며 따라갔다.
나는 중간중간 쉬어가야 했고, 아이들처럼 빠르게 걸을 수도 없어서 자연스럽게 후미를 맡게 되었다.
나와 함께 천천히 걷던 한 학생은 힘들지 않아 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내 앞을 걸어 나갔고, 단 한 번의 쉼 없이 정상까지 산행을 이어 나갔다.
나와 끝까지 함께 걸었던 또 다른 학생은 다이어트 중이라며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왔는데, 그 무게를 끝까지 견디고 정상에 올라가는 끈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정상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저 멀리서 손짓하며 "선생님, 여기예요! 빨리 오세요~"라고 외치는 녀석들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산행을 힘들어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해 주는 순간이었다.
저렇게 에너지가 충만한 아이들인데 말이다.
소수 인원으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고자 했던 내 예상과는 아주 빗나갔지만, 정상까지 안전하게 도달하는 목표는 우리가 함께 이뤄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정상석 주변으로 서서 손으로 브이(V)를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하늘도 맑고 아이들의 표정도 맑았다.
근처 평평한 곳을 찾아 둘러앉았다.
아이들은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냈고, 나는 약속대로 어묵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김밥이나 빵을 사 온 아이들도 있었고, 부모님께서 정성껏 준비해 주신 도시락을 가져온 학생도 있었다.
"춥지? 금방 끓으니깐 조금만 기다려봐."
보글보글 끓고 있는 어묵탕을 보니, 아이들 속을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빨리 먹이고 싶었다.
"얘들아, 다 끓은 것 같아. 냄비를 가운데로 옮겨서 먹자!"
그렇게 말을 하고 냄비를 들어 올리는데, 손이 미끄러지며 그만 냄비가 엎어졌다.
아이들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고, 너무 놀라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나는 순간 울뻔했다.
너무도 속상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선생님, 괜찮아요."
"다친 사람 없으면 된 거죠."
그 어른스러운 말들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우리는 어묵탕 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비록 흙바닥에 펼쳐놓은 음식들이었지만,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하산길에는 산 중턱에 있는 절에 들러 우연히 다도를 배워보는 시간도 가졌다.
산행을 무사히 마친 뒤, 각자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서서 인사들을 나눴다.
"얘들아, 오늘 날씨가 추웠는데 다들 고생했어. 집까지 조심해서 가고, 도착하면 문자 보내는 거 잊지 말고!"
아이들은 오늘 등산이 너무도 즐거웠다며, 다음에 또 다른 산으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이번엔 즉답이 나오지 않았다.
추위를 달래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